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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선생님, 밀양과 청도의 송전탑반대 싸움은요...

작성자물별|작성시간13.05.26|조회수133 목록 댓글 0

<선생님, 밀양과 청도의 송전탑반대 싸움은요...>

선생님,
말씀처럼 밀양 송전탑 대안으로 지중화 요구, 우회송전선로 요구 얘기가 얼핏 들리기도 합니다. '어라! 요구사항이 그거였나?' 혼란스럽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선생님, 다시 생각해 보면, 8년 싸움 끝에 우리 사회가 송전탑 반대 문제에 눈을 돌린 게 '이치우어르신 분신' 사건 이후로 겨우 2년쨉니다. 그 치열한 8년 세월에 한전과 정부에서는 한결같이 7650000V 전기가 흐르는 100m나 되는 높고 높은 송전탑을 세우는 것 말고 어떤, 그 어떤 대안도 대화도 하지 않고 모르쇠 일관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도 거기 밀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알고 있지 못했구요. 어르신들이 그 답답한 심정에 얼마나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보셨을지도 고려해 주셨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또 갖가지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가 저마다 말하는 이의 의도를 담은 채 전해진다는 것도 감안하셔야 할 것입니다.

어찌 됐건, 저 치열한 싸움판 속에 있는 늙은 그 손길 아니면, 목숨 걸고 지키시려는 논도 밭도 묵힐 수밖에 없는 어르신들에게 '본질적인 문제를 비껴 가는 것 아니냐... 당신들만 비켜가면 되는 거냐, 결국 보상이 목적이냐'고 여쭐 수는 없습니다. '탐욕스런 자본과의 싸움인가,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나아가자는 이야긴가?' 여쭐 일은 아니지 싶습니다.

지금 밀양으로 달려가는 건,
"전기가 부족하다는 말이 거짓임을 우리도 알아."
"핵발전도 송전탑도 결코 찬성하지 않는다."고 소리내기 위함입니다.

설사 지중화나 선로변경으로 결론이 난다 하더라도..
신고리 3호기의 완공을 일사천리로 열어주지 않을 것이고, 그 시간을 벌어 우리 스스로 삶을 되돌아보며 가다듬을 기회를 줄 것입니다.

우리가 좀 더 분발한다면, 핵발전 중심의 에너지정책을 전환하여 자연에너지(재생에너지)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탈핵을 공론화할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누구에겐가는 일생을 걸 만큼 중요한 일을 민주적인 절차 제대로 밟지 않고 제멋대로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우리사회 힘(돈인가, 권력인가...) 있는 사람들에게 '안 된다.' 함께 고함치는 일일 것입니다. 거짓말 하지 말고 드러내놓고, 진정성으로 협의하고, 바른 방향으로 함께 우리 사회가 나아가도록 하자는 외침일 것입니다. 강정해군기지도, 4대강 공사도,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도, 가리왕산 스키장도, 골프장도, 새만금도, 경전철도, 행복주택도, 갑과 을의 관계도, 교원노동자의 노동3권도...

송전선 한 끝은 1기가와트 전기를 만드는 핵발전소가 있을 것이고, 다른 한 끝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앉아 있습니다. 송전탑의 이 쪽과 저 쪽의 폭력이 부딪치는 곳이 바로 밀양과 청도의 송전탑입니다. 지금 보이는 지점은 밀양과 청도지만, 고리와 월성과 울진과 삼척과 영광에서부터 서울에 이르는 수 만 개의 송전탑을 따라, 무서운 소리를 내며 전기가 흐르고 있는 고압송전선 따라 내 온 삶이 폭력임을 생각할 때...
그 폭력에 가담하지 않으면 내 삶을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달려 내려가서 그 현장을 한 번이라도 보고 온 사람은 더 먼 데까지 들리도록 큰 소리로 이야기를 전하는 확성기가 된답니다. 어르신들 이야기 들으면서 눈물을 한 바가지씩이나 쏟고, 치밀어오르는 목울대를 수 없이 삼키며, 어르신들이 기어오르는 산비탈을 함께 기어오르며...
그래서, 그래서 몰려가는 쪽수,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몰려가는 저 쪽수가 그저 단순히 '쪽수'가 아니라는 것도 염두에 두셨으면 합니다.
저마다 크기는 다르겠지만, 삶의 방식과 에너지 전환에 대한 고민을 해 오던 사람들이 희망버스를 마련하고 제 돈과 제 시간을 보태고 달려갑니다.

먼 길 오가며 차 안에서도 결코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지 않습니다. 버스 안에서도 서로 토로하고 교양하고 토론하고 다집니다. 저마다 가진 힘보다 더 큰 힘을 얻는 소중한 포럼이 되곤 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처럼 냉철하게 상황을 바라보고 평가해 주는 시선도 분명 필요합니다만....
그러나 그야말로 자본의 탐욕으로 그 치부를 거짓으로 포장하고, 밀양과 청도의 송전탑 반대의 본질을 비틀어서 바라보게 하려는 저들의 의도에 휘말리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어제, 3월부터 준비하던 '3.11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한일 탈핵교육 공동 워크숍'에 참여하느라 희망버스에 타지 못했습니다.

후쿠시마를 중심으로 한 방사능과 원자력(탈핵)교육 사례, 지진과 쓰나미와 핵사고를 당한 후쿠시마 어린이와 청소년의 인권에 관한 문제, 우리나라의 탈핵교육 현황과 과제, 우리나라 교과서 속의 원자력 분석 등을 서로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주말을 이용해서, 순전히 자비를 들여 비행기를 타고 오신 일본 분들은 동경학예대학 환경교육전공 교수, 후쿠시마현 미나미소우마시의 초등교사, 후쿠시마현 타테야마시 중학교 과학교사, 와세다대 대학원 교육학 박사과정의 연구자 등이었습니다.

워크숍을 마련한 한국측 주체(환생교, 태양의학교, 서울환경연, 어린이환경센터, 초록교육연대 회원들) 스스로 주머니를 털어 그 분들의 체류비와 행사비를 마련하였습니다.

'도쿄발전후쿠시마원전사고'가 난 핵발전소로부터 30km 안에 있던 학교에 근무하시던 쉰을 넘긴 초등학교 선생님께서는 발제하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잇지 못하셨습니다. 듣던 100여 명 참가자들도 목울대 들썩이며 눈물을 참지 못하였습니다. 함께 오신 중학교 선생님도 발제를 몇 번이나 멈추셨지요.

그 동안 우리가 '제대로' 해 내지 못한 교육활동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의 과제가 무거웠습니다. 또 핵발전을 둘러싸고 곳곳에 숨어있는 거짓된 사실들이 우리 교육현장에서 걸러내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참담함이 송전탑 현장에 못지 않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미래세대에게 가해지는 또 하나의 거대한 폭력입니다.

우리 교사들의 눈길이 제대로 된 방향을 보고, 제대로 된 방향을 가리키는 손가락이기를, 바른 실천을 이끄는 혀가 되어야 할 것을 다시 깨닫고 다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밀양 이야기를 언급해 주신 덕분에 저는, 좀처럼 쓰지 못하던 이야기를 가다듬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다음 희망버스에는 선생님과 함께 탈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페북에서 김두림선생님 글을 업어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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