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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벼개

작성자가을|작성시간09.07.17|조회수52 목록 댓글 2

그냥 "베게" 또는 "비게"라고도 했지. 그게 더 우리같은 촌티 못벋은 시골출신 사람들에게는 더 만문하고 정답지. 까만물 들인 광목을 둥글게 말고 그안에 나락빻고 남은 겨집 꽉꽉 쑤쎠넣어서 만들었다. 그래서 머리에 베면 그 겨 부딪치는 소리가 와그락 와그락 났지. 머리 안감고 오래베어 아주 까만 머리때가 무더 반질반질 했고. 어떤것은 톱밥이나 못쓰는 쪼가리 천을 넣기도 하였다. 부잣집에서는 귀한 비단껍대기에 귀신 쫗는다고 붉은 팥같은 것도 넣고 양쪽가 벼갯잎이라고 알록달록 모란꽃이나 수복자(壽福字), 수복강녕(壽福康寧)같은 길상문 아름다운 수(繡)도 놓았고... 그리고 사랑채 거처하는 남정네들이 썻던것은 소나무나 먹감나무, 괴목같은것을 네모나게 직사각형으로 만들고 거기에 비단천과 벼갯잎 만들어 덮기도 하였고 아주 껍질없는것, 또 벼개안에 설합처럼 만들어 뺏다 닫았다 할수있는 빼닫이 목침(木枕)도 있었지. 그 설합안에는 손자들에게 줄 주전부리를 넣어두었다고 하던가? 그리고 어른들은 화나면 이 목침을 들어 겁도 주고 또 심하면 던지기도 하고.. 비슷한것으로는 앉아서 팔을 괴는 고급스럽고 훨씬 큰 퇴침이라던가 팔걸이도 있었다는데 우린 구경하질 못했제. 그런데 그 시절에는 고침단명(高枕短命)이라고 높은 배게를 쓰면 명이 짧아진다고 하면서도 벼개는 다 높았던것 같은데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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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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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계희 | 작성시간 09.07.17 이조시대때나 있었음직한 얘기, 늘 뒤돌아보게 해줘 고마워! 뭐든 부족한 시절이라 배게라도 넉넉히 벼고 싶어서....^^*
  • 답댓글 작성자가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7.17 우리도 광목으로 만든 그 투박한 벼겔 베고 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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