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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전통 문양
우리 선조의 미학을 엿볼 수 있는 도자기 문양과 떡살과 다식판의 아름다움이 깃든 절편과 다식으로 장식했
습니다. 그릇 하나, 떡살 하나에도 꽃ㆍ태극 문양ㆍ수(壽)ㆍ복(福) 같은 문자 문양을 담아 장수와 다복을 염원한 옛 숨결이 살아나 다감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합니다.
햇살무늬 떡살 / 고정애(시인)
햇살무늬
떡살을 갖고 있다
하얀 뫼떡
푸른 쑥떡
검은 모싯잎떡
두툼한 긴 네모
안반 위에 올려놓고
손잡이 꼭 쥐었다
찍는다 떡살
둥그렇게 팔방으로
햇살이 퍼져 나간다
햇살 업고 일어서는
앞산 뒷산
나무숲을 흔드는
바람결
지천으로 고개젖는
진달래 철쭉
진달래 빛 그대 사랑
내 가슴 한복판에
찍고 또 찍는다
무늬도 선명하게
새기고 또 새긴다.
우리의 문양
먹는 것 하나에도 보는 즐거움과 좋은 의미를 담아낸 떡살 문양,
단아한 멋을 살린 한복의 문양, 고궁에 갔을 때 고개를 들면 눈에 들어오는 단청의 문양,
고가구와 도자기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문양,
전통 기법으로 만든 금침이나 보자기에 수놓은 예스러운 문양….
선조의 얼과 지혜, 소박함이 묻어나는 문양에는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에디터 조민진 캘리그래피 강병인 포토그래퍼 김재이 어시스턴트 이승헌, 박주희
스타일리스트 양은숙 어시스턴트 김소혜, 주민영 소품협찬 표지에 칠보문 초벌 접시와 잉어ㆍ십장생ㆍ목단ㆍ보상화문 청화백자 접시(월정도요, 031-634-8590), 수레차ㆍ꽃문 절편과 다식, 수례차문 나무 떡살(좋은날, 02-848-6436ㆍwww.joheunnal.com), 목차에 조각보(금단제, 02-517-7243ㆍwww.kumdanje.co.kr)
문장(紋章)을 가진 삶
최근 한 친구가 자신만의 문양을 만들어 사용하련다는 이야기를 했다.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어떻게 만들지는 몇 년째 구상 중인데 여하튼 멋진 문양을 만들어 그것을 자신이 아끼는 가구며 옷이며 책 등에 새기거나 찍거나 하겠다는 뜻이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그래야 그 소중한 것들을 더욱 아끼고 자랑스럽게 사용할 것 같아서란다.
문득 유럽에서 느꼈던 유사한 소회가 떠올랐다. 영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등 각 대학의 칼리지는 저마다의 상징으로 독특한 문양을 내세운다. 독수리와 같은 동물을 모티브로 한 것도 있고, 다채로운 기하학적 무늬를 사용한 것도 있다. 대학뿐 아니라 여행 다니며 둘러본 유명한 궁전이나 성(城) 등지에서도 그 왕실이나 성주의 문장을 반드시 보게 된다.
그때마다 나도 나만의 멋진 문장을 만들어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 개명한 20세기, 21세기에 무슨 봉건 영주가 될 것도, 능력도 없으면서 하며 실소로 그쳤다. 하지만 난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후로 생각을 바꾸는 중이다.
우리에게는 왕과 왕실을 제외하고 한 가문을 상징하는 특별한 문장 문화는 없었다. 아마 엄두조차 내지 못했으리라. 절대 권력의 왕 아래에서 감히 자신의 가문을 내세우는 문장이라니! 여차하면 역심을 의심받아 멸문지화를 당하기 십상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나름 가문, 아니 그저 집안을 상징하는 무엇이나마 갖고 싶기는 했던 모양이다. 가훈(家訓)을 비롯해 살림살이의 작은 다식판이나 문살 등지에서 엿볼 수 있는 각각의 독특함이 그런 마음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생각할 수 있으니.
