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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고 싶은 시

신발의 꿈................................(강연호)

작성자황예성|작성시간04.02.08|조회수52 목록 댓글 2
쓰레기통 옆에 누군가가 벗어놓은 신발이 있다

벗어놓은 게 아니라 버려진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한 발짝쯤 뒤집힐 수도 있었을 텐데

좌우가 바뀌거나 이쪽저쪽 외면할 수도 있었을 텐데

참 얌전히도 줄을 맞추고 있다

가지런한 침묵이야말로 침묵의 깊이라고

가지런한 슬픔이야말로 슬픔의 극점이라고

신발은 말하지 않는다

그 역시 부르트도록 끌고 온 길이 있었을 것이다

걷거나 발을 구르면서

혹은 빈 깡통이나 돌멩이를 일없이 걷어차면서

끈을 당겨 조인 결의가 있었을 것이다

낡고 해어져 저렇게 버려지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내팽개치고 싶은 날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 누군가 그를 완전히 벗어 던졌지만

신발은 가지런히 제 몸을 추슬러 버티고 있다

누가 알 것인가. 신발이 언제나

맨발을 꿈꾸었다는 것을

아 맨발, 이라는 말의 순결을 꿈꾸었다는 것을

그러나 신발은 맨발이 아니다

저 짓밟히고 버려진 신발의 슬픔을 여기서 발원하다

신발의 벌린 입에 고인 침묵도 이 때문이다


--현대시학 (2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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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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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임희구 | 작성시간 04.02.08 앗, 이젠 문예지까지 섭렵하고 계시는군요~^^
  • 작성자황예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4.02.08 음~~~희구짱의 꽈배기 습성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늙다리까지 삐딱하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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