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크리스마스, 미국 극장가에 한 편의 영화가 걸리자 케네디 암살을 둘러싼 오래된 논쟁이 다시 폭발했습니다. 언론과 정치권은 영화의 역사적 사실 왜곡을 거세게 비판했고, 케네디 암살 관련 기록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오히려 더 커졌습니다. 올리버 스톤의 <JFK>였습니다.
<JFK> 리뷰 참고
그리고 2026년 추석, 한국 극장가에 이 오래된 총성의 메아리 같은 영화가 걸립니다.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 광복절 생중계 현장에서 영부인이 쓰러지고, 사건은 순식간에 종결됩니다. 그런데 누군가 묻습니다. "그게 정말 끝인가?"
35년의 시차, 태평양을 사이에 둔 두 나라, 전혀 다른 두 감독.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 영화는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국가가 서둘러 닫아버린 사건의 문을, 다시 열어도 되는가?"
총알은 같은 곳을 겨눈다
<JFK>의 짐 개리슨 검사는 워런 위원회의 결론 - 오스왈드 단독범행설 -- 을 믿지 않습니다. 그는 검찰이라는 국가기관 내부에 있으면서도, 국가가 발표한 진실과 정면으로 맞섭니다.
<암살자들>의 인물들은 조금 다릅니다.
현장을 지켰던 형사, 사건의 이면을 응시하는 신문사 사회부장, 혼란 속에서 무언가를 목격한 신입 기자. 이들 중 누구도 개리슨처럼 단독으로 국가와 맞설 힘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흩어진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춰갑니다. 경찰의 눈, 언론의 눈, 그리고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신참의 눈. 세 개의 서로 다른 렌즈가 하나의 진실을 향해 조여드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드러납니다.
스톤은 한 명의 수사자를 세웠고, 허진호는 세 개의 시선을 세웠습니다. 이건 단순한 캐릭터 수의 차이가 아닙니다. 스톤의 개리슨이 사건의 중심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인물이라면, 허진호의 세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사건을 다르게 바라봅니다. 한 사람의 수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선의 교차로 진실에 접근하는 방식입니다.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 그 사이의 아이러니
그런데 두 사건 사이에는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케네디는 죽었습니다. 미국은 대통령을 잃었고, 그 상실이 곧 음모론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암살자들>의 모티브가 된 1974년 8월 15일 사건은 다릅니다. 총구가 겨눈 표적은 대통령이었지만, 정작 쓰러진 건 영부인이었습니다. 암살은 실패했는데, 사람은 죽었습니다.
이 어긋남이야말로 영화가 가장 예리하게 파고들 수 있는 지점 아닐까요. 표적이 빗나간 총알 하나가 한 여성의 삶을 앗아갔고, 사건은 공식적인 결론과 함께 역사 속으로 묻혔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남은 건 그 결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의문들입니다. <JFK>식 음모론이 "누가 죽였는가"를 쫓는다면, 이 영화는 어쩌면 "누가 죽지 않았는가"라는, 더 서늘한 질문을 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스타일은 정반대, 그래서 더 궁금하다
올리버 스톤은 <JFK>에서 다큐멘터리 푸티지와 극영화 장면을 마구 뒤섞고, 흑백과 컬러를 널뛰듯 오가며 관객을 몰아붙였습니다. "이게 진짜 기록인지 재연인지 구분하지 마라"는 듯한 공격적인 편집. 그 형식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선언이었습니다.
허진호는 정반대의 감독입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를 만든 그의 손끝은 여백과 절제, 그리고 인물의 표정 안에 담긴 침묵으로 유명합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 리뷰 참고
실제로 그는 최근 언론시사회에서 이 영화가 "결론을 내리는 영화는 아니"라며, 처음부터 감춰진 진실이나 배후를 밝히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대신 수사의 최전선에 선 형사 철구(유해진), 외압 속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는 신문사 사회부장 재환(박해일), 현장을 목격한 뒤 의혹 속으로 뛰어드는 신입 기자 영일(이민호). 이 세 사람의 서로 다른 시선을 통해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감정을 그리고 싶었다고 감독은 말합니다.
같은 재료(은폐된 진실, 국가권력에 대한 불신)를 가지고 전혀 다른 요리를 만드는 두 감독. 스톤이 관객의 멱살을 잡고 흔든다면, 허진호는 관객을 그날의 공기 속에 오래 머물게 합니다. 스톤은 의심하라고 말하고, 허진호는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야 시작되는 것
<JFK>의 영향은 극장 안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가 케네디 암살 기록 공개 문제를 대중적 의제로 끌어올린 뒤, 1992년 미 의회는 관련 기록을 단계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물론 냉전 종식 등 다른 배경도 있었지만, 영화 한 편이 실제 제도 변화에 영향을 미친 드문 사례였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암살자들>이 그 정도 파장을 낼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질문 하나는 던져볼 만합니다. 만약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다면, 그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반세기 전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라는 여론이 생길까요, 아니면 "그때 그 시절 얘기"로 소비되고 끝날까요.
정답은 스크린이 아니라 극장을 나선 우리들의 몫입니다. 9월 23일, 총성을 듣는 건 관객이지만, 그 총알의 진짜 궤적을 추적할지 말지는 결국 우리가 정하는 겁니다.
작성자 로더리고
사진 출처 구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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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푸른소나무 작성시간 26.09.23 jfk 정말 잼나게 봤었죠 제 기억에 러닝타임 거의 3시간이었던걸로 기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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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로더리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9.23 맞습니다. 189분이 전혀 지루하지않은 최고의 법정 스릴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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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푸른소나무 작성시간 26.09.23 로더리고 최고죠 말씀 들으니 간만에 정주행 또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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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모르는사람 작성시간 26.09.23 암살자들 보고 왔습니다
이미 알려진 실화 근대 역사 이야기이기에 무엇보다 연출이 중요한데
허진호 감독의 연출은 튀는게 없이 지루하고 올드하며 진부했습니다
다양한 이름값 높은 배우들이 출연하며 이를 만회하는 영화라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