그러고 보면 가훈은 우리에게 일종의 문장이었던 셈이다. 단순히 도덕적인 교훈을 넘어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할 원칙, 일에서 최우선으로 해야 할 가치, 넘지 말아야 할 금단의 선 등을 제시하는. 하지만 그것은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내부의 절제를 기본으로 한 것이었다.
여인들의 세상에서 전해오는 여러 문양은 더욱 은밀하고 소박했다. 변치 않는 금슬을 원앙 문양에 담아 기원하는 베갯잇, 제각각 꽃의 의미로 사랑과 건강을 기원하는 다식판 등등.
겸손과 절제는 인간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자세다. 은근함과 소박함은 화려함을 뛰어넘는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서양보다는 동양 문화에서 더욱 도드라진 미덕이었다. 그렇지만 지나친 절제와 감춤은 자신감의 위축을 불러 소극적 자세로 삶과 세상을 마주하게도 한다.
반드시 바뀐 세태라서가 아니다. 기본적인 자세를 갖추되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라야삶이 활기차고 여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가문이 고루하게 여겨진다면 개인이라도 좋다. 아니, 집안이나 가문이 무엇이 고루하다는겐가. 그것은 뿌리이며 귀결점이기도 하다. 뿌리에 대한 자긍심은 삶에 있어 절제의 용기를 준다. 빛나고 자랑스럽던 삶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본다. 가장 소중한 가치를 망각한, 순간의 나약함 때문이다. 그러한 때 욕망을 절제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면 그의 삶은 물론 세상도 아름다울 것이다.
그렇다고 뿌리의 자긍심이 매사 절제만을 강요해 삶을 옥죄는 것은 아니다. 내 근원에 대한 당당함은 반듯한 꿈을 주고, 그 꿈을 이뤄가는 데 필요한 자신감과 끈기도 준다. 그저 잘 살겠다는 정도는 욕망일 뿐이다. 왜 그것을 추구하는지, 그것이 어떤 가치를 지녀 가장 소중한 것인지를 깨우치면 절대 꺾이지 않는 투지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야 삶이 아름답다.절반쯤만 이뤄도 흐뭇하다. 아쉽지 않다. 뿌리가 있는 가치의 추구였으니 내 뿌리의 다른 줄기가 나머지를 이뤄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어떤 가치와 의미를 담은 문장인지만 고민할 생각이다. 독수리의 눈매에 곰의 끈기이면 어떨까? 햇살의 문양을 희망의 푸른빛으로 형상화하는 건?… 아무튼 기대하시라!
글 김정현(소설가) 포토그래퍼 안종근 촬영장소 경복궁
‘십장생도병풍(十長生圖屛風)’(조선시대,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고 내세를 향한 꿈을 담은 십장생도는 해, 구름, 산, 물, 불로초, 소나무, 대나무, 학, 사슴, 거북 10가지 장생물을 한데 묶어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낸 그림으로 예부터 십장생은 그림 안에 머물지 않고 공예품에 두루 등장했다.
심미안으로 완성된 축복의 언어,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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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곱씹을수록 우리 전통문화의 특색을 간결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다.권위나 기교에 치우치지 않고 순리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 바로 문양이다.
문양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우리 선조의 미의식과 정서를 담아낸 하나의 기호였다. 생활 곳곳에 숨어 있는 문양을 따라가며 선조가 전하는 축복의 메시지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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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조선 시대 사람이 살던 오래된 한옥 앞에 서 있다.
