이십대까지는 누구나 자의든 타의든 여러가지 관계들에 얽매여 살게 되므로,
인간관계에서 희노애락을 경험할 일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중, 사람들에게 준PTSD로 여겨질만한 고통이 하나 있다면,
친구들 사이에서의 배신이나 절교 등의 사건이죠.
특히, 친하다고 믿었던 사람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손절을 당하게 되면,
어마어마한 배신감과 자존감의 급락, 인간에 대한 회의감 등을 맛보게 돼요.
이러한 사건이 준PTSD급으로 당사자의 인생 내내 따라붙으며 상처를 주는 이유는
배신과 손절의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사건이 내 머리속에서 또아리를 튼 채 남아
마치 "입 안의 가시"처럼 지속적으로 리프레쉬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걸, 자이가르닉 효과라 하죠.
※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 :
머리속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즉, 인지적으로 종결되지 못한 사건이 있을 때,
그 사건이 완전히 종결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내적 긴장감, 불편감을 느끼게 되는 현상.
영화나 소설의 오픈 엔딩 마케팅이 대표적인 자이가르닉 효과의 활용으로,
미진한 결말에 내적 불편감을 느낀 사람들이 이를 해소하기 위해 결말에 대한 대화나 논의 등을 하게 되고,
이러한 식으로, 해당 작품이 대중들에게 지속적으로 회자하게 됨.
이해하고 떠나보내기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큰 상처를 받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명확한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내가 왜 그렇게 된 건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며 괴로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친구가 날 탓하고 공격하며 손절했는데, 정확히 이유를 모르겠어. 이해가 안 돼.
뭐지? 나만 모르는 내 치명적인 단점이 있나? 결국 알 수 없는 내 어떠한 단점이 문제였던 걸까?
앞으로는.. 앞으로는 어떻게 행동해야 되지? 누구를 만나든 그때의 상황이 되풀이되는 건 아닐까?
마치 오픈엔딩의 영화처럼,
이해할 수 없었던 과거의 사건이 내 머리속에서 또아리를 튼 채 계속해서 날 괴롭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단순해요. 그때로 돌아가 내가 왜 그들에게 손절당했는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구하면 됩니다.
"내가 뭘 잘못해서 분노한 게 아니라,
나의 어떠한 면모가 그 사람을 자극해 스스로 폭주한 거 아닐까?"
손절, 절교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부정적 감정입니다.
누군가로 인해 내 기분이 상하고 자존감이 떨어진다면,
더이상 그 친구와 같이 갈 이유가 없는 것이죠.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감정은
① 상대방이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고, (상대방 탓)
② 내가 스스로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본인 탓)
가령,
친구가 대놓고 날 비꼬고 무시한다면, 이건 전자의 상황이겠죠.
반면,
친구가 가치중립적인 이야기를 했지만, 그걸 듣고 내가 발끈했다면 이건 후자의 상황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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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가 서로의 근황 토크를 하다가 휴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A가 이번에 어디를 다녀왔는데, 이런 게 너무 좋았고 재밌었다며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B의 입장에서는 요새 경제 사정이 어려워 제대로 된 휴가도 보내지 못해
A의 휴가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기분이 나빠지는 걸 느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B는 계속 생각했다.
얘가 분명 요즘 내 주머니 사정을 모르지 않을텐데,
어떻게 자기 자랑처럼 지 휴가 얘기를 그렇게 늘어놓을 수 있지?
생각할 수록 괘씸하고 열이 받는다.
그 후, B는 몇달동안 A와 연락을 하지 않고, 연락이 와도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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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주머니 사정이 안 좋은 B를 배려해, A가 휴가 이야기를 적절히 무마해야 했다.
분명, 지혜로운 처사죠.
하지만, 인지 범위와 행동 반경이 저기까지 미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주변 사람들의 현재 상황을 일일이 고려해,
그들이 행여나 기분이 나쁠 지도 모르는 이야기거리나 행동들을 모두 다 차단한다?
이건 배려의 문제가 아니라, 눈치와 감각의 문제입니다.
이걸 해내는 사람들이 감각적인 소수인 거지,
이걸 못해낸다고 배려가 없는 사람들이 아니란 거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누군가의 비교 대상이 되어 그들을 기분 나쁘게 만들 수 있다라는
지점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자기 딴에는 가치중립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과의 비교를 통해 기분이 나빠진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당사자에게 불쾌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거죠.
내가 명시적으로 뭘 잘못한 게 아니라,
내가 의도하지 않은 사회적 비교로 인해 상대방이 스스로 자극된 것.
이와 같은 심리적 흐름으로 인해 관계가 절단나는 경우가 현실적으로 굉장히 흔합니다.
인간은 다른 이가 나보다 더 많이 가졌다는 이유만으로도 상처받는 존재이다.
특히 나와 별 다를 바 없이 살던 지인이 갑자기 부자가 된 경우라면 그 시기, 질투의 강도가 세진다.
- 플라톤
인간이 재밌는 건,
도토리가 수박을 보며 사회 비교를 하진 않는다는 겁니다.
도토리들은 항상 도토리 키재기를 해요.
즉, 날 기분 나쁘게 만드는 사회 비교란,
누가 봐도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과의 비교가 아니라,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한, 혹은 내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 사람들과의 비교란 거죠.
인간은 나보다 레벨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경외감을 느끼지만,
나와 비슷한 레벨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잘 나가는 것을 보면 패배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오히려 주변 친구들과의 무의식적 비교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평정심이 무너지고, 서로를 오해하고 욕하며 인간관계가 종식되는 것.
당신의 잘못은 아닙니다.
하지만,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해도,
당신의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겐 불쾌한 자극이 되고, 공격의 이유가 될 수 있어요.
결국, 겸손의 미덕이란,
그게 고귀한 태도라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태도이기 때문일 겁니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