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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想(2024~26)

[斷想]행복하여라...(마태 5,1-12)

작성자이안드레아|작성시간26.06.08|조회수0 목록 댓글 0

받아들임과 감사함에 함께하는 순명

지난주에 군대 동기들 모임이 있었다.

술 잘 마시고 많이도 마셨던 옛날의 이야기를 안주로 삼다 보니 시킨 고기도 남기고

후식으로 나온 냉면을 양이 많다는 이유로 나누어서 먹는 우리들이 되었다.

2차로 맥주 한 잔을 하면서 들은 오랜만에 함께한 선배님의 말씀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누구나 다르지 않은, 앞만 보고 달려오고 자신보다는 조직에 좀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살아온

오랜 군문 생활과 지금도 여전히 국가, 충성, 보국이란 신념으로 봉사활동을 하시는 그분의

삶이었기에 비슷하게 살아온 우리와는 조금 다를 줄 알았는데...

그분에게도 지나온 삶에 대한 회한이 없지 않음에...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삶을 그리고 주변에 챙겨야 할 것도 이젠 남지 않았음에...

꿈으로만 꾸었던 것을 꼭 더 해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다.

그래서 그 꿈? 이 무엇인지를 물었고...

이젠 좀 더 자유롭게 조용한 곳에 가서 한 달 살이를 하면서 자신을 좀 더 돌아보는 시간을

갖겠다는 말씀을 하신다.

거기에 아무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서로의 입을 쳐다보며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아마도 그런 생각에 대한 공감도, 그 반대 급부가 무엇인지를 모르지 않기에도 그렇고,

아니면 꿈이 너무나 소박해서 일지도 ...

돌아오는 전철에서 삶의 천칭에 올라선 내 위치가 어디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오늘 복음 말씀으로 주님의 산상설교(마태 5,1-12)를 듣는다.

주님의 말씀은 '행복하여라'로 시작한다. 당신은 종말론적으로 추구하는 인간들이나 입으로만

신앙하는 사람들에게 체험되는 분이 아니시지만, 정녕 보통의 우리들이 꿈꾸는 그 행복이

선배님께도 함께하길 기원하면서 나의 행복관도 들여다본다.

수레나 쟁기를 끄는, 삶에 있어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구속이나 억압을 뜻하는 '멍에'라는 단어가

있다.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얽매이는 역할의 반대급부인 '몸에 딱 맞는다'는 의미도 있고,

정녕 그것을 벗어 내려놓음에 더 큰 평안함도 함께한다.

만약 그런 평안함이 없다면 멍에를 진 이유에 '어쩔 수 없음'보다는 자신의 불필요한 사심이

더해진 이유는 없는지 ... 가만히 생각을 하면서...

에릭 라슨의 (나이 듦의 반전) 글귀에서 이런 구절이 있다.

"40대와 50대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60대와 70대에 접어들어서야 느끼는 자유로움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당신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어차피 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해방감을 느낀다."

그가 말하는 자유와 해방감의 시기가 나의 의지가 아니지만 왔다.

물론 그런 나를 관심 있게 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모르지도 않는다.

주일 오후 아내와 함께 밤늦게까지 파김치, 고추 절임, 깻잎 김치를 담았다.

아이들이 가져가서 잘 먹기만 한다면야 고마울 것이고 설사 휴게소에 버린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허리도 팔도 아픈 일이고 사서 하는 고생이지만 이 또한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보면...

받아들임과 감사함에 함께하는 순명의 의미를 언뜻 느껴지기도 하는 것도 같고...

(2026-06-08 無逸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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