건축만도 볼거리가 넘치지만 지금은 디테일을 찾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자. 입구에서 만나는 자물쇠의 팔괘부터 대청 사문합문(四門合門)과 방 분합문(分閤門)의 여러 문양, 창살에 띠살무늬와 빗살무늬, 그리고 집 안의 베갯모, 꽃신, 함, 항아리, 수저, 찻잔까지 세간살이 하나하나에 새긴 다채로운 문양이 당신의 눈을 얼마나 즐겁게 할지 상상해보자. 더욱이 거북 문양의 연적을 볼 때, 모란이 그려진 치마를 볼 때, 아름다움 뒤에 숨은 의미를 헤아린다면 한옥 한 채에서 보내는 몇 시간이 TV와 함께한 온종일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 전통 문양에는 동양인의 사상과 한국인의 정서가 섞여 있다. 필자는 문양의 이름이라고는 태극밖에 몰랐던 어린 시절에도 동서양의 여러 패턴이 섞인 그림책을 접했을 때 어렵지 않게 우리 전통 문양을 찾아내곤 했다. 또래 친구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눈썰미나 지식이 아닌 정서의 문제다. 그래서 문양은 단순한 장식 요소가 아니라 시대와 정신, 양식을 반영하는 하나의 시와도 같다. 여러 번 읽고 의미를 헤아려야 하는 시구처럼 문양을 읽고 즐기는 데도 이해가 필요하다.
내소사와 통도사의 창살이 그토록 정성스럽고 반듯한 문양으로 오랜 시간 빛나는 것도 많은 이들이 그 뜻을 헤아리고 이해하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문양은 결국 아는 만큼 보인다.
전통 문양의 섬세한 미의식과 정신 세계
선조의 우주관이 반영된 고대 문양
문양이 가치 있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상징성 때문이다. 문양에는 문양을 향유하는 민족의 역사와 종교, 생활과 세계관이 오랜 세월에 걸쳐 집약, 축적되어 있다. 고대 인류는 자연 현상과 생활 주변을 모방해 그림으로 그리고 그것을 축약했다. 그리고 자연을 경외하며 대비하기 위해 문양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했다. 이는 일정한 약속에 의해 기호로 사용되면서 언어의 역할을 대신했다. 특히 자연에 대한 것은 그 상징성이 더욱 견고했기 때문에 둥근 것은 하늘, 네모난 것은 땅, 팔각은 우주 공간 등과 같이 하나의 약속이 되어 널리 퍼졌다.
이는 우리가 잘 아는 신석기 시대의 대표 유물인 빗살무늬 토기에도 나타난다. 빗살무늬는 말 그대로 비를 표현한 것으로, 비를 내리는 하늘에 대한 고대인의 자세가 드러나는 소산이다. 비는 태양이나 번개처럼 하늘과 관련된 것으로 확대 해석되기도 한다. 빗살무늬 토기를 밑에서 올려다보면 여러 선이 모여 원을 이루어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청동기의 잔줄무늬 거울에도 동심원이 들어간 태양 무늬가 있다. 이들을 통해 선사 시대 이래 조형 미술 속에 나타나는 갖가지 모양의 선이 하늘과 관련되어 있으며, 문양이란 결국 그 시대의 삶과 결코 무관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태극무늬에는 동양 사상으로 바라본 우주의 섭리가 담겨 있다. 하늘과 땅을 비롯한 천지 만물이 음양 이원론으로 성립된다고 볼 때, 태극은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며 변화하고 새로워지는 생성의 문양이다. 태극기에 나타나는 팔괘 역시 동양의 음양 사상을 반영한다.
팔괘는 천지 만물의 현상과 형태의 기본이 되는 8가지를 나타낸 기하학적 상징 부호다. 하늘, 못, 불, 번개, 바람, 물, 산, 땅을 뜻하는 모양이 모여 가족과 동물, 음과 양을 이루며 인간의 모든 길흉화복과 흥망성쇠가 그 속에 녹아 있다.
동물로 전하는 행복과 경계의 메시지
오랜 시간 전해진 문양은 의미를 내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주술의 능력까지 갖게 된다.
특히 동물이나 식물 문양은 악귀를 쫓거나 벼슬을 얻거나 자손을 잇도록 돕는 수단으로 활용됐으며, 욕심이나 교만을 멀리하도록 경계심을 자극하는 역할도 했다. 그중 주술성이 강한 대표적인 것이 우리 선조가 이상향을 생각하며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사신(四神)이다.
