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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南冥 曺植)의 비명(碑銘)

작성자백암 문진남|작성시간22.09.14|조회수37 목록 댓글 3

남명 조식(南冥 曺植)의 비명(碑銘)


연산군은 조선의 열번째 임금이었다.
그가 얼마나 무도한 임금이었고 그의 학정이 얼마나 지독했는가는 세상이 잘 아는 일이다.

그러나 기이한 일은 연산 7년(1501)은 색다른 해였다.
바로 그해에 인물의 보고이던 경상도에서 퇴계와 남명이 같은 해에 태어났다.

퇴계는 강좌(江左 : 안동), 남명은 강우(江右 : 진주)를 대표하는 당대의 성리학자들이였으나
그러한 우연에도 불구하고 그 두 학자들은 편지야 오고갔으나
끝내 한번의 만남도 없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퇴계야 문과에 급제하여 대제학에 좌우찬성에 이르는 고관대작에 올랐으나,
남명은 과거에 응하지도 않아 미관말직의 벼슬에 잠시 응했을뿐
72세의 인생을 지리산 골짜기에 숨어살면서 학문연마와 제자들 양성에 힘쓰다가 세상을 떠났다.
퇴계는 70에 떠나 남명보다 3년 전에 삶을 마감하였다. 
 
평생동안 재야학자로 헌걸차고 당당하게 살았던 남명,
55세의 노숙한 나이에 고향에서 가까운 단성현감(丹城縣監)이라는 좋은 벼슬이 내렸다.
바로 이 벼슬을 사양하면서 올린 남명의 상소(上疏)가 세상을 울린 기막힌 글이었다.

“임금님의 어머님(문정왕후)은 깊은 궁궐의 한사람 과부에 지나지 않고,
어린 임금은 앞전 임금의 한 사람 고아일 뿐입니다.”
라는 유명한 말을 했던 상소다.
천하를 쥐락펴락 떵떵거리던 문정왕후를 일개 과부에 지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던 그 높은 기개,
바로 그점이 남명의 학자적 양심이자 곧은 지조였었다. 
 
남명과 가장 뜻이 맞고 학문 수준이 동급이던 친구는 대곡(大谷) 성운(成運 : 1497-1579)이었다.
그는 지리산 골짜기에 숨어살던 남명처럼 속리산의 깊은 골짜기에 숨어살던 재야학자였다.
아무리 임금이 불러도 전혀 응하지 않고 도만 닦고 학문만 연구했다.
남명보다 4년전에 태어나 7년 뒤에 83세로 세상을 떠난 대곡은 남명의 부음을 듣고
애도의 제문을 지었고, 뒷날 남명의 일대기인 남명의 묘비명으로
그의 인간과 학문 및 깊고 높은 철학에 대한 뛰어난 해설을 남겼다.

天與之德 旣仁且直
斂之在身 自用則足
不施于人 澤靡普及
時耶命耶 悼民無祿

하늘이 덕을 주어 자질이 어질고 곧았네
어질고 곧음 몸속에 채워 혼자쓰기에는 풍족하였네
남들에게는 베풀지 않아 혜택이 널리 미치지 못했네
시대 때문일까 운명 탓일까 백성들 복록 없음을 슬퍼하노라

연구의 성과와 학문의 업적으로
세상을 제대로 요리하고 나라와 백성을 이끌고 건질 인품(仁)과 능력(直)을 지녔지만
끝내는 자신의 어질고 착하며 곧은 성품을 몸속에 숨기고는 백성들에게 큰 혜택을 주지 못함을
슬퍼했던 대곡은 진정한 남명의 친구였고 지기(知己)였음을 보여준다. 
 
한문고전의 참맛은 그런데 있다.
72년의 평생을 길고 길게 나열해놓고, 불과 32자라는 짤막한 운문으로 일생을 정리하고 요약하여
압축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고전의 특이한 장점이다.

남명같은 학덕이 있었기에 그런 비명이 나올 수 있지만
대곡같은 그런 문장가가 있었기에 그런 고전이 존재하는 것 아닐까. 
 
잘못하는 임금과 왕후에게 주저없이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던 남명의 곧은 성품,
그런 능력이 있으면서도 벼슬을 마다하고 학문과 도만 닦다가 세상을 떠난 남명,
그런 이유로 그가 남긴 문집인 <남명선생집(南冥先生集)>이라는 고전은
우리 모두의 영원한 지혜의 보고가 되어준다.
- 박석무(한국고전번역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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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지운/ 김봉수 | 작성시간 22.09.14 남명의 일면을 다시 읽으니 감회가 깊어지네요. 선비중에 참선비 남명의 단성소을 읽으면 그의 기개를 오롯이 느낄 수 있지요.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백암 문진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9.14 진인 조은산의 시무7조는 본받아 쓴것 같습니다
  • 작성자소원/김여화 | 작성시간 22.09.14 남명선생을 기리는 남명제는 경남 사립학교 교장단에서 주최를 합니다. 전에는 제헌절 날 행사를 했는데
    지금은 어쩐지 모르겠네요. 남명선생의 손자가 산청문협 회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20여년도 넘었을거 같은데요 남명제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한대석 회장님이랑 직행타고 단성까지가서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갔었지요.
    유림 들이 많이 모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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