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층민들의 고단한 삶과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그린 걸작 드라마

[로더리고]

나라야마 부시코 The Ballad of Narayama, 1983

일본 드라마 127분청소년관람불가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

출연 오가타 켄, 사카모토 스미코, 아키 타케조, 히다리 톤페이

<나라야마 부시코>는 후카자와 시치로(深澤七郞)의 소설인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

<동북의 신무들(東北の神武たち)>등을 원작으로

일본 영화의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만든, 일본의 전통과 인간 본성에 대한 심오한 탐구를 통해 영화를 통해 죽음과 삶의 순환을 그린 걸작 드라마입니다.

이마무라 쇼헤이

19세기경 일본의 한 척박한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이마무라 쇼헤이가 늘 그러했듯이 하층민들의 고단한 삶과 인간의 원초적 욕망 등을 강렬하면서도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어 의외로 수위가 높으며 그 당시 일본 영화계에서 매우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전통적 일본 사회의 규범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인간 존재의 필연적인 끝을 비극이 아닌 자연스러운 순환으로 바라보며,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매우 진지하고 철학적으로 그려냈고 1983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등 일본 영화의 예술적 깊이와 철학적 성찰을 세계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작품입니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예술적 경지와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엿볼 수 있으며 고통스럽고 충격적인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철학적 깊이를 잃지 않는 이 영화는, 단순한 고전적 의미의 "죽음을 다룬 영화"를 넘어서,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전달하며 관객은 단순히 영화를 본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대해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19세기 에도 시대 말기의 도호쿠 지역에 위치한 어느 산골 마을이며 이곳의 주민들은 비록 대부분이 농사를 짓고 자급자족하며 살아가지만 척박한 환경 때문에 수확량이 적어 대다수의 사람들이 궁핍하게 살고 있는 데다 깊은 오지에 있어서 정부의 통제도 거의 받지 않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먹는 입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일가족 중 오로지 첫째 아들만 결혼하여 아이를 낳을 수 있으며 그나마도 갓난 아기들을 버려서 죽게 하거나 아들들은 부모가 70세가 넘으면 그들을 등에 업고 나라야마라는 산의 꼭대기에 올라서 부모를 버려두고 와야 하는 무서운 전통이 있습니다.

주인공인 타츠헤이의 어머니인 오린은 69세가 되자 나라야마에 올라갈 준비를 하기 시작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타츠헤이는 무척 괴로워합니다.

그 해에 타츠헤이 가족은 사계절에 따라 농사를 짓고 새로운 부인을 맞아들이거나 타츠헤이의 아들 케사키치가 결혼할 아내를 들이는 등 여러 가지 일을 겪게 됩니다.

결국 초겨울에 오린이 70세가 되자 타츠헤이는 어머니를 지게에 싣고 나라야마의 산길을 오르기 시작하고 타츠헤이는 어머니가 떠날 때 눈이 오길 바란다고 중얼거리는데 부모를 버리러 갈 때 눈이 내리면 좋은 곳으로 간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교롭게도 타츠헤이가 어머니를 두고 산에서 내려갈 때 눈이 내리고 이에 타츠헤이는 놀라서 나라야마에 갈 때는 뒤돌아봐선 안된다는 규율을 어긴 채 어머니에게 달려갑니다.

오린은 눈에 덮여 가부좌를 틀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런 타츠헤이를 보며 가라고 손짓합니다.

결국 타츠헤이는 어머니를 두고 내려오고 새로운 가정을 맞이하면서 삶을 꾸려나가는 도중 가족들이 곳곳에서 어머니가 사용하던 물건을 갖고 있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여전히 곁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는 강렬하고 때로는 잔혹한 장면들을 통해 죽음의 수용과 인간 존재의 한계를 보여주며 단순히 잔혹함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을 꿰뚫어보려는 시도를 합니다.

연출 스타일은 매우 절제되어 있으며, 감정의 폭발보다는 차가운 현실을 직시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이 영화에서 감정적으로 격렬한 장면은 거의 없으며, 대신 캐릭터들은 그들의 운명을 침착하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연출은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인 존엄성과 자유의지를 더욱 부각시키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죽음을 가장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것으로 묘사하며 이는 영화의 초기 부분에서부터 명확하게 드러나며, 나이가 든 인물들이 마을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규범을 따르는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살을 자신의 의무로 여기며, 죽음을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사회적 의식으로 여기며 이러한 접근은 관객에게 충격을 주면서도, 동시에 깊은 철학적 성찰을 유도합니다.

잔혹한 장면을 단순히 자극적인 요소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중요한 시각적 메타포로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들이 산으로 떠나는 장면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묘사하는 방식은 매우 상징적이고, 회피할 수 없는 죽음의 필연성을 강조합니다. 또한, 자연의 요소(산, 바람, 하늘 등)와 인간의 존재를 대조적이고 극적인 이미지로 연결시키며, 그 본질적인 의미를 드러냅니다.

<나라야마 부시코>는 죽음, 사회적 의무, 개인의 선택 등을 중심으로 한 복잡한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영화는 단순한 노인의 자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가 내포하는 사회적, 문화적 의미와 가족 내 갈등을 깊이 있게 다룹니다.

영화는 죽음을 비극이나 고통의 대상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 떠나는 장면은 존엄과 책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개인과 사회의 균형을 잘 보여주며, 자기결정권과 공동체 의식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합니다.

영화의 또 다른 중요한 주제는 가족과 사회의 책임입니다. 주인공 왼은 자신이 더 이상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지만, 그 선택은 그녀의 자식들에게 큰 갈등과 고통을 안깁니다. 영화는 이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을 통해,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이 충돌하는 시선으로 유도합니다.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조망하는 중요한 존재로 그려지며 산은 죽음의 장소이자 영혼이 떠나는 곳으로 묘사되며, 이는 인간 존재의 순환과 자연의 불가피성을 암시하는 중요한 상징이 됩니다.

