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사진이 본 미술

벨라스케스와 라벨이 본 마르가리타 공주

작성자ton0413|작성시간11.05.25|조회수402 목록 댓글 0

Margarita1.jpg

화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데, 음악작곡가에게 그림은 어떤 때는 아름다운 멜로디로 다가가기도 하는 것 같다. 미술에 조예가 깊었던 라벨이 젊은 시절 벨라스케스가 그린 [왕녀 마르가리타 공주의 초상]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아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후에 이를 부인했다고 하는데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벨라스케스가 그린 마르가리타공주의 그림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젊은 라벨이 떠오르는데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원래는 피아노곡이었지만 1910년 관현악곡으로 편곡이 되기도 한 곡이다.

 

벨라스케스-Las Meninas.jpg


자~ 그럼 마르가리타공주의 다른 그림에 대해 언급해 보고자 한다. 어린 공주가 그림의 중앙에 서 있다. 그녀의 좌측으로는 무릅을 꿇고 마실 것을 권하는 시녀가, 우측으로는 공주와 마찬가지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시녀가 보인다. 그들 앞으로는 난쟁이와 졸고 있는 개를 걷어차고 있는 꼬마가 보인다. 그림 가장 왼쪽에 붓과 팔레트를 들고 콧수염을 맵시 있게 다듬은 이가 보인다. 그가 바로 이 그림을 그린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다.


이들은 모두 어디를 보고 있을까? 그림을 쳐다보고 있는 관람자는 그림 속 인물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고 착각할 만 하지만, 정답은 화가의 오른쪽 저 멀리 벽에 걸린 거울 안에 있다. 거울 속에는 반사된 남녀가 희미하게 보이는데, 바로 이 남녀가 그림 중앙에 서 있는 어린 공주의 부모인 마리아나 왕비와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다. 화가의 모델이 되어 예쁘게 차려입은 어린 공주를 엄마, 아빠를 구경하러 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의 주인공은 국왕부처일까? 아니면 마치 국왕이 된 듯 시종과 어린 공주와 화가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독자일까? 당당히 서서 예술가의 긍지를 주장하고 있는 화가 벨라스케스일까? 어쩌면 공주와 대비되는 모습으로 서 있는 못생긴 난쟁이 여인일지도 모른다. 이 여인은 난장이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국왕의 총애를 받았던 난장이 여인임에 틀림없다.


박민규라는 젊은 작가는 이 난장이 여인에게 영감을 얻어 못생긴 여인은 용서가 안된다는 소설을 쓰면서 이 그림을 책 표지에 사용하는 실수를 범했다. 장애인을 못생긴 여인으로 비교한 것은
작가의 무지한 실수로 보여진다. 일반적으로 못생겼다고 하는 것은 보편타당적으로 겉모습만 보고서 외면하고픈 인물이지 절대로 장애인은 아닐테니 말이다.


전통적인 해석에 따르면, 그림 속의 벨라스케스 자신은 지금 마르가리타를 그리고 있는 중인데,
모델이 된 공주는 마침내 싫증이 나버렸고, 시녀 한 명이 달래는 중이다. 이때 또 한 명의 시녀가 그림을 보는 관람자의 위치에 나타난 누군가를 보고 황급히 무릎을 굽혀 인사를 한다. 공주의 시선과 저 멀리 문을 나서려던 사람의 시선도 그 누군가를 향하는데, 그 누군가는 바로 벽에 걸린
거울에 비치는 왕과 왕비인 것이다.


마치 스냅 사진 같은 자연스러운 장면이지만, 그림의 대상과 대상을 그림으로 재현하는 화가와
그것을 바라보는 관찰자가 모두 한 화면에 다시 재현되도록 정교하게 기획된 것이라 감탄과 여러 해석을 불러일으켰다.

 

Margarita2.jpg

[사진 2]

Margarita5.jpg

[사진 3]


하지만 그 이야기는 접어두고 다시 마르가리타에게 집중하면, 이 그림은 그녀가 만 5살일 때 그려졌는데, 이 때가 그녀가 가장 사랑스러웠던 때인 것 같다.(사진 2)  안타깝게도 그녀는 성장하면서 당시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을 지배한 합스부르크 왕족들의 숙명과도 같았던 주걱턱이 두드러지게 되었는데(사진 3), 이것은 반복된 근친결혼의 폐해라고 알려져있다. 그녀 또한 외삼촌인 오스트리아 왕실의 레오폴드 1세와 어릴 때부터 정혼이 되어 있어서 그와 결혼했고, 22세의 젊은 나이에 아이를 낳다 세상을 떠났다.


어릴 때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결혼해서 남편과의 사이도 좋았다고 하니 불행한 삶은 아니었겠지만, 바로크 시대 특유의 과장된 드레스를 무겁게 걸친 마르가리타의 9살 때 초상화를 보면(사진 4), 그저 주변에서 계획한 대로 흘러가고 그나마 너무 짧았던 그녀의 삶이 중첩되면서
애수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왕족은 물론 그들의 시종까지 따뜻한 인간애를 담아 그렸던 벨라스케스이기에, 그의 초상화 속에서 그녀는 여전히 발랄하고 매력적이다. 벨라스케스 사후 다른 화가들이 그린 그녀의 초상화에서는 결코 이런 매력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제 라벨의 곡을 들을 때는 거창한 바로크식 드레스를 걸치고 위엄 있게 춤을 추는, 그러나 궁정의 노화가를 향해서 발랄한 미소를 보내는 어린 왕녀를 떠올리게 된다. 라벨은 자신의 음악의 이미지가 이렇게 고정되어 버리는 것이 싫어서 [죽은 왕녀]가 마르가리타가 아니라고 했을지도...


 

Margarita4.jpg

[사진 4]

Margarita6.jpg

                            [Maurice Ravel / Pavane Pour Une Infante Defunte]
 
라벨과 벨라스케스가 바라다 본 마르가리타공주
오현수 흙둔지 님의 블로그 더보기
입력 : 2011.05.25 05:55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