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텔레비전
정호승
칼라텔레비전을 사들고 추석날
고향으로 가는 친구와 밤기차를 탔다
이제 저 마른 땅처럼 버려진 부모님이
앞으로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시겠냐고
칼라텔레비전을 보시면 얼마나 더 보시겠냐고
종이컵에 소주를 부어마시며 친구는
밤이 깊도록 나에게 잔을 돌렸다
이번 추석엔 꼭 다녀가라는
이제는 너도 장가를 가야 되지 않겠느냐는
주름진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이태만에
고향으로 가는 밤기차의 차창에 마음을 기대고
나는 왠지 눈앞이 흐려왔다
고구마 넝쿨을 북돋우워 주다가 고개들 들면
고추 모종에 대를 세우고 계시던 아버지
논물을 대시느라 밤샘하신 얼굴이
키가 불쑥 큰 들깻잎 같던 아버지
태풍에 쓰러진 벼포기를 일으켜 세우며
갯흙 묻은 하늘을 바라보던 아버지에게
이 가을 빈손으로 찾아가는 나는 누구인가
칼라텔레비전에 기대어 친구는 잠이 들고
꿈속에서도 고향을 만나는지 밤기차는 달리는데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어두운 차창 속에서
늙은 어머니가 들밥을 이고
말없이 논두렁으로 나오시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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