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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질서를 담은 공간, 종묘를 다시 읽다

작성자世美|작성시간26.06.09|조회수29 목록 댓글 0

유교의 질서를 담은 공간, 종묘를 다시 읽다 - 디지털인문학으로 읽는 600년의 기록 공간         

                                                                                박수정 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도서관 한국학정보화실

  


 5월 초, 종묘에서는 2026년 종묘대제가 봉행되었다. 영녕전 제향을 시작으로 광화문에서 종묘까지 어가행렬이 이어지고 정전 제향으로 하루가 마무리되는 동안, 종묘는 여전히 살아 있는 국가의례의 공간임을 다시 한번 보여 주었다. 장엄한 현장이 지나간 뒤, 질문은 기록의 세계로 옮겨 간다. 이 의례는 어떤 절차와 소리, 몸짓으로 구성되었고, 그 질서는 어떤 문서와 그림, 영상 속에 남아 있을까? 종묘대제의 절차와 종묘제례악의 음악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의례의 요소이다. 오늘날 이 의례의 질서와 울림은 봉행 의례뿐 아니라 공연과 영상 자료를 통해서도 경험할 수 있다. 한국학자료통합플랫폼(kdp.aks.ac.kr)은 그 질문을 따라 종묘를 다시 읽어볼 수 있는 출발점이다.

2026 봄 궁중문화축전 종묘제례악 야간공연사진 출처: 국가유산청·국가유산진흥원  조선의 도성은 ‘좌묘우사(左廟右社)’라는 원칙을 도시 공간에 새겨 두었다. 인군남면(人君南面)의 방향에 따르면 왼쪽, 곧 동쪽에 종묘가 놓이고 오른쪽, 곧 서쪽에 사직이 놓인다. 종묘는 단지 ‘동쪽에 있는 제사 공간’이 아니라, 국가의 질서를 공간 속에 배치한 장소였다. 그리고 그 질서가 오늘까지 읽히는 것은 의례와 음악, 문서와 그림이 기록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국학자료통합플랫폼에서 ‘종묘’를 찾아보면, 고전자료, 근현대자료, 멀티미디어자료, 사전, 공구, 연구성과 등 흩어져 있던 기록이 서로 연결되며 하나의 ‘디지털 종묘’가 펼쳐진다. 한국학자료통합플랫폼에서 만나는 종묘  플랫폼에서 ‘종묘’를 검색하면 약 7만 건 규모의 자료가 펼쳐지고, 서로 다른 기관·DB에 흩어져 있던 종묘 관련 기록을 한자리에서 교차해 볼 수 있다. 처음 접한다면 '종묘의궤', '종묘제례악', '일무' 같은 단어 하나로 시작해 보는 것이 좋다. 검색 결과를 훑으며 연결된 자료를 따라가다 보면, 방대한 아카이브가 자연스럽게 좁혀진다. 첫 화면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종묘의궤’와 같은 의례 기록이다. 어떤 제기를 어느 자리에 놓는지, 일무의 줄은 몇 행 몇 열인지, 악장(樂章)의 가사는 무엇인지까지 의례의 절차와 배치, 움직임과 소리가 ‘재현 가능한 정보’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또한 플랫폼과 연계된 디지털장서각 자료를 통해 『종묘등록(宗廟謄錄)』의 원문 이미지까지 직접 확인할 수 있어, 종묘가 ‘한 번의 행사’가 아니라 장기간 누적되는 운영 시스템이었음을 보여 준다.

종묘친제규제도설 중 오향친제반차도
사진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멀티미디어 자료는 종묘를 ‘지식’이 아니라 ‘감각’으로 되돌려 놓는다. 과거의 종묘대제·종묘제례악 관련 영상은 텍스트만으로는 전달되기 어려운 소리와 움직임, 현장의 공기를 담고 있다. 사전류 항목을 따라가면, 제례악이 어떻게 편제되고 변화했는지, 예컨대 보태평·정대업의 성립 과정 등도 함께 읽을 수 있다.

