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어느 의사의 눈물의 고백|

작성자백암 문진남|작성시간26.06.16|조회수32 목록 댓글 0

 

 

                 어느 의사의 눈물의 고백|           

//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어느 의사의 눈물의 고백>

난 지금도 시장 길을 지날 때면 시장 구석진 자리에서  나물을 팔고 계시는 할머니를 보곤 한다. 
예전에는 이 시장 길을 지나는 것이 고통이었다.  하지만 이젠 나에게 이곳을 지날 여유도 없다. 
어쩌다 가끔씩 들려보는 이곳 시장터.  난 이곳에서 장사를 하는 한분의 고귀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  
엄마 시장 갔다 올 테니, 밥 꼭 챙겨먹고 학교가거라"  난 장사를 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도 잠을
자는 척 했다. 

이 지겨운 가난. 항상 난 이 가난을 증오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벗어나고 말리라는 다짐을
굳히곤 했다.  내가 학교 가는 길 시장 저 귀퉁이에서 나물을 팔고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난 어머니가 나를 발견할까봐 얼른 도망친다.  우리 부모님은 막노동을 하셨다고 한다. 
일하는 도중 철근에 깔리신 어머니를 구하시려다 아버지는 사망하고  어머니는 한쪽 다리를
잃으셨다고한다.  일을 가시지 못하시는 어머니는 나물을 캐서 팔곤 하셨다.  난 항상
들판에 절뚝거리시며 나가시는 어머니가 싫었고 밤새 다듬으시는 모습도 싫었다. 


더더군다나 시장 한 귀퉁이에서 쪼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 비슷하게
장사를 하는 것도 맘에 들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니 퉁퉁 부은 다리한쪽을 주무르시며
나물을 다듬고 계신다.  나를 보자 어머니는 기쁜 낮으로 3,000원을 주신다. 
난 그 돈을 보자 화가 치민다. 
"난 거지 자식이 아니란 말이야 이런 돈 필요 없어!"  그리고는 밖으로 나와 버린다. 
다음날 아침 난 어머니가 시장 간 틈을 타  집에 가서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간다. 
학교길 약수터에서 간단히 세수를 한 다음 물로 배를 채운다. 

난 비록 풍요롭게 먹고 입지는 못했지만 공부는 악착같이 했다. 
그래서 부잣집 자식 놈들보다 공부는 항상 잘했다. 
하지만 그 자식들에게 사는 미움도 만만치 않았다. 
그날 4교시가 끝날 무렵 아이들이 갑자기 웅성거린다. 
복도를 보니 어머니가 절뚝거리시며 교실로 들어선다. 
선생님 드리려고 장사하려고 다듬은 나물을 한 봉다리 들고서.... 

어머니는 내가 어제 들어오지 않자 걱정이 되셔서 학교에 오신 거란다. 
선생님과의 면담을 끝내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이들이 한마디씩 한다. 
"야! 이민석 너네 엄마 병신었냐?"  그놈은 그 잘난 부잣집 아들 현우였다. 
현우는 어머니의 걸음걸이를 따라한다. 무엇이 우스운지 반 아이들은 웃어댄다. 
난 화가 나서 그놈을 정신없이 두들겨 줬다. 그리고서는 교실을 나와 버렸다. 
저녁 무렵 집에 가니 집 앞에 잘 차려 입은 여자와 현우가 어머니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니 애비 없는 자식은 이래도 되는 거야?  못 배우고 없는 티내는 거야 뭐야.
자식 교육 좀 잘 시켜,  어디 감히 우리 집 귀한자식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느냔
말이야. 응. 어머니라는 작자가 병신이니 자식 정신이 온전하겠어?" 
어머니는 시종일관 죄송하다는 말뿐이다. 난 그러는 어머니의 모습이 싫었다. 
집에 들어가도 어머니는 아무말씀 없으시다. 난 어머니에게 한마디 한다. 
"다시는 학교에 오지 마 알았어?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단 말이야." 
"그래 미안하다 난 민석이가 걱정이 되어서......" 

