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날 젊을 적 나는 우리 안동 일직 조탑동 빌뱅이 언덕
아래에 사시는 권정생 선생님을 몇 번 찾아 뵀다. 오줌 줄을
차고 소변 보고 혼자 끼니 이어가고, 방에는 가득한 책들,
동네 할머니께서 손자가 준, 반지 찾는 이야기, 이런 저런
것들이 떠오른다. 나는 선생님이 드디어 쓴, 한티재 하늘을
보고 사회복지의 관점에서 논문도 하나 쓰기도 했다. 나는
이분이야말로 노벨 문학상을 타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한강 작가께서 노벨상을 타게 돼 민족의 자부심이 마음속에
깃든다. 글을 쓰게 되는 초창기에 권정생은 강아지똥을 썼다.
돌이네 흰둥이 강아지가 눈 똥이 봄날, 땅과 함께 올라오는
민들레를 보듬고 비가 내려서, 똥은 민들레 거름이 되고,
그렇게 똥은 잘게 잘게 부숴져 사라지고, 예쁜 민들레 꽃이
피고, 선생은 몹시도 섬세히 그러한, 자연현상을 목격하고
너무 너무 감동을 받았나 본다. 피어난 꽃을 통해 예수의
십자가도 보고, 화엄의 인연생기도 보았던 권정생 선생님
이었던 것 같다. 하나를 통해 우주의 진리를 그분은 봤고,
마을 아이들과 어울려 놀면서 그이들이 좋은 삶의 길로
가기를 빌던 선생은 연필을 들어 강아지똥을 썼다. 그분은
가셨지만 우리에게 글은 남았다.
돌이네 흰둥이가 똥을 눴다. 날아가던 참새가 똥을 봤다.
에그 더럽다고 했다. 한 곳에 진득 앉아 생각을 쌓아가지
못하고 이리 저리 날아다니는 존재는 똥의 의미를 잘 모르는
모양이다. 강아지똥은 서럽고 화난다. 남이 나를 무시하고
내 가치를 뭉갤 때 우리는 서럽다. 길 위 흙덩이 하나가 똥을
봤다. 똥을 똥이라 해야지 한다. 똥 중에서도 제일 더러운
똥이라 한다. 강아지똥은 그만 울음을 터뜨린다. 흙덩이는
미안했던 모양이다. 강아지똥에게 말을 건넨다. 울음이 멈췄다. 권정생은 그 고요 속에서 흙덩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지난 여름 가뭄이 무척 심할 때 자기가 키우던 아기 고추를
그만 죽게 하여 흙덩이는, 벌을 받아 농부의 달구지에 실려
오다 길에 떨어졌다. 소달구지 아저씨는 그 흙덩이를 소중히
주워담아 싣고 갔다. 강아지똥은 혼자 남았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어미닭 한 마리가 병아리 열두 마리를 데리고
가다가 강아지똥을 봤다. 암만 봐도 먹을 게 없고 찌꺼기일
뿐, 어미닭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냥 간다. 보슬보슬
봄비가 내렸다. 강아지똥 앞에 민들레 싹이 났다. 둘은 얘기
나눈다. 권정생은 가만가만 얘기를 듣는다. 민들레는 강아지
똥에게 말한다. 내 거름이 되어 다오. 강아지똥은 너무나
기뻤다. 강아지똥의 기운이 뻗쳐나왔다. 얼마나 기뻤던지
강아지똥은 민들레 싹을 힘껏 껴안았다. 하늘에서 봄비가
나렸다. 고운 꽃이 피어났다. 강아지똥은 그렇게 사라졌다.
강아지똥은 그렇게 남았다.
생명의 세계는 서로 살리고 살게 하는가 보다. 권정생의
강아지똥을 읽으며 우리 세상을 살리고 살게하는 길을,
우리는 읽는다. 일본에 가셨던 부모님과 함께 일본에서
태어나 안동에 깃들어 사시다가 돌아가신 울 고향 사람
권정생은 글을 썼다. 그분의 무덤에 할미꽃 하나 피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