장소·행사·기록 — 디지털 종묘를 읽는 세 열쇠

 플랫폼 자료를 입체적으로 ‘정리해 읽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종묘의 지식을 세 갈래로 나누는 것이다.
  • 장소(Place) — 정전, 영녕전, 삼도처럼 공간의 이름과 기능
  • 행사(Event) — 종묘제례처럼 그 공간에서 반복된 의례
  • 기록(Document) — 의례를 적어둔 문서·그림·악보, 그리고 이를 재가공한 데이터

그리고 연결선을 붙인다. ‘종묘제례(행사)는 정전(장소)에서 거행된다’, ‘그 의례는 종묘의궤(기록)로 남는다’처럼. 이 연결이 쌓이면 역사가 연보(年譜)의 나열이 아니라 관계망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방대한 검색 결과 앞에서 길을 잃는다면, ‘장소–행사–기록’ 세 단어로 먼저 분류해 보자. 종묘를 디지털인문학의 눈으로 보는 가장 단순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종묘는 왜 ‘기록의 시스템’이었나  종묘는 유교적 예의 질서를 공간 속에 배치하는 한편, 그것을 기록으로 이어가는 시스템이었다. 정전이 처음부터 19칸이었던 것은 아니다. 7칸으로 시작했지만, 설계 자체가 확장을 예비한 구조였다. 왕실의 신위가 늘어날 때마다 명종·영조·헌종대에 걸쳐 네 칸씩 옆으로 덧붙여졌다. 누가 정전에 모셔지고 누가 영녕전으로 옮겨가는지도 절차와 기록으로 결정되었다. 이 과정은 단순한 공간 확장이 아니라 왕실의 정통성을 재정의하는 의례적 결정이기도 했다. 태종대 종묘에서 제외되었던 신덕왕후의 위패가 260여 년 뒤 현종대에 다시 모셔진 일도 그 결정의 한 장면이었다. 종묘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평가하고 기록하고 필요하면 다시 배치되는 의례의 시스템이었다. ‘살아 있는 기록 공간’으로서의 종묘: 율곡로 지하화와 정전 보수공사 종묘는 과거의 유산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종묘 정전은 2020년부터 진행된 대규모 보수공사를 2025년 4월 마쳤고, 임시로 봉안되었던 신주도 다시 제자리로 모셔졌다. 그해 종묘대제에서는 2019년 이후 6년 만에 정전 제향이 일반에 공개되었다. 2026년 종묘대제는 이 흐름 위에서 다시 봉행된 행사였다. 한편 2010년 시작된 율곡로 지하화 사업은 2022년 완료되어, 경복궁과 종묘 사이의 단절을 완화하는 도시적 변화로 주목되었다. 정전 보수공사와 율곡로 지하화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종묘를 오늘의 서울 안에서 보존하고 연결하는 작업이었다. 종묘는 기록으로 남아 있는 공간일 뿐 아니라, 오늘의 도시 속에서 계속 보존·복원·연결되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5월, 종묘에서 다시 검색해 볼 것들  종묘대제가 지나간 뒤 화면 앞에서 다시 확인해 볼 것은, 행사 자체보다 그 행사를 가능하게 한 자료들이다. 정전과 영녕전의 공간, 제례의 절차, 제례악과 일무의 움직임, 의궤와 등록의 기록을 차례로 따라가다 보면 종묘는 관람의 대상에서 해석의 대상으로 바뀐다. 한국학자료통합플랫폼에서 아래 키워드를 검색해 보길 권한다.   • 🔎‘종묘의궤’   • 🔎‘종묘제례악’   • 🔎‘종묘등록’   • 🔎‘일무’


 5월의 현장을 놓쳤다면, 11월의 종묘 추향대제를 기다리며 플랫폼에서 디지털 종묘를 먼저 경험해 볼 수도 있다. 600년 전 기록과 오늘의 관심사가 검색 화면에서 겹쳐질 때, 종묘대제는 지나간 행사가 아니라 다시 읽고 해석할 수 있는 한국학의 자료가 된다.

                                              서울시무용단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종묘제례악의 ‘일무’ 공연 장면
                                                                         사진 제공: 세종문화회관

 

                                                            한국학중앙연구원 AKS뉴스센터 2026년 5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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