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천적
닭의 크기는 쥐보다 열 배나 된다. 그런데 쥐가 닭을 씹어 배속까지 뚫고 들어가도
닭은 피할 줄 모르고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두 눈을 멀뚱히 뜨고 아무 일 없는 듯 행동한다.
뱀은 지네보다 백배나 크다. 그러나 지네가 뱀을 쫓으면 달아나지 못하고
기운이 빠져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엎드려 있다. 지네가 입으로 들어가면 곧 뱀이 죽는다.
지네는 뱀의 살이 모두 썩어야 나온다. 또 쥐가 거위와 오리를 뚫을 때에도 거위와 오리는
피할 줄 모른다. 돼지, 고양이, 거위는 모두 뱀을 즐긴다. 닭은 두꺼비 새끼를 통째로 삼키기를
마치 물을 마시듯 한다. 거미 오줌이 닿으면 지네가 물이 되고, 달팽이 침이 묻으면 지네의 발이
다 떨어진다. 달팽이는 전갈도 제압한다.
雞之大十倍於鼠也 鼠直啖雞肉 穿入腹中 而雞不知避 亦不小動 兩目湛然若甘心者
(계지대십배어서야 서직담계육 천입복중 이계부지피 역불소동 양목잠연약감심자)
蛇之大百倍於蜈蚣也 蜈蚣逐蛇 蛇不能走 氣沮如痴 張口而伏 蜈蚣入其口 須臾蛇死
(사지대백배어오공야 오공축사 사불능주 기저여치 장구이복 오공입구구 수유사사)
𦘺肉皆壞爛而始出 鼠又穿鵝鴨 鵝鴨不知避 猪猫鵝皆嗜蛇 雞活呑蟾子 如飮水矣
(지육개괴란이시출 서우천아압 아압부지피 저묘아개시사 계활탄섬자 여음수의)
蜘蛛溺沾蜈蚣 蜈蚣化爲水 蝸牛涎繞蜈蚣 蜈蚣足盡落 蝸牛亦伏蝎
(지주뇨점오공 오공화위수 와우연요오공 오공족진락 와우역복갈)
- 이목구심서 1
강자와 약자의 관계는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다.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다.
닭은 쥐보다 열 배나 크지만 쥐에게 잡아먹힌다. 뱀은 지네보다 백배나 크지만
지네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런데 지네는 거미의 오줌에 물이 되고, 달팽이의 침에 발이 모두
떨어져 나간다. 심지어 달팽이는 전갈까지 제압한다. 자연은 사람의 오래된 상식과 믿음을
순식간에 뒤집어엎곤 한다. 자연은 알면 알수록 매력적이다.
=======================
폭넓은 백과사전적 지식을 바탕으로 사소한 자연 현상에서도 깊은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내는
선인은 이번 글에서 세상의 어떤 존재도 절대적인 강자이거나 절대적인 약자일 수 없으며,
크기와 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의 오묘한 상극(相剋)과 천적 관계가 존재한다는
말씀으로 읽었다.
아마도 타고난 외형적인 조건에 자만하거나 위축되지 말라는 말씀으로도
그런 세상의 모든 존재는 서로 맞물려 있는 이치로 스스로의 겸손과, 상대에 대한
존중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압도적인 천적을 만난 공포에 기운이 꺾여 바보가 된 상태의 氣沮如痴(기저여치)의
상황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甘心者(감심자)의 모습을 미물이라고 생물에게서 배우며
한여름의 뜨거운 오후를 보낸다.
(2026-06-23 無逸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