하늘의 동서남북 네 곳을 수호하는 사신 중 하나인 청룡은 고대 천문학에서 말하는 동쪽 일곱 별의 명칭으로 동쪽 방위를 수호한다. 백호는 서쪽 일곱 별을 수호하며, 주로 무덤의 서쪽 벽에 그렸다. 주작은 남쪽을 수호하며 문양에서 붉은 봉황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북쪽을 관장하는 현무는 경복궁 광화문에 거북과 뱀이 한데 얽힌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모두 상상 속의 동물이지만 궁궐 내부에 장식될 정도로 전 방위를 수호하는 신적 존재로 여겼다. 생활 전반에서 사신보다 더 자주 등장하는 것은 바로 용, 봉황, 기린, 거북의 네 동물을 의미하는 사령(四靈)이다.
우리 문양에서 빠질 수 없는 소재인 용은 수많은 동물의 장점을 취합한 신비의 동물이다.
<본초강목>에는 “머리는 뱀, 뿔은 사슴, 눈은 귀신, 귀는 소, 목은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발바닥은 호랑이를 닮았다”고 묘사돼 있다. 전설에 따르면 용이 구름 속에서 학과 만나 낳은 것이 봉황이고, 땅에서 말과 만나 낳은 것이 기린이다.
봉황은 뱀의 목과 거북의 등, 물고기의 꼬리를 가진 새로, 아무리 배고파도 좁쌀 따위는 먹지 않는 고고함을 지녔다. 그 때문에 왕비의 장신구나 귀족의 가구에 새겼다. 기린 역시 상상 속의 동물인데-재주가 뛰어난 아이를 일컫는 ‘기린아(麒麟兒)’의 그 기린이다-이마에 뿔이 하나 돋아 있고 사슴 몸에 소의 꼬리, 화염 모양의 갈기를 달고 있으며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고 한다.
위나라에서 편찬한 <광아>는 기린을 “인을 머금고 의를 품고 있어 걸음걸이는 법도에 맞으며 살아 있는 벌레는 밟지 않고 돋아나는 풀을 꺾지 않으며 함정에 빠지지 않고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라고 설명한다. 그 때문에 기린은 어진 성인이 출현할 때 전조로 등장하는 동물로 알려졌다. 한편 거북은 사령 중 유일하게 실재하지만 오랜 역사를 통해 영험한 동물의 자리에 있었다. 등 껍데기의 무늬로 길흉을 점치며 주술적 존재로 자리매김한 거북의 문양은 문방구나 인장, 가구 등에 사용되었다.
사신과 사령 외에 길운을 상징하는 대표 동물로는 호랑이, 사슴, 그리고 조류가 있다. 호랑이는 잡귀를 쫓는 동물로 두려움과 동시에 신성의 대상으로, 포악한 모습이지만 인간의 편에서 잡귀를 물리치는 영물로 묘사된다. 사슴은 무리 지어 살며 자리를 옮길 때마다 낙오자가 없는지를 살피는 속성이 있어 우애를 상징하며 뿔이 있어 벼슬과도 관련돼 있다. 우리 문양에 자주 등장하는 것 중 국내에 서식하지 않는 동물도 있다. 창덕궁 희정당 굴뚝에서 볼 수 있는 코끼리다. 코끼리를 가리키는 상(象)이 상서로움을 뜻하는 상(祥)과 발음이 같아 길운을 상징하는데, 이는 불교문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같은 이유로 박쥐도 한자 표기가 ‘편복’이라 행복을 뜻하는 무늬로 자주 쓰였다. 다소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박쥐 문양이 궁궐 한쪽을 장식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고기도 동물 문양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고려 시대 관인들이 허리에 차던 물고기 모양의 주머니는 어대(魚袋)라고 하는데, 이는 풍요와 등용을 상징하는 것이다. 가정에서는 다산을 상징하는 무늬로 자주 쓰였다. 15세기 분청사기조화 물고기무늬 편병이나 19세기 청화백자 물고기무늬 접시에는 쌍을 이루는 물고기무늬가 있다. 고대 전설에서 비목어라는 물고기가 서로 쌍을 이루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생활용품에 새겨진 물고기 2마리는 부부의 조화와 다산을 상징한다.