"난 차라리 엄마가 없었으면 좋겠어."  난 해서는 안될 말을 해버렸다. 
슬픔을 보이시는 어머니를 못 본척하며 자는 척 했다. 
"난 꼭 성공할 꺼야."  밤새 이렇게 외쳤다. 
다음날 아침 수업료라며 엄마가 돈을 쥐어 주신다.  얼마나 가지고 계셨는지
너무도 꼬깃하고 지저분한 돈이었다. 
학교에 가니 선생님이 부르신다. 적어도 선생님만은 내편이셨다. 
어머니께 잘 해드리라는 말로 나를 위로하신다. 
선생님께서 나물 맛있게 먹었다고 어머니께 전해 달란다.
난 그러마 했다. 


하교 길에 길모퉁이 배추가게 쓰레기통에서 
배추 잎들을 주어 모으시는 어머니를본다. 
난 모른 척 얼른 집에 들어와 버렸다. 
그날 저녁 배추국이 밥상에 올라온다.  
이 배추!"  난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께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배추가게 아저씨가 팔다 남은 거라고 버리기 아까우니  가져가서
민석이 국 끓여 주라고 하더구나." 
어머니의 말에 난 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정말로 난 거지자식이 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하는 어머니가 너무도 싫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이 어머니 생신이셨다고 한다. 
 
~~~~~~~~~~~~17년후~~~~~~~~~~~~~~~ 

난 의사가 되었다. 가정도 꾸리고 병원도 장모님께서 개업해 주셨다. 
 난 너무도 풍요로운 생활에 어머니를 잊고 살았다. 
돈은 꼬박꼬박 어머니께 보내 드렸지만 찾아가 본적은 없었다. 
아니 어머니라는 존재를 잊고 살려고  노력했다는 해석이 옳을지 모르겠다. 
그런 어느 날.....  퇴근길에 우리 집 앞에 어느 한 노인과  가정부 아주머니가
싸우고 있는 걸 봤다.  다가서니 그 노인은 내가 가장 잊고자하는 어머니였다. 

전보다 더 야윈 얼굴 허름한 옷차림 그리고 여전히 절뚝거리는 다리...... 
어머니는 나를 보자 기뻐하신다. 
"민석아 많이 좋아졌구나."  난 어이 없다는듯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난 차갑게 한마디 한다.  뭐가 모자라서 나에게 온단 말인가.... 
그동안 생활비로도 모자라단 말인가? 
민...석....아....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 
"전 민석이가 아니라 최영호입니다." 
 난 이 한마다를 끝으로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가정부가 애써 돌려 보낸 후 별 노망든 할머니가 다 있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 후 한 달 동안 난 악몽에 시달린다. 
할 수 없이 난 다시는 되돌아가기 싫은  시장이 있는 우리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시장 한 귀퉁이에 여전히 나물을 팔며  기침을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난 가만히 곁에 가서 지켜본다. 

나물을 사려는 한 아주머니가 묻는다.  "할머니는 자식이 없나요?" 
"아니여. 우리 아들이 서울 큰 병원 의사여.  자꾸 나보고 같이 살자고
하는데 내가 싫다 혔어.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자식 신세를 져. 
요즘도 자꾸 올라오라는 거 뿌리치느라고 혼났구먼. 
우리 아들 같은 사람 세상에 둘도 없어.  우리 아들이 효자여 효자어.
어머니는 자식자랑에 기분이 좋았는지  나물을 많이도 넣어 드린다.  
그런 어머니를 뒤로하고 난 예전의 집으로 향한다. 

아직도 변한 게 없는 우리 집  거의 쓰러져 가는데도 용케 버티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살았다는 게 생각에 없을정도였다. 
난 방틈으로 돈 봉투를 넣어놓고는 돌아선다.


1년이 지난 후 난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고교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그래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 발길은  어머니의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시장에는 어머니의 모습이 정말로 보이질 않았다.  도착한 곳에는
선생님이 혼자 집을 지키고 계셨다. 

나를 알아보신 선생님 아무말씀도 없으시다. 무거운 침묵....... 
