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서로 이기는 게임
우리가 제대로 듣는다면, 예수님은 '서로 이기는'(win- win) 놀라운 세계관을 우리에게 주신다.
(그래서 그분의 메시지를 복된 소식이라고 부르는 거다!)
하지만 에고는 복음을 낮은 수준의 '이기고 지는 게임'으로 만든다.
그것이 이분법으로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당신은 안에 있든지 아니면 밖에 있다.
대체로 에고는 자기 아닌 무엇, 자기를 반대하는 무엇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
신비주의 또는 비이원성만이 '서로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님이 그러시듯이 사건들을 포용하고 용서하고 자비와
긍휼을 베풀고 참아 줄 것인지 그 방법을 모른다.
온갖 모순들로 가득 찼던 사람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느님 앞에서 그리고 자기 안에서 그 모순들을 잡고 있는 마스터였다.
어쩌면 서양 최초의 진정한 자서전이라고 할 "고백록"에서 그는 진정한 하느님 체험의 능력과
깊은 무능력을 동시에 서술한다. 신앙은 절대적으로 안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모른다.
신앙을 이렇게 보는 성경의 관념을 아우구스티누스는 이해하고 살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성 아우구스티누스에게도 맹점이 있다. 특히 성생활과 그가 잘못 정죄한 펠라기우스와 관련해 그렇다. 그가 그들을 정죄한 것은 잘못이었다. 여기서 그는 모르는 것을 넘어, 오히려
부정적으로 알고 심판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 희망도 준다. 나 역시 그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교회 박사로 부르고 있다.
. Holding the Tension: The Power of Paradox(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