오늘날, 긴 말 대신 장미 한 다발이 고백을 대신하는 것처럼 과거 선조는 적합한 의미를 가진 문양을 찾아 원하는 메시지를 전하지 않았을까.
‘청자상감동자당초문주자’(고려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덩굴과 같은 식물이 뒤얽힌 모양을 나타낸 당초무늬는 연속무늬로도 불린다. 그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모습 때문에 당초는 ‘영속성’을 의미하며, 불교에서는 극락 세계 또는 연화장을 상징하기도 한다. 당초무늬는 전 세계
적으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문양으로서, 12세기 고려 시대에는 불교미술, 청자 잔, 대접 등에서, 조선 시대에는 도자기, 나전칠기, 단청, 주화, 회화 등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아름다운 시절을 대표하는 오브제, 식물
집이든 소품이든, 크든 작든 식물무늬가 오르지 못할 자리는 없었다. 꽃무늬는 과거에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사용된 무늬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문화가 크게 꽃을 피운 통일 신라 시대에 연화, 모란, 당초, 사군자 등 화려한 꽃무늬가 생활 전반을 장식했다. 이때 서역 문화가 전파되면서 포도, 석류 등이 와당이나 석조에 나타났다. 화려한 꽃무늬는 무속에서도 다양한 용도로 쓰였고, 조선 시대에는 옷부터 수저까지 생활 전반에 경계 없이 사용됐다. 장식성이 강한 꽃에도 의미를 담아 사용했음은 물론이다.
꽃을 포함한 여러 식물 중 우리 선조가 가장 사랑한 것은 역시 사군자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군자가 지녀야 할
품성이라 여기며 예술 분야에 즐겨 다룬 사군자는 꽃병이나 연적, 항아리나 함 등에 두루 그려졌다.
매화는 군자의 지조와 절개를, 난초는 자손 번창과 우정을, 국화는 길상과 정조를, 대나무는 군자의 품격을 상징한다.
식물 장식 요소 중 백자와 청자, 나전칠기에 자주 사용된 것으로 당초문(唐草紋)이 있다.당나라풍 덩굴무늬를 일컫는 당초는 고대 이집트에서 발생해 전 세계적으로 다양하게 사용됐다. 당초무늬는 기원전 4세기경 알렉산더 대왕의 동쪽 정벌로 인해 페르시아를 넘어 중국으로, 그리고 삼국 시대 즈음에 한반도에 전래된 것으로 추정한다. 당초는 겨울을 견뎌내며 끊임없이 뻗어가기 때문에 대를 잇는 것을 상징한다. 그 때문에 손이 귀한 집의 아녀자의 염원이 여기에 담겨 있다.
식물이 있는 곳에는 곤충도 빠지지 않는다. 특히 나비는 동서양 모두에서 행복과 연애에 비유된다. 또 매미는 높은 나무에 올라 공기와 이슬만 먹고 산다고 해 고결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화훼초충도에 등장하는 개미는 순종을 잘하는 곤충으로 덕행을 상징하지만 때에 따라 사리사욕을 취하는 검은 속내로도 해석됐다. 벌은 검소함을 상징하는데, 주로 초충무늬 항아리나 화각 실상자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생활 속 깊은 곳으로 뿌리내린 문양
강렬한 색채의 민화로 탄생하다
아무리 훌륭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더라도 생활에 쓰이지 않으면 존재감이 드러날 수 없을 것이다. 문양이 생활에 더 밀접해진 것은 색을 쓰고 직물을 짜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유색 도안과 의복은 여러 장신구가 발전하는 데 영향을 미쳤고, 문양에도 더 큰 상징성이 부여됐다. 임금의 곤룡포에서 서민의 적삼에까지, 문양은 생활 전반으로 확대됐다. 특히 화려함보다 정성에 기반을 두면서 문양은 가문의 고귀함을 반영하는 도구가 되었다.