"민석아 내 옆에 와서 잠깐 앉아라."  선생님이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셨다. 
선생님께선 낯익은 보따리를 나에게 주신다. 
바로 어머니가 가지고 다니시던 나물보따리셨다. 
이 보따리에다 밤새 다듬은 나물들을 싸서 시장에 팔러 가시곤 하셨다. 
"풀러 보거라"  선생님의 말씀대로 난 보따리를 풀렀다.  "돈 아님니까." 

"그래 돈이다. 네 어머니가 너에게 주시는 마지막 선물이다. 
그동안 네가 돌아올까 봐서 그리고 혹시나 네가 성공하지 못하면  다른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모아두신 돈이란다. 
 너 하나 믿고 무슨 미련인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너를 기다렸다. 
너에게 잘해주지 못해 항상 미안해 하셨다. 
내가 가끔 네 어머니의 말동무가 되어드렸단다. 
그래서 나에게 네 어머니의 유언을 전하도록 부탁하셨다.
그리고 네가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도 함께 말이다." 

선생님의 얘기들은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선생님의 얘기는 이러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은  퇴근길에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나를 발견했다고 한다.  자식이 없던 터라 나를 데리고 가서 키웠다고 한다. 
늦게 얻은 자식이라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고 한다. 
어린 나를 집에 혼자 둘 수 없어 항상 나를 공사판에 데리고 다니셨다고 한다. 
그런 어느 날 무너지는 철근 밑에 있는 나를 보고  어머니가 뛰어드셨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도 어머니와 나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셨다고 한다.
 
그 사고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한쪽다리를 잃으셨다고 한다. 
그러니까 난 아버지의 목숨과 어머니의 다리로  살아난 운 좋은 놈이라고 한다. 
혼자가 되신 어머니. 다리마져 불편하신 어머니께 주위사람들은 나를 고아원에
보내라고 하셨단다.  하지만 어머닌 나를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이 여기셨기에 
나를 버리시지 않고 키우셨다고 한다. 

그 후 어머닌 아버지를 잊기 위해 이곳으로 옮기셔서  나물을 팔며 나를 키워
오신 거란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암인걸 아신 어머니는 자신의 몸보다  내 학비를
마련하기위해 병원에도 가지 않으셨다고 한다. 
암 전문의로 명성을 날리는 내가  내 어머니를 암으로 돌아가시게 하다니.....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나를 한번 보고자  물어물어 서울까지 오셨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에게 난 가슴에 못을 박고 말았다. 
자신이 낳은 자식도 아닌데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이 여기셨던 어머니를 버린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를 조용히 내려 보시는  어머니의 사진이 잔잔한 미소를 보이고 있다. 
이런 자식마저도 어머니는 사랑하시나 보다.  내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 
 
그 후 난 시간이 날 때마다 가끔씩 이곳을 들른다. 
혹시나 어머니가 나물을 파시고 계실 것 같은 착각에 말이다... 
가슴 한구석이 못내 저려와  어떤 말로도 그 느낌을 나열할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곁에 항상 계시다하여  부모님의 사랑을 잊은 채 생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연인들의 사랑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세상에 있도록 하여주신 부모님의 얼굴을  오늘!!! 다시 한 번 미소로 바라봄은
 어떠한지요.  깊게 패인 얼굴의 주름은  곧 나를 이토록 성장하게 하기 위함인 노력의
 상징이요.  숱한 세월의 고난을 말하여주고도 남습니다.  떠오르는 지금 사랑한다고
 전하며 말하여 보십시오.

읽고 또 읽어도 눈시울이 뜨거워져 전문을 게재합니다


[모셔온글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