영화의 중심인물인 오린 역을 맡은 사카모토 스미코의 연기는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그녀는 죽음을 향한 여정에서 내적인 갈등과 고통을 뛰어난 섬세한 감정선으로 표현하며,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그녀의 선택이 가져오는 무게를 관객에게 강하게 전달하며 특히, 침착하면서도 심리적으로 복잡한 상태를 잘 풀어내며, 오린의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은 매우 감동적입니다.

사카모토 스미코는 영화 촬영을 위해 스스로 멀쩡한 이까지 뽑는 열의를 보였고 타츠헤이를 연기한 오가타 켄도 오린을 등에 업고 산을 오르는 장면을 소화하기 위해 40kg의 짐을 메고 등산을 하며 훈련했습니다. 그 결과 오가타 켄은 해외에서 주목받아 할리우드에 러브콜을 받기도 했는데 연기 당시 40대 후반이었습니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1968년에 감독한 <신들의 깊은 욕망>이 흥행에 참패하면서 한동안 어려운 시기를 보냈으나 1979년에는 걸작 하드보일드 범죄 드라마 <복수는 나의 것>을 감독하여 1979년 3위의 대흥행에 일본 아카데미상 시상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는 대박을 치는 등 재기에 성공하였고 이후 <나라야마 부시코> 덕분에 거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고 그가 감독한 영화 중에서도 특히 걸작으로 뽑힙니다.

복수는 나의 것

후카자와 시치로(深澤七郞)의 소설인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동북의 신무들(東北の神武たち)>등을 원작으로 하며, 정확히 말하자면 두 작품의 내용을 적절히 버무린 것이며

후카자와 시치로

<나라야마 부시코>는 이미 기노시타 케이스케의 손에 1958년에 영화화되었는데 이것도 상당한 걸작으로 뽑히며 <동북의 신무>들 역시 1958년 이치카와 곤 감독의 손에서 영화화되었습니다.

1958년작 <나라야마 부시코> 포스터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에서 나라야마(楢山)는 극중에 등장하는 산의 이름이고 부시(節)는 민요의 선율을 뜻하며 코우(考)는 '고찰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나라야마 부시코'로 표기된 제목은 사실 '나라야마부시코우'가 옳으며 원문 한자 그대로 유산절고의 뜻을 직역하자면 "나라산 민요에 대한 고찰" 정도가 됩니다. 나라산 민요(楢山節)는 영화의 원작 소설에 등장하는 '70살이 되면 나라산 행이라네(70歳になったら楢山参りだ)'라는 노래이며 영어판의 제목도 "Ballad Of Narayama"입니다.

1998년 일본 문화 1차 개방 당시 한국에 수입되어 극장에서 개봉한 4번째 일본 영화이며 당시 일본 영화 수입 기준은 공동투자로 제작된 영화입니다. 한국 영화에 일본인 배우가 참여한 영화, 소위 4대 외국 영화제(칸, 베를린, 베니스, 아카데미) 수상작이었고 나라야마 부시코는 칸 영화제 수상작이었기 때문에 대상에 포함되었고 한국 극장에서 정식개봉한 일본 영화 중에서도 1세대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초로 수입된 영화는 기타노 다케시 감독 겸 주연의 영화 <하나비>였는데 바로 직전해인 1997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입니다.

하나비

파격적인 내용 때문에 당시에도 적지 않은 화제를 불러왔으나 흥행은 실패했는데 일본 문화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본 사람들도 적지 않은 수가 부모는 내다 버리고 총각들이 개와 수간 못해 안달난 이상한 영화 정도로 받아들였고 그렇게 소문나 버렸습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는데 이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당시 일본 영화계에선 같이 칸 영화제 경쟁 부분에 진출한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전장의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Mr. Lawrence)>에 기대를 걸었고 관련 영화계 인사 20여 명이 수상을 점쳤지만 <나라야마 부시코>는 이마무라 쇼헤이 본인 조차 전혀 기대를 걸지 않았습니다. 이마무라는 베를린 영화제랑 연이 깊었던 감독이며 나라야마 부시코는 첫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이었고 애초에 영화가 너무나도 일본 특유의 문화를 다루고 있어서 외국인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전장의 크리스마스 (1983)

출품도 토에이 쪽에서 했지 이마무라 프로덕션과는 연계가 없었고 어차피 전장의 크리스마스가 수상할 텐데 내 영화를 왜 당신들 멋대로 출품하냐며 이마무라 감독도 화가 난 나머지 영화제엔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여주인공 사카모토 스미코와 제작사 대표 2명만이 칸 영화제에 참석했습니다.

정작 칸 영화제에서는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노스텔지아>가 큰 주목을 받았고 황금종려상이 유력했지만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영화 감독 세르게이 본다르추크는 소련 당국의 미움을 받던 안드레이에게 황금종려상을 수상시키면 프랑스와 소련의 외교적 마찰이 있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고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에게는 감독상이 돌아갔고 호평이었던 <돈>의 감독 로베르 브레송에게도 감독상이 공동 수여됐는데 수여식 단상에서 수여 증서를 패대기쳤습니다.

결국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나라야마 부시코>에게 황금종려상이 수여되었고 이 일을 계기로 이마무라 쇼헤이는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떠올랐으며 1997년 우나기로 다시 한 번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단순히 정치적인 알력으로 인한 수상이 아님과 동시에 이마무라 본인의 연출력을 전 세계에 증명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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