특히 민화를 보면 선조가 문양을 얼마나 멋스럽게 사용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민화는 회화의 영역에 가깝지만 공예품에 새기기 위해 그려지는 도안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 민화는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을 바탕에 두며, 그림이 서민에게 미치지 못할 때 늘 서민 사이에 있었다.
민화를 그린 사람은 당시 이름 모를 화공들이었지만, 민화의 완성도와 파급력을 볼 때 오늘날의 훌륭한 일러스트레이터라고 할 수 있다. 민화 중 우리에게 가장 유명한 것은 까치, 호랑이와 십장생도다. 까치, 호랑이는 문에 걸어두고 악귀를 쫓는 벽사용 그림이다. 큰 소나무를 배경으로 익살스럽게 웃고 있는 호랑이와 소나무 위에 앉은 까치의 모습이 서민층의 해학성을 드러낸다. 민간 신앙의 세계를 나타내는 이 그림은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호랑이, 까치, 소나무, 닭, 나무, 돌 등을 등장시키며 생활 전반에 두루 사용됐다.
한편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고 내세를 향한 꿈을 담은 십장생도는 10가지 장생물을 한데 묶어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낸 그림이다. 해, 구름, 산, 물, 불로초, 소나무, 대나무, 학, 사슴,거북 10가지 요소가 등장한다. 10가지인 이유는 예부터 열 십(十) 자가 동서남북 모두를 가리키며 완전체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십장생은 그림 안에 머물지 않고 공예품에 두루 등장했다. 소재를 임의로 몇 가지 선택해 석조물이나 자기 등에 문양으로도 사용했다.
‘모란도’(242.0×74.0cm, 조선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모란은 예로부터 부귀의 상징으로 인식되어왔다. 모란만을 따로 그린 것도 있지만 바위와 함께 그리거나, 매화, 난초,국화, 대나무의 사군자(四君子)와 조화시켜 그리기도 했다. 모란은 꽃 중의 왕으로 임금을 상징하며, 그 자태와 화려함으로 부귀영화와 안락과 남녀 화합을 상징한다.
‘나전칠기 가께수리’(조선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나전을 이용해 윗면에는 복숭아와 한 쌍의 새를, 정면에는 귀갑(龜甲)과 매화를, 오른쪽 측면에는 산을 배경으로 소나무·학·사슴을, 왼쪽 측면에는 죽순을 비롯한 여러 대나무, 매화, 새 문양등을 마치 여러 폭의 회화처럼 표현했다.
섬세한 세계, 도자기 문양
우리 식기의 대명사인 도자기 위에서 문양은 더욱 한국적인 아름다움으로 피어났다. 도자기의 특성상 미흡한 장식은 자기 자체를 훼손할 수 있으므로 이때에는 더욱 섬세한 기술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문양은 다른 재료를 넣어 새기거나 날카로운 도구로 긁어내거나 철사 안료를 사용하는 등의 기법을 통해 완성됐다.
조선 시대 전통적인 도자기 무늬는 기하무늬와 식물무늬로 나뉘어 발달하다가 어느 시점에 서로 결합하기도 했다. 당초문과 매화문 등이 널리 사용됐으며, 운학문이나 어문도 있었다.
운학문은 학이 구름 사이를 나는 문양으로, 음양의 조화와 함께 장수를 의미한다. 어문이 올려진 도자기는 물고기가 다산과 부부 화합을 상징해 혼수품에 많이 사용됐다.
여러 도자기 문양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12세기 고려 청자의 한 종류로 고대 이집트에서 비롯된 연리문이다. 연리문은 먼 곳을 거쳐 오는 동안 폭넓은 세계성을 가지고 독특하게 발달한 도자기의 한 종류로, 청자의 영향력이 큰 고려 시대에는 잘 쓰이지 않는 자기였지만 추상성과 오묘함 때문에 사찰에서 주로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연(練, 씻고 문질러 바래다)과 리(理, 무늬를 내다)의 두 글자로 알 수 있듯 옥돌을 갈거나 나무껍질을 벗기고 속을 문질러 아름다운 무늬가 드러나도록 한 것이 연리문의 제작 기법이다.
