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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벼슬

작성자정승윤|작성시간06.06.29|조회수64 목록 댓글 0




고향집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마당에서 거닐던 닭의 일가족이다. 다른 가축들은 별로 가족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지만 닭은 어김없는 가족이다. 붉은 벼슬을 자랑하며 앞서서 으스대며 걷는 장닭과 두툼한 엉덩이를 휘저으며 한편으론 장닭의 뒤를 따르고 한편으론 병아리들을 보살피는 암탉과 어미 주위를 맴돌다가도 어미가 조금만 한눈을 팔면 금새 옆길로 새는 병아리들은 여지없이 우리 인간의 가족과 닮아 있다.

장닭의 벼슬은 장하기 그지없다. 동물들은 수컷이 아름답다고는 하지만 장닭의 치장은 암컷에 비해 지나치게 호사롭다. 정수리 중앙에 너풀거리는 선홍색 벼슬과 둥근 고리 속에 불타고 있는 두 눈은 마치 전투에 나서는 장군처럼 결연하다. 닭의 호전성은 무슨 연유일까? 아마 그 호전성 때문에 투계도 생겨난 것 같지만 민가의 닭싸움도 예사롭지가 않다. 목 깃털은 화염처럼 솟구치고 벼슬은 홍염처럼 불타오른다. 공격의 표적도 주로 벼슬이다. 벼슬이 찢겨져 피가 나는 것은 예사다. 장닭의 벼슬은 전장의 깃발이다. 또한 숫컷들의 핏빛 생존경쟁이며, 외로운 자존심의 상징이다.

동물들의 암컷들은 어딘가 비정한 면이 있다. 오로지 가장 강한 숫컷들만 따른다. 닭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웃집 수탉이 강하면 그 수탉을 따른다. 주인이 가장 속상한건 알도 그 집에 가서 빠뜨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장날에는 주둥이가 수리같고 발톱은 갈고리같은 수탉을 고르느라 하루해가 기운다.

암탉의 해산은 요란하다. 날개를 퍼덕이고 꾸꾸덕 꾸꾸덕 외치고 눈알을 뒤룩거리며 자신의 진통을 과장한다. 매일 겪는 일상일텐데도 죽을 것처럼 야단이다. 그렇게 한 차례 소동을 벌인 암탉의 뒤를 따라 둥지를 찾아보면 예외 없이 뽀얀 달걀을 발견한다. 짚둥우리에서 발견하는 그 황금색의 완벽한 타원형 구체는 신비롭기만 하다. 이건 신의 작품이며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다. 그러나 고약한 암탉은 이따금 그 신의 선물에 비릿한 산고(産苦)의 흔적을 남겨 놓기도 한다.

장닭이 푸드덕거리며 가끔 낮은 초가지붕 위로 뛰어오르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저 닭도 언젠가 아득한 옛날, 날던 시절이 있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꿩처럼 숲 속에서 폭죽이 터지듯이 솟구쳐 올랐을까, 아니면 극락조처럼 긴 꼬리를 유유히 흔들며 먼 하늘을 날았을까. 장닭의 날개는 퇴화의 흔적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아직도 강인한 힘이 남아 있어 보인다. 금세라도 대숲 위로, 먼 산으로 날아갈 것 만 같다. 그러나 아직 한 번도 닭이 날아가서 야생의 새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같은 포유류인 개나 고양이는 인간과 각별히 친숙하다. 그러나 닭은 여전히 조류의 고독한 습성을 견지한다. 인간의 품에 안긴다든가 하는 일은 결코 없다. 인간과 항상 몇 발작 떨어져 옆 눈으로 쉬임 없이 견제한다. 그렇다면 그들을 인간의 마당에 묶어두어 결코 날아가지 못하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장닭의 야성과 자유를 온전히 빼앗는 것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로서의 무거움이 아닐까?

요즘은 육계가 성행이다. 닭을 빨리 성장시키기 위해 비닐하우스에 닭을 가두어 두고 24시간 불을 켜둔다고 한다. 어두우면 먹기를 그치고 밝으면 계속 먹어대는 조류의 특징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서너 달이면 치킨이나 삼계탕 집에 팔아넘길 수 있을 정도로 자란다고 한다. 밝을 때 일하고 어두우면 잘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내가 내 먹이를 찾으러 다닌다는 것 또한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 축복들을 빼앗겨버린 닭들은 또한 얼마나 불행한 존재들인가. 마트의 진열대 위에 놓여진 닭들은 이제 암수의 구별조차 어렵다.

장닭의 늠름한 기상도 이젠 한낱 우스갯거리다. 몰락한 가부장 제도처럼 초라하기 그지없다. 새벽을 깨우던 장닭의 그 장한 울음소리를 간혹 변두리에서라도 듣게 되면 사람들은 실소를 금치 못한다. 그 시대착오적인 울음소리가 뭔가 인간의 숫컷들과 닮은 바가 있어 저절로 스며나오는 공감의 웃음이다. 이 대량생산되는 육계의 시대에 한 가부장의 처절한 자기주장이 도대체 무슨 소용에 닿는다는 말인가.

이젠 어디에서도 온전한 닭의 일가족을 보기 힘들다. 하늘에는 소리개가 날고 마을 우물에 송사리가 쏜살같이 달리던 시절. 군기(軍旗)처럼 힘차고 선열했던 장닭의 벼슬, 신화처럼 알을 낳아서 품던 암탉의 풍요로움, 불면 날릴 것 같던 병아리의 애처러운 생명력, 그들이 어울려 살던 그 한날의 아름다움을 어디서 다시 찾아 볼 수 있겠는가.

음식점 마당 귀퉁이에 묶여 있던 암수 한 쌍의 닭이 지나가는 소나기에 처연하게 젖어 있는 꼴이, 파편화된 우리네 핵가족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갑자기 송연한 기분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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