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문천'의 8.0 지진]
2008년 5월 발생한 '문천'의 강진피해 현장을 보려 '구채구' 관광을 마치고 '성도'로 향하는 중 약
3만원의 입장료를 추가로 지불해야 했다.
일생에 단 한번의 기회라 여기며 종군기자가 전쟁터를 사진으로 표현 하고자 하는 심정으로 샅샅
히 돌아보며 사진을 찍었다.
[지진피해 현장 안내문]
[입장료 받는 곳]
[복구공사로 주택들이 산뜻하다]
[진앙지에서]
흰돌에 ‘2008. 5.12’라는 숫자와 오후 2시 28분에 시간이 멈추고 균열이 생긴 시계가 있고, 그 뒤
에는 지진에 견뎌낸 가장 높은 건물에 오성기가 나부낀다.
유적지에는 붕괴되기 전 건물 안내판과 함께 주변에는 많은 토끼풀이 심어져 있다.
산악지역에 있는 마을 전체와 도시가 파괴되었고 많은 학교들이 붕괴되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들에 접근이 어려웠고, 구조장비의 부족으로 사망 피해자를 구하는데 어려
움을 겪었다.
사망자 중에는 5,300명이 넘는 어린이가 대부분 학교에서 수업을 받던 학생들이었다.
강과 호수들이 바위나 진흙, 지진 잔해물들 때문에 댐처럼 변해 물이 넘쳐 홍수가 났고, 이것이 가
장 큰 위협이 되었다.
2008년 8월과 9월 강진이 다시 그 지역을 강타했으나, 인명 손실과 파괴 정도는 낮았다.
건물의 부실공사에서 비롯되었다는 논란도 들끓었다는데, 부서진 잔해를 보나 철근이 별로 보이
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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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잔해]
[현지인 안내원]
폭삭 무너져 내린 학교건물과 비스듬히 쓰러진 5층 기숙사 건물 등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
놓았다.
교문이 있었던 자리에는 대지진 참상 5주년을 알리는 현판이 커다랗게 걸려 있다.
거의 복구가 되었지만 지진의 흔적은 남아 있으며, 무너진 가옥이나 담 그리고 바위에는 ‘5‧12 汶
川特大地震 農房遺址’라 쓴 글씨가 선명히 남아 아직도 참혹한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천재지변으로 인해 가족과 친지를 잃은 아픔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하고 위로 할 수 있겠는가만, 가
장 가슴 아픈 이야기로는, 대지진 발생 사흘 만에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생후 몇 개월 되지 않은
아기와 엄마의 이야기이다.
죽어가면서 까지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죽은 시신을 보고 많은 사람들들은 강한 모성애에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대지진이 발생하기 사흘 전인 5월 9일, 문천에서 가까운 단목 마을에서는 10여 만 마리의 두꺼비
와 수천 마리의 개구리가 떼를 지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이동을 했다고 한다.
과학적인 검증은 된바 없지만 자연재해를 감지하는 능력 예지가 인간보다 동물이 훨씬 더 뛰어남
을 보여주는 현상이라 하겠다.
대지진으로 인해 산사태가 일어나 산의 지형마저 바꿔놓아 버렸다.
산의 곳곳에는 몇 갈래로 움푹 파인 곳이 생기고, 그 위로 토석이 흘러내려 덮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