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 열매 맺지 못한 꽃
널리 알면서도 편찬하거나 저술하지 못하는 것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이나 다름없다.
이미 떨어져 버린 꽃이 아니겠는가.
편찬하거나 저술하면서도 널리 알지 못하는 것은 근원이 없는 샘물이나 다름없다.
이미 말라 버린 샘물이 아니겠는가.
能淹博而不能纂著 猶無宲之花 不已落乎 能纂著而不能淹博 猶無源之泉 不已涸乎
(능엄박이불능찬저 유무실지화 불이락호 능찬저이불능엄박 유무원지천 불이학호)
宲: 감출 포, 열매 실(實(실)의 고자(古字))
- 이목구심서 2
세상 모든 것을 두루 알면서도 글을 쓰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스스로 깨달아 터득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만권의 책을 읽더라도 다른 사람의 말과 글을 배우고 익히는 데 만족한다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스스로 의문을 갖고 질문을 던지며 생각하고 이해하고 깨치려 한다면, 구
태여 책을 읽지 않더라도 책을 읽은 사람보다 더 많이 알게 된다.
세상의 이치가 어찌 책 속에만 있겠는가?
"사마천의 문장은 책 속에 있지 않았다"고 한 옛사람의 말을 곱씹어 볼 일이다.
얻은 것이 있으면 애써 글을 쓰려고 하지 않아도 쓸 수밖에 없다.
그 가슴속에 간직한 말과 글이 흘러넘치는데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글을 쓰면서도 두루 알아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스스로 깨달아 터득한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 사람이 세상의 모든 이치에 통달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지식은 서로 연쇄 반응을 일으킬 때 가장 좋다.
하나의 지식을 알게 되면 다른 지식에 대한 의문이 일어난다.
그 의문을 풀어 가다 보면 또 다른 지식에 대한 의문이 생겨난다.
문학을 알면 역사가 궁금해지고, 역사를 알면 철학이 궁금해지고,
철학을 알면 과학이 궁금해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학문과 저술이 지극한 경지에 오른 사람은
반드시 문학가이자 역사가였고 철학자이자 과학자였으며 또한 예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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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디어에 '킬레가 또 데켕게'라는 격언이 있다.
'꽃이 피면 알게 될 것이다(When it flowers, we will see)'라는 뜻이다.
지금은 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고 설명할 길이 없어도
언젠가 내가 꽃을 피우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 자신이 통과하는 계절에 대해 굳이 타인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증명하면 된다.
시간이 흘러 결실을 맺으면 사람들은 자연히 알게 될 것이므로.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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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날에도 혹시나 하여 가게 앞에 자리 집은 화분에 물을 주러 나왔다.
나리꽃이 드디어 첫 번째 꽃을 피워 발걸음 주인의 눈을 기쁘게 한다. 사진 몇 장을 남겼다.
작년에 뿌리를 내리느라 좀 부실하게 보낸 산수국은 올해는 일찍이 가지마다 꽃대를 올리고
이미 절정을 향하고 있다.
거기 비해 항상 기쁨을 주던 터줏대감 수국들은 꽃대도 작아지고 수세도 좀 약해지고 있다.
오히려 작년에 가지치기로 물꽂이 하여 새로 뿌리를 내린 아이들 꽃대가 더 튼실하다.
돌아와 사진을 다시 보는 데 화분 주변에 물을 준 자국에 눈길이 머물렀다.
얼마 전에 읽은 글에서 시인은 인도의 격언을 들어 좋은 글을 적으셨다.
'설명과 증명'이란 단어보다는 '굳이'라는 부분에, 한참을 머물렀는데...
마치 열심히 아름답게 핀 꽃 봉오리보다 사진의 물을 준 '흔적과 자죽'에 머문 눈길처럼...
이틀 전 복음 말씀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 12장 24-26) 이었다.
정녕 '많은 열매'의 전제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물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그렇다고 물만으로 사는 것이 아님도 사실이다.
복음 말씀처럼 정녕 죽어야 할 것이 있음에...
자만과 교만, 욕심과 고집과 탐욕, 무질서한 애착과 이기적인 자아...
신부님은 강론 말씀에서 자세히도 예를 들어서 말씀하셨다.
여전히 그렇지 못하고 연약함에 피신하는 자신을 또다시 비추어보는 오후다.
그리고 주님께서도 보실 그 결과인 자국과 흔적을 ...
(2026-06-01 無逸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