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밤의 정기와 여명의 기운/ 41

작성자이안드레아|작성시간26.06.05|조회수1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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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는 이야기는 진부한 이야기이고, 그래서 많은 사람을 짜증 나게 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바르트와 의견을 달리하는 분야를 나타낸다. 나는 부활절 전야 의식에 원시

의식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음을 안다 그런데 그것이 기쁘다.

그것이 지극히 타당하며 그리스도교 다운 것이라 생각한다. 불의 신비, 물의 신비, 봄의 신비,

신성한 봄. 불, 물, 봄의 신비가 주님의 부활로 신성해지고 명확해졌으며, 불, 물, 봄 안에서

주님의 부활을 가리키는 상징이 드러난다. 옛 창조는 오직 새 창조를 위해 만들어졌다.

비록 옛 창조의 형태는 죽을 때 생명이 쇠퇴하는 것이지만 (죽음으로부터 나온 생명의) 새 창조는

옛 창조에서 나온다.

우리 안에 솟아오르는 새 생명의 힘을 우리의 본성으로 짓밟지 말고(그래서 그것이 성화되지 않은

바닷속 용 레비아탄22으로 변하게 하지 말고) 십자가의 고통으로 새 생명이 감미롭고 성화되게

하라. 십자가는 바닷속에서 죽음을 멸하고 바다가 생명의 세례반洗禮盤이 되게 한다.

그러면 물은 레비아탄의 처소가 아니라 생명의 영의 처소가 된다.

우리는 더 이상 카인과 같이 낙인이 찍히는 게 아니라 파스카 양의 피로 날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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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레비아탄은 욥 3.8; 41,1와 시편 74,14 104,26 그리고 이사 27.1에 언급된 거대한 바다

짐승이다. 일반적으로 하느님이 종속시킨 혼돈의 힘이나 거대 괴수나 생물을 의미한다.

또 바다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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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전례(성토요일. 성야)에 대한 신부의 주장이다.

그 반대편에 선 사람은 개신교 신학자 칼 바르트인데 기독교 신앙에 혼재한 자연 계시,

원시 신화적 요소, 즉 인간의 본성적인? 부분에 극도로 비판적인 이유인 것으로 읽었다.

이상과 이상적인 것을 추구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자주 스스로를 포유류에 속하는

인간종임을 망각하는 사람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짧은 신학적인 지식으로 물어본 제미나이 선생은 이렇게 결론을 짓고 있다.

머튼 신부는 이 글을 통해 그리스도의 부활이 단순히 인간 만을 구원하는 사건이 아니라,

불·물·봄으로 대표되는 온 피조 세계(옛 창조)와 인간의 본성을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

완전히 성화시켜 '새 창조'로 일으켜 세우는 우주적 사건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인간적 잣대보다도 중요한 하느님의 자비로움으로 인한 구원...

죄 많은 영혼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일을 기원하며 살아가는 이유일지도...

(2026-06-05 無逸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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