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야 정산 가자
"나비야 청산 가자 호랑나비야 너도 가자 가다가 날 저물면 꽃 속에서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커든 잎에서라도 자고 가자" - 조선시대 나비를 소재로 한 작자 미상의 시조 - 바야흐로 봄을 즐기려 천하 만물이 용트림을 하고 있습니다. 매화를 필두로 산수유 목련 개나리 진달래 복사꽃이 차례로 자태를 뽐내는 우리나라의 봄은 소담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합니다. 겨우내 차가웠던 마음은 스며드는 꽃향기와 함께 한순간에 녹아내리지만, 아쉽게도 봄꽃의 향연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이즈음 우리는 새로운 꽃과 함께 자연의 숨결을 지탱해 줄 메신저를 기다립니다. 바로 '나비(蝶)'입니다. 나비는 예로부터 꽃과 함께 미술에서도 주요한 소재로 자리 잡았습니다. 나비를 주제로 그린 그림을 호접도(蝴蝶圖)라고 합니다. 호접도(蝴蝶圖)에서 나비(蝴蝶)가 첩(妾, 아내)과 발음이 같아 장수와 함께 부부의 화합과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널리 쓰여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단원 김홍도의 '황묘농접(黃猫弄蝶)'을 비롯하여 신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 속의 나비가 유명합니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며 시장경제와 상업이 발달하면서 십장생 등 서민의 소망을 담은 민화가 인기를 끌었고, 미술이 전문화되면서 소, 말, 대나무, 모란 등 각 품목을 잘 그린 전문화가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나비를 잘 그리는 유명 화가도 여럿 있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화가는 나비와 꽃그림만을 즐겨 그려 '남나비'로 불리는 일호(一豪) 남계우(南啓宇)를 꼽습니다. 남계우의 나비 사랑과 관련하여 그의 16세 때의 일화 하나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소년 남계우는 나비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정신없이 따라갔다. 겨우 나비를 붙잡은 곳이 10리 밖의 동소문이었다고 한다. 소공동에서 혜화동까지 4km를 오직 나비만 보면서 뛰어간 사건은 그의 타고난 호기심과 집중력을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 남계우가 자신의 나비 그림 위에 쓴 화제시(畵題詩) 들을 보면 그의 속 깊은 나비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풀빛 짙푸르고 꽃빛 붉은데 석 달 봄 화창하니 무성한 숲 고치는 누런데 흰 분 바른 듯하더니 어린 나비는 검네 저절로 모이더니 비단 한 다발이네" "여치와 귀뚜라미는 가련한 벌레로다 쓸쓸하고 추운 날 시든 것에 붙어 바람에 울고 있으니 벙근 꽃 절정일 때는 오직 나비뿐 평생을 꽃 속에서 사니 진시황이 부럽겠는가" 이 그림은 조선 시대 나비 그림의 제 일인자로 꼽히는 일호 남계우(1811-1888)가 그린 <꽃과 나비(화접도 花蝶圖), 19세기 후반>입니다. 길게 펼쳐진 두 폭의 화면에 각양각색의 나비 무리들이 꽃 위를 어지러이 노닐고 있습니다. 나비 위로는 그림과 관련된 화제(畵題, 그림에 관한 설명))가 적혀 있고, 나비 아래로는 붉은 모란, 흰 모란과 푸른 붓꽃 등이 활짝 피어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오른쪽 화제는 꽁지깃이 제비를 닮은 제비나비부터 네발나비, 굴뚝나비, 남방공작나비 등 나비의 명칭에 관한 고증들이고, 왼쪽 화제는 나비가 어디에서 진화되어 왔는가에 대한 옛사람들 나름의 관찰과 관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모란과 나비가 삶에 희망을 주는 길상적인 의미도 있지만, 장자(莊子)의 호접지몽(蝴蝶之夢) 고사에서 보이는 인생의 허무함을 풍자하는 의미도 담겨있다 하겠습니다. 세로로 긴 두 폭의 그림을 하나의 세트로 진열하는 것을 대련(對聯)이라고 하는데, 19세기에 중국으로부터 유래되어 조선에서도 유행한 새로운 화면형식입니다. 중인이 아닌 양반의 후예로, 선비화가인 남계우는 추사 김정희풍의 관념적인 문인화가 주류를 이루던 시대에 돌연변이처럼 나타나, 생태학적인 분석을 토대로 한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고 극사실적인 화풍으로 나비를 채집하듯 그려 넣었습니다. 노랑을 표현하기 위해 금가루를 쓰고, 흰색을 표현하기 위해 진주가루를 썼습니다. 집요한 리얼리즘의 눈으로 그린 그의 나비는 문화의 의미심장한 반란이었습니다. 나비 그림에 적힌 이 화제는 고증적이고 박물적인 지식 취향을 담고 있는데, 2018년 이 그림을 오래 들여다본 한 언론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비의 날갯짓 순간을 포착해 꺾이듯 휘어진 움직임까지 그려낸 표현력과 과학자 못지않은 관찰력으로 따지면, 이 그림을 그린 남계우는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나비는 신묘(神妙)에 들었다." "착색(着色)이 농염하여 사실(寫實, 리얼리즘)의 묘를 득했다." 남계우의 나비그림과 관련해, 옛 서화 관련 책들이 상찬(賞讚)하는 말들입니다. 그가 그려놓은 병풍 속의 꽃을 보고 나비가 날아왔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남계우는 나비를 살아 움직이는 실물처럼 그려내는 것에 주안점을 두지 않았습니다. 작품 속을 자세히 보면 나비들은, 입체적이기보다는 오히려 평면적이며, 원색에다 실물 크기로 정확하고 자세합니다. 장자는 나비꿈을 꾸고 깨어나 이것이 꿈인가 저것이 꿈인가 중얼거렸지만, 남계우는 깬 채로 나비꿈속으로 들어가, 나비가 나를 부르는가 내가 나비를 쫓는가 중얼거리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중국에 호접지몽(蝴蝶之夢)이 있다면 조선엔 남접지몽(南蝶之夢)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근대 최고의 생물학자로 꼽히는 석주명(石宙明,1908-1950)은 '남나비'의 그림을 "조선의 자료 중에서 가장 과학적 가치가 높은 것"이라고 평가했고, 석주명이 조사한 남계우 나비의 종류는 모두 37종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석주명은 우리나라에서 나비가 등장하는 최초의 문헌은 '범나비'가 등장하는 정철(鄭澈, 1536-1593)의 '사미인곡'이고,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에 '줄흰나비'가 등장했다고 밝히면서, 하지만 나비와 관련된 우리 고전 가운데 과학적 가치가 있는 것은 일호 남계우의 나비 그림이 유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나비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나비자체가 되어버린 남계우... 평양조선미술박물관에까지도 남계우의 나비 그림이 걸려 있을 정도로 나비는 그의 브랜드이자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신종 전염병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정치, 경제적으로 어려운 현실에서 남계우의 우아하면서도 아름다운, 풍류가 느껴지는 나비 그림이 보는 분에게 다소나마 위안이 됐으면 합니다. 종이에 채색으로 그린 이 그림(185.1×47.2cm)은 현재 서울 용산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雨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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