이 같은 도자기를 마블드(Marbled)라고 한다. 전통을 새롭게 창안하려는 노력에서 나타난 새로운 문양은 도자
기의 세계를 더욱 넓혔다.
에디터 김선미 자료 협조 국립고궁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참고도서 <한국의 전통 문양>(임영주 지음, 대원사 펴냄), <전통문양>(허균 지음, 대원사 펴냄), <우리의 공예문화>(추원교 지음, 예경 펴냄)
전통 무늬 속에 깃든 선조의 지혜와 염원
상서로운 자연의 기운을 담다
한국인은 대자연의 질서에 조화롭게 순응하면서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 각종 문양을 만들어 냈다. 이 문양들은 대부분 자연에서 소재를 얻은 것으로 문양 속에는 아름다운 장식미와 함께 우리 전통의 미의식이 숨 쉬고 있다. 기와에도 여러 가지 문양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아마도 살고 있는 곳의 가장 윗부분인 지붕에 대해 어떤 의미를 담은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선조는 하늘을 숭배했는데 지붕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사람들은 원하고 바라던 것을 지붕에 써놓
고 상징적인 문양을 새겨 놓곤 했다.
예부터 기와가 발달해서 출토되는 수막새에는 연꽃무늬, 바람개비무늬, 덩굴무늬, 얼굴무늬 같은 다양한 무늬가 새겨져 당시의 뛰어난 예술성을 나타나는데, 그중에서도 연꽃무늬는 군자와 선비의 고고한 모습과 닮아 귀히 여겼다. 또 연꽃과 함께 궁궐과 사찰의 단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으로 구름무늬가 있는데 선조들은 구름을 보고 하늘의 뜻을 헤아렸다는데, 멈춘 듯하면서도 끊임없이 흐르는 구름의 모습을 통해 인간 세계와 천지자연의 무상과 영원성을 그렸다.
에디터 조민진
사진 김재이, 안종근 어시스턴트 이승헌, 박주희 스타일리스트 양은숙 어시스턴트 김소혜, 주민영
참고자료 <전통 자수>(한영화 지음, 대원사 펴냄), <한국의 전통 문양>(임영주 지음, 대원사 펴냄), <하루하루가 잔치로세>(김영조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자료 출처 기와 무늬에 담긴 의미와 변천(한국의 박물관, 한국박물관연구회, 1999.5.1,문예마당), 네이버 지식백과 ‘떡살’, ‘다식판’, ‘식물문’, ‘장신구’ 촬영협조 논산 명재고택 소품협찬 문자문 다식(좋은날), 연꽃문ㆍ목단문 베개, 원앙ㆍ수복문 저고리,물고기 장식 보석함ㆍ십장생 비녀ㆍ구름문 산호 비녀ㆍ십장생 호박 노리개ㆍ학 문양 비취 단추ㆍ박쥐문은가락지ㆍ나비문 뒤꽂이(담연), 감색 목단문 베개(금단제), 포도문 항아리ㆍ석류문 항아리ㆍ새와 목단문 투각소반(월정도요)
문자에 장수와 다복의 염원을 담다
우리 선조는 오복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문자를 무늬로 도안해, 생활 주변에 널리 사용해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떡살과 다식판이다. ‘떡 중의 떡은 절편’이라고 한다. 떡 가운데 절편을 으뜸으로 치는 것은 절편에 새긴 문양 때문이다. ‘보기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의 유래도 여기다.
우리 선조는 이 떡에 온갖 정성을 들였다. 얼핏보면 모두 같아 보여도 그 안에는 천태만상이 다담겨 있다. 떡살무늬에는 주로 부나 장수를 염원하는 수복 글씨를 새겼고, 생일 떡에는 거북무늬를 담았다.
