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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 망 증″

작성자백암 문진남|작성시간26.06.22|조회수45 목록 댓글 0

 

                                                            ″건 망 증″

 

성지/김영숙 . 2008. 07. 31 09:28

 

                                                     건망증 

                                                                                                                              
                                                                                             성지 김영숙


 건망증은 기억력이 감퇴되고 매사에 잘 잊어버리는 증상을 말한다. 원인도 스트레스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고 이는 단기 기억 상실일 뿐 병이 아니기 때문에 충분한 휴식과 수면을 취하면 생활하는데 큰 무리가 없다.
  그런 건망증이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정도가 조금 심하여 일상 속에서 낭패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전에 친정어머니께서 ‘너도 내 나이 되어봐라’ 깜빡깜빡 하시는 모양을 탓이라도 하면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인데, 요즘은 내가 자주 쓰는 말이 돼버렸다. 건망증은 아이가 어릴 때는 젖병을 소독한답시고 가스 불에 올려놓고 끓이다가 태워먹은 것이 시초였던 것 같다.
  그 후로 무선전화기를 냉동실에 넣어둔다든가, 전화를 받다가 냄비를 다 태워 먹기도 하고, 실컷 짬 내어 은행에 볼일 보러갔는데 통장이나 납부 할 고지서를 안 들고 가서 낭패를 본적도 있다. 또 어느 날은 동생과 휴대전화로 실컷 수다를 떨면서 휴대전화가 없어졌다고 했더니 “아이구! 언니 건망증 어찌 할까? 지금 통화는 뭐로 하는데?” 해서 실소를 자아낸 적도 있다.


  그러나 어지간하면 직장에서는 실수 안 하려고 무척 노력하는 편이다. 어쩌다 가벼운 실수로 서류 하나만 빠트려도 ‘아줌마의 건망증은 아무도 못 말린다.’며 놀리는 동료들의 농담 한 마디 한마디가 예사로 안 들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실로 엉뚱한 이유로 건망증을 탓하며 한바탕 원맨쇼를 했다. 근무시간에는 늘 휴대전화를 모니터 밑에다 두고 업무를 보는 편이다. 오늘도 예외는 없었다. 두 서너 시간 일을 끝내고 습관처럼 휴대전화를 찾았지만 안 보여 차분하게 지난 시간을 되감기해서 그동안 내 동선을 하나하나체크하며 있을 만한 곳은 다 찾아 봤다. 심지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화장실 휴지통까지 뒤졌지만 휴대전화는 오리무중이라 급기야 동료들을 한 명씩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가끔 젊은 대리 둘이서 휴대전화를 감추며 귀여운 장난을 친 전 적이 있는지라, 신호가 가면 둘 중에 한 명은 무슨 반응이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내 전화를 걸어놓고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무표정으로 일만 하는 사람들에게 내 전화 감췄냐고 물어보면 오히려 '또 어디다 두고 그러시냐?'며 애꿎은 아줌마의 건망증만 들먹일듯해서 열심히 내 내 내 전화번호를 누르고 다른 직원의 표정까지 살피며 조용히 사무실을 발칵 뒤집었다. 동료들은 어쩌면 ‘저 여자가 왜 갑자기 여기저기 다 들춰보고 다니는 거야?’ 생각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한 시간을 넘게 사무실 냉장고, 휴지통, 서랍, 캐비넷, 서류함, 신발장까지 뒤지며 지난 시간을 되짚어 보는 오랜 수고 끝에 다행히 외부에서 사람이 다녀간 기억을 떠올렸다. 사무용품을 배달 온 거래처 사람이 카드체크기를 내 책상에 올려놓고 결재한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그리고 그분과의 통화로 말미암아 카드 체크기와 색깔이 비슷해서 자기도 모르게 가방에 넣었고 갔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고 다시 돌아와 전화를 돌려받긴 했는데, 열심히 일하는 동료들을 괜히 의심한 것이 은근히 미안해져 바로 가게로 달려가 아이스크림을 사다가 그들의 손에 들려주고 영문도 모른 채 맛있게 먹는 동료를 뒤로하고 도망치듯 퇴근을 했지만, 내 머릿속은 여전히 시장 통처럼 복잡했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는 너무 부지런해서 문제다. 내가 명령하지 않아도 내 기억을 지워버려 나를 곤란하게 만들면서 정작 정말 기억하기 싫은 굴욕 같은 까마득한 옛 일은 바로 며칠 전에 있었다는 듯 선명하게 펼치는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내가 겪는 일을 하나도 빠리지 않고 다 머릿속에 담아든다고 과연 행복할까? 슬픈 일, 굳은 일까지 일일이 다 기억하며 살다보면 우리 머릿속은 터져버리거나 정신분열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지울 것은 지우고 지운 만큼 더 따뜻한 기억으로 다시 채우라는 내 삶이 베푸는 배려라고 위안 삼으니 서울 할 것도 없다. 그래도 너무 그 배려에 의존 하지는 안으리라. 나의 건망증에 제일 특효약은 바로 메모하는 습관이라는 거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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