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 위 그리고 물 속 생명들 가운데 생각하고 반성할 줄
아는 것은 인간일 뿐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인간은
생각하고 반성하며 홀로 스스로 더불어 이 땅에서 살아간다.
내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 삶이 통째로 반성되어 후회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긍정적인 것이 하나 떠오른다. 학교 선생 할 때이다.
그 날 내 수업은 사회문제론이었다. 사회복지학에서는,
사회의 문제, 비복지 등을 하나 하나 진단하고 정책과 실천
을 통해 처방한다. 진단이 잘 되어야 처방에 효력이 있으므로
사회문제론은 중요하다. 그 날은 사회문제들 가운데, 정신
건강의 문제, 알코올 등 물질에 대한 중독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나는 내 나름 경험도 있고, 알코올 의존이나 심지어
중독에 이르면 비난 되기보다 반드시 치료되어야 한다는
것을 힘주어 말했다. 만일 알코올 문제가 있는 사람을 비난
하고 윤리적으로 보기만 한다면 치료는 커녕 불난 데 휘발유
붓는 격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 때 한 학생이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너무 우는 것이다. 수업은 중단 됐다. 좀
쉬고 나중에 또 전개 됐다. 그 학생과 차분히 얘기 나누게
됐다. 그 날 저녁에는 아부지 제사였고, 아부지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셨고, 자신과 엄마는 무척 피해를 입었고, 자신은
늘 아버지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죽은 뒤에도
그 분노는 여전하였다. 그런데 교수님 강의를 듣는 순간
그 분노가 무너지고 죄책감, 동정심 등의 마음이 솟아올라
울음도 터져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강의는 뭔가 제대로
한, 나의 일이었던 것 같다. 한 사람을 좋은 방향으로 가게
돕는 것은 잘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중에 그 학생은 책을
펴내 나에게 줬다. 그 책을 보니 그 글들 가운데 그 때 그
강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는 그 강의를 통해 새로운 인생이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하였다는 것이다.
제사를 지낸 그 다음날 오징어와, 아버지가 잘 마시던 소주
한 병을 사들고 아버지 무덤에 가서 용서를 청하며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 뒤 그분은 웃음치료 강사가 되었다. 우울과
분노가 줄어들고 그 마음에 평온이 깃들었다 한다.
그렇다. 용서는 우리 건강과 삶에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우리는 누구나 함께 살면서 나와 남에 대해 부정적
감정, 분노나 원망을 지닐 수 있다. 그 부정적 감정이 쌓이면
남을 해칠 수도 있고 자기를 해칠 수 있다. 만일 그러한 부정의 마음을 풀고 사라지게 할 수 있다면 너무 너무 좋다. 만일
용서할 수 있다면 그 용서는 자기 자신과 관련된 타인에게도
너무 좋은 일이다.
용서는 우리 하나 하나 모두 존중 받아야 할 존재이라는
생각과 연결되어 있다. 그 누구도 업신여겨질 수 없다. 그야
말로 인간은 하늘처럼 존중받을 존엄한 존재이다. 분노나
부정의 감정은 그런 존엄성을 여지없이 까 뭉갠다. 용서는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의무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선택이다.
자신을 용서할 수도 있고 남을 용서할 수도 있다. 용서는
너그러이 이해하고 수용하여 결국 그이의 존엄성을 되살리는
일이다. 만일 우리가 용서를 선택하여 그이를 이해하고
다시 존중할 수 있다면 나도 그도 이제 잘 살아갈 수 있다.
아까 그 학생의 경우처럼 용서는 이미 죽은 자에게도 가능
하다. 용서는 우리를 진실로 치유한다. 나는 우리 세상 속에
서로 용서를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릴 적 듣고 배운 그 기도가 떠오른다. 하늘이여,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의 잘못도 용서하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