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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삽지짝, 삽지껄.

작성자가을|작성시간10.03.26|조회수142 목록 댓글 0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네. 어릴땐 많이들 쓰고 불렀지만.. 표준말로는 사립문門이라고 한다네. 그냥 작은집 둘러서 쳐진 흙담장의 앞쪽을 짐들어가고 사람날 수 있도록 적당히 튀우고 싸리나무나 수수댈 엮어서 만든 문이었지. 방안에서 방문으로 보면 저만큼 마당건너로 마주하고 있었지. 방문열어 놓으면 삽지짝 들고나는 사람들 그 거래로 지나가는 사람도 다 볼수가 있었고... 싸리로 만든문이라서 싸리문이라고 했고 이말이 변해서 사립문, 뒤에는 삽지문 또는 삽지짝이 되었다고도 하는데 그런건 우린 잘 모르지. 말이 문이었지 문이랄것도 없었제. 그러니 애써 삽지짝을 만들 필요도 없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집집마다 다 있었던게 아니고 열에 한두집 있을까말까 했지. 살림이라고는 도둑맞을것도 없고 숨기거나 감출것도 없는 숟가락몽댕이 몇 개가 다였으니... 이 삽지짝 밖으로는 좁은 골목이 이어지는 곳을 삽지껄/꺼래라고 했고... 한여름에는 늙은 감나무 그늘이 진 그 삽지껄에 멍석펴 아/어른 할것없이 신발벗어 놓고 앉아서 부채 부치며 쌂은 피감자 까먹던 기억도 한낮 땡볕더위 피해 오수를 즐기던 기억도 해그름에는 물논에 일나갔던 아부지가 지게에 소몰고 들어오시며 헛기침 하시던 기억도 생생하네. 그리고 그 삽지껄 들락날락하며 하도 삐대서 흙먼지도 갓잖케 일었지. 그러나 동네에서도 잘 사는 큰 기와집은 달랐지. 이런 싸리나 수수대로 만든문이 아니고 아주 뚜꺼운 나무판때기로 만들고 빗장도 문고리도 무거운 무쇠로 만들어 보기에도 웅장했지. 그런덴 문닿고 잠그어 놓으면 도저히 들어갈수가 없었지. 그리고 봄이오는 입춘에는 거기에 먹墨으로 쓴 입춘대길立春大吉, 만사형통萬事亨通,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는 글귀가 적힌 커다란 문종이가 붙어 있기도 했었지. 어린 우린 그 글의 뜻도 왜 붙이는지도 몰랐네. 도시에서도 입춘지절에 골목길가다 보면 철제대문에, 아파트 문짝에도 이런것 붙어있는 집도 더러는 보이지. 봄기다리는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도시나 농촌이나 같은가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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