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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想(2024~26)

[정민 일침]광이불요(光而不耀)

작성자이안드레아|작성시간26.06.17|조회수3 목록 댓글 0

광이불요(光而不耀) 빛나되 번쩍거리지 않기를

광해군 때 권필(權韠)이 시를 지었다.

어찌해야 세간의 한없는 술 얻어서

제일 높은 누각 위에 혼자 올라 볼거나.

安得世間無限酒(안득세간무한주), 獨登天下最高樓(독등천하최고루).

성혼(成渾)이이 말했다. “무한주(無限酒) 에 취해 최고루(最高樓) 에 오른다 했으니,

남과 함께하지 않으려 함이 심하구나. 그 말이 위태롭다.” 뒤에 그는 시로 죄를 입어 비명에 죽었다.

정인홍(鄭仁弘) 이 어려서 산사에서 글을 읽고 있었다. 감사가 우연히 그 절에 묵었다가,

한밤중에 들려오는 글 읽는 소리에 끌려 소년이 책 읽던 방으로 찾아갔다.

기특해서 시를 지을 줄 아느냐고 묻고, 탑 곁에 선 어린 소나무를 제목으로 운자를 불렀다.

정인홍이 대답했다.

작고 외론 소나무가 탑 서쪽에 있는데 탑은 높고 솔은 낮아 나란하지 않구나.

오늘에 외소나무 작다고 하지 말라 훗날에 솔 자라면 탑이 외려 낮으리니.

短短孤松在塔西(단단고송재탑서), 塔高松下不相齊(탑고송하불상제).

莫言今日孤松短(막언금일고송단), 松長他時塔反低(송장타시탑반저).

감사가 그 재주와 높은 뜻에 탄복하며 말했다. “훗날 반드시 귀히 되리라. 다만 뜻이 지나치니 경계할지어다.” 나중에 그는 대단한 학문으로 벼슬이 영의정에 올랐지만, 인조반정 때 88세의 나이로 형을 받아 죽었다.

『도덕경』 21장의 말이다. (※ 실제 도덕경 58장에 해당함)

반듯해도 남을 해치지 않고,

청렴하되 남에게 상처 입히지 않으며,

곧아도 교만하지 아니하고,

빛나되 번쩍거리지 않는다.

方而不割(방이불할), 廉而不劌(염이불귀),

直而不肆(직이불사), 光而不耀(광이불요).

반듯하고 청렴한 것은 좋지만, 그로 인해 남을 해치거나 다른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곧음은 자칫 교만을 부른다. 빛나는 존재가 되어야 하나, 너무 번쩍거리면 꼭 뒤탈이 따른다.

빛나기는 쉬워도 번쩍거리지 않기는 어렵다. 『순자(荀子)』도 이렇게 말했다.

군자는 너그럽되 느슨하지 않고 청렴하되 상처주지 않는다.

寬而不慢(관이불만), 廉而不劌(염이불귀).

남구만(南九萬) 남구만이 병조판서 홍처량(洪處亮) 의 신도비명에서 그 인품을 이렇게 표현했다.

화합하되 한통속이 되지는 않았고

부드러우나 물러터지지도 않았다.

和而不流(화이불류), 柔而不結(유이불결).

『삼국사기』에서 백제의 새 궁궐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 것도 다 한 뜻이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

儉而不陋(검이불루), 華而不侈(화이불치).

사람은 언핏 보아 비슷한 이 두 가지 분간을 잘 세워야 한다. 지나친 것은 늘 상서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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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함의 의미

하루 전 잠시 온 비로 이틀 연속 선풍기 바람에 의지해서 거실 소파에서 잠을 잘 잤다.

일어나 외기 온도를 보니 24도를 알리고 있었다.

앞으로 무더위가 없지는 않겠지만 정점을 지났다는 조금은 안도의 마음으로 더위 탓을 하며

너슨해진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언젠가 모호한 의미 때문에 사전을 찾아본 "적당히"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찾아보았다.

1 的當하다: 꼭 들어맞다. 적당-하다

2 適當하다: 엇비슷하게 요령이 있다. 정도에 알맞다.

말 그대로 뜻이 사뭇 다른 한자지만 우린 같은 발음(적당)을 하는 이유로 두리뭉실하게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적합하기도 할 때가 많이 있음에) 사용되기도 한다.

2)번 뜻의 적당히 하라는 이야기를 필요에 따라서 1)번으로 자신의 마음가짐으로 행한다면

좀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은 것이고, 그 반대로 한다면 내심 편하게 살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적당'이라면 어떤 세상일이 어렵기나 하겠는가마는...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적정'한 기준이 다르기에 항상 선인들은 그 기준 잣대마저도 낮추고

내려놓기를, 그리고 상대방이 먼저가 아니라 자기가 먼저라고 말씀하시며 실천을 하셨다.

그러고 보니 작년 이맘때의 날씨도 근래 들어 최고로 더운 여름이란 이야기를 들었었다.

하지만 작년 여름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음은 나만의 일인지?

이런 것을 미루어 보면 아마도 '적당히'란 말은 이런 선택적 망각증을 가진 우리들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 중에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것이 진실이었다는... 하지만 지금은 세태와 세월이 달라졌다는...

세상의 평화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으랴마는...

평화가 있기를 바란다면 정녕 자신부터 평화롭게 살아야 할 것이다.

배는 물 위에 떠 있지만 정작 배는 물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하지만 배 안에 물이 차면 배는 침몰한다. 물 없이 떠 있는 배를 상상하기 어렵듯이

그리 합리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않는 세상에 눈 감고 회피하며

자기만의 평화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나만의 평화'는 애초에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적당한(?) 처신은 무엇일까?

아침 영적기도 중에 만난 주님의 말씀이 이렇다.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거기에서 생명의 샘이 흘러나온다.(잠언 4 23 )

(2025-08-04 無逸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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