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 백마의 깨달음
천리마의 한 오라기 털이 하얗다고 해서 미리 그 천리마가 백마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온몸에 있는 천만 개의 덜 중에서 누런 털도 있고 검은 털도 있을지 어찌 알겠는가.
이러한 이치로 보건대, 어찌 사람의 한 가지 면만을 보고 그의 모든 것을 판단하겠는가.
不可以驥之一毛之白 而預定其爲白馬也 (불가이기지일모지백 이예정기위백마야)
安知其渾身億千萬箇毛 或有黃處黑處乎 (안지기혼신억천만개모 혹유황처흑처호)
豈徒見人之一偏而論斷其大全哉 (기도견인지일편이론단기대전재)
- 이목구심서 4
일반화의 오류란 부분을 갖고 전체인 양 착각하는 잘못을 말한다.
사물의 일부나 단면을 두고서 모든 것이 그렇다고 지레 짐작하기 때문이다.
박지원 역시 <능양시집 서문(菱洋詩集序)>이라는 글에서 까마귀의 비유를 통해
일반화의 오류를 통쾌하게 반박한다. "까마귀를 보라. 세상에 그 깃털보다 더 검은 것은 없다.
그러나 홀연히 유금(金)빛이 번지기도 하고 다시 초록빛을 반짝거리기도 하고,
해가 비추면 자줏빛이 튀어 올라 번득이다가 비취색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렇다면 내가 그 새를 두고 푸른 까마귀라 해도 좋을 것이고, 붉은까마귀라 해도 문제 될 것이
없다. 본래부터 그 새에게는 일정한 빛깔이 존재하지 않는데, 먼저 내가 눈으로 빛깔을 정했을
뿐이다. 어찌 눈으로만 결정했겠는가? 보지 않고도 마음속으로 먼저 그 빛깔을 정한다."
획일성이 아닌 다양성의 눈과 마음을 갖추고 세상 만물과 우주 자연의 이치와 조화를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백마를 백마라고 단정하지 말라"는 이덕무의 말은
꽃을 '붉을 홍(洪)'이나 까마귀를 ‘검을 흑(黑)’ 한 글자로 가두어서는 안 된다는 박제가와 박지원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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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실을 확인하기도 전에 '미리 단정 짓다'라는 의미인 預定(예정)에서 모든 말씀을 다 하셨다.
그러면 그것을 피하는 방법만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일반화의 오류, 단편적인 모습으로 전체를 파악하는 자신을 돌아보며 채근담 한 구절을 기억했다.
마음이 흔들리면 활 그림자가 뱀으로 보이고
누운 바위도 엎드린 호랑이로 보이나니,
이런 혼란한 마음은 모두 죽는 기운이다.
생각이 고요하면 돌 호랑이도 갈매기로 만들고
개구리 울음 소리도 음악으로 삼나니
듣고 보는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참이로구나.
(菜根譚 後 048)
機動的은 弓影도 疑爲蛇蝎하고 寢石도 視爲伏虎하나니,
(기동적 궁영 의위사갈 침석 시위복호)
此中渾是殺氣요 念息的은 石虎도 可作海鷗하고
(차중혼시살기 염식적 석호 가작해구)
蛙聲도 可當鼓吹하나니 觸處에 俱見眞機니라
(와성 가당고취 촉처 구견진기)
그리고 '보고 믿었다'는 제자들, 마음속 깊이 생각하신 성모님을 묵상해 본다.
눈으로 본 현실을 자기 경험에 빗대어 자기화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다.
혼란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다.
오직 모를 '하느님의 뜻'을 간직하는 성모님의 지혜를 묵상하면서..
심기(心機)가 어지러우면 사물이 흔들리고,
심기(心機)가 평정하면 보고 듣는 것이 모두 여여하다.
심기란 하느님은 항상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그 믿음이 아닐까?
(2020.04-14 無逸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