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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동양학

[문장의 온도]3-2 박쥐와 벌 ​

작성자이안드레아|작성시간26.06.17|조회수2 목록 댓글 0

3-2 박쥐와 벌

집 들보에 난 틈으로 박쥐가 여러 마리 날개를 펴고 붙어 있었다.

나무 끝으로 찔러 보니 쇠를 치는 소리가 났다.

그 밑에 죽은 벌이 무더기로 쌓였는데 모두 머리가 없었다.

그제야 박쥐가 벌의 머리를 먹는 것을 알았다.

야명사(夜明砂)를 가루로 만들어 보니 번쩍번쩍하는 것이 모두 벌의 머리와 눈이 부서진 것이었다.

그러나 낮에 보지 못하는 놈이 어떻게 벌을 잡겠는가. 또 벌집에는 박쥐가 들어갈 수가 없다.

낮이라도 벌은 사냥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일찍이 그 큰 놈을 잡아서 초(醋)를 발랐더니 온몸이 붉어졌다.

그 발을 구리실로 묶어서 대통 속에 넣어 두었는데 아침에 보니 도망가고 없었다.

屋樑木理裂坼 衆蝙蝠 次第布翅而伏 試以木尖築之 聲如戛鉄

(옥량목리열탁, 중편복, 차제포시이복. 시이목첨축지, 성여알철)

其下堆積枯蜂 皆無首 始識蝙蝠食蜂頭也

(기하퇴적고봉, 개무수, 시식편복식봉두야.)

屑夜明砂 則閃閃者 皆蜂頭眼之破碎也 然晝不能視 則安得捉蜂也 且蜂窠非渠所可入也 雖晝蜂或可獵耶

(설야명사, 즉섬섬자, 개봉두안지파쇄야. 연주불능시, 즉안득착봉야? 차봉과비거소가입야, 수주봉혹가렵야)

未可知也 嘗捕其大者 澆之以醋 渾身酣紅 以銅絲鎖其足 囚于竹箇 朝視 廼逃去矣

(미가지야. 상포기대자, 요지이초, 혼신감홍. 이동사쇄기족, 수우죽고. 조시, 내도거의)

- 이목구심서 1

야명사는 박쥐의 똥이다. 몸에 난 종기나 부스럼 또는 눈병을 고치는 약제로 쓰였다.

이덕무는 박쥐를 살펴보다가 머리 없는 죽은 벌을 발견하고는 박쥐가 벌의 머리를 먹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박쥐 똥을 찾아 시험해 보기로 마음먹는다.

박쥐 똥을 가루로 만들어 보니 번쩍번쩍 빛을 발하는데 모두 벌의 머리와 눈이 부서져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이쯤에서 이덕무의 박물학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하는 의문의 답을 찾아보자.

문헌 기록에서 본 지식 정보를 해석하고 기록하는 작업이 한 축이라면, 일상생활에서 얻게

지식 정보를 직접 탐구하고 실험하는 작업이 또 다른 축이다.

전자가 고증(考證)과 변증(辨證)의 학문이라면, 후자는 실증實證의 학문이다.

박쥐가 벌을 먹이로 한다는 사실은 문헌 기록을 통해 얻은 지식이 아니다.

일상생활의 관찰과 실험 과정을 통해 얻은 것이다.

이 순간 이덕무는 그저 방 안에서 서책이나 뒤적이던 서생(生)이 아닌 생물학자로 재발견된다.

이덕무와 절친했던 사우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들은 모두 특정 분야에 깊은 조예를 가진

전문가였음을 알 수 있다. 이덕무는 박물학자, 박지원은 문학가, 홍대용은 천문학자, 박제가는

사회개혁가, 유득공은 역사학자, 정철조(鄭喆祚)는 돌과 조각칼을 잘 다루는 공장(工匠), 유금은

기하학자(幾何學者)였다. 이들이 한데 어울려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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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의 주변에 산다는 이유로 어두운 곳에서 사람에게 그리 피해를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던 중에 잡혀서 식초가 발려지고 그래서 살점이 붉게 변한, 급기야 구리실에 묶여

대통에 감금되어 도망을 간 박쥐를 보면서... 주변에 관심도 많고, 그만큼 치열하게 사셨던,

다른 말로 하면 삶에 긍정적이셨던, 하지만 그 주위에는 공포?를 가지고 살아가던 수많은

존재들을(선인의 글에 등장하는 관심의 대상) 생각했다.

그리고 만약 다재다능하신 선인이 좀 더 조건이 좋은 지금 우리 사회에 사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도 생각해 본다. 어쩌면 그런 조건적 불리함이 더 선인으로 하여금 더 많은 아웃풋을

내게 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면서...

한 사람의 글에서 이런 구절을 보았다.

한국인은 신경 전달 물질로 이것이 분비되면 통증이 완화되고 기분이 좋아지는 등

삶의 만족도를 높인다는 ‘아난다마이드(anandamide)’의 수치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민족이라고 한다. 다르게 말해 유전적으로 행복감이나 만족도를 느끼기 힘든 민족이란 이야기다. 이런 현실적 불리함에 대한 불만족이 역으로 짧은 시간 내 가난을 이겨낸 원동력도 되었지만...

불안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 신경질적이고 예민하다는...

참으로 '공평(公平)'하신 존재를 생각하며 나름의 '공정(公正)'을 묵상해 보는 아침이다.

(2026-06-16 無逸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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