그저 성의 없이 길게 찍어낸 것처럼 보이는 줄무늬도 사실은 오래 살라는 염원이 담긴 것이어서 회갑 떡에는 반드시 이 무늬를 찍었다.
또한 예로부터 명절상과 잔칫상은 오색의 아름다운 빛깔로 장식했다. 이 때문에 노랑 송화, 까만 흑임자, 하얀 콩, 연둣빛 녹두, 빨간 오미자를 이용해 다식을 만들고, 거기에 수(壽)·복(福)·강(康)·녕(寧)의 인간의 복을 비는 글귀와 꽃,나비, 새, 물고기 무늬를 찍어낸 것을 명절 상에올렸다.
예술성은 물론 선조의 생활 철학과 정서를 느낄 수 있는 떡살과 다식판의 다양한 무늬에서 음식에도 운치를 드러낸 선조의 미학을 엿볼수 있다.
과실 무늬에 베풀어진 삼다(三多)
식물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주고 또 아름다운 형상으로 문양의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었다. 삼다(三多)란 옛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것들로, 건강하게 장수하며, 행복하게 살고, 자녀가 많기를 바란 것이다.
각각 복숭아, 불수감(佛手柑, 감귤과의 식물로 부처의 손을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석류가 이를 대표하는 식물이었다. 선비들이 사용하는 생활 도구에서 사군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컸다. 선비의 기상과 절개를 상징하는 사군자(四君子, 매화·난·국화·대나무)로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식물이 나타내는 뜻을 본받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기사회생과 장수를 상징하는 파초(芭蕉), 장수를 의미하는 소나무, 다손(多孫)을 의미하는 포도,참외, 호리병 등도 많이 나타난다.
한땀 한땀 소망을 수놓다
사람은 삶의 삼분의 일쯤을 잠자리에서 보낸다. 그러자면 잠자리가 편안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선조는 베갯모에도 여러 가지 수를 놓아 아름답게 꾸미는 동시에 인간의 염원을 새겼다.
베갯모는 베개의 형상에 따라 원형이나 방형(方形)으로 만들어졌다.
문양은 대체로 남자와 여자의 것이 구분이 되니 남자의 것은 길조 문자나 호랑이, 소나무, 대나무를 주로 수놓았다. 반면에 여자의 것은 주로 꽃무늬를 새겼다.
겨울을 나타내는 매화는 선비의 깨끗한 기풍을 상징하며, 모란은 부귀와 명예, 부부애, 여성미, 번영 등을 의
미하고, 목련은 여성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나타낸다. 석류꽃은 자손 번식을, 차례대로 꽃이 피어나는 접시꽃에는 관직 승진에 대한 기원이 담겨있다.
또한 어린이의 것은 아이의 장래를 축원하는 장생문, 수복문, 태극문을 수놓았다.
‘금슬종고락(琴瑟鐘鼓樂)’이라는 문자 무늬는 부부의 금슬이 좋기를 바라는 뜻이 담긴 것이고, 아들딸 많이 낳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홉 마리의 봉황을 수놓아 표현했다.
늙지 말고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살고 싶은 욕망에 십장생을 수놓았고, 하는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칠보문을 수놓아 기원했다. 작은 베갯모 속에 행복과 가족의 꿈을 담은 것이다.
여인의 내면의 멋을 단장하다
옛 여인들이 생활 속에서 아끼고 애용했던 경대, 빗, 화장품, 유병, 분합, 노리개, 비녀, 뒤꽂이, 가락지와 같은 아름다운 소품에 새긴 무늬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노리개와 떨잠 등 여인의 장신구에는 나비, 박쥐 등이 많이 쓰이는데, 나비는 기쁨과 행복 그리고 아름다움을, 꽃을 사랑하기 때문에 금슬 좋은 부부애를 의미하고, 박쥐는 한자어 발음인 편복이 복(福)자의 발음과 같다 하여 행복의 상징했다.
문양을 장식한 함의 자물쇠는 화려한 치장으로 집안 살림을 꾸려가는 안주인의 권위를 상징했다.
물고기 중에서도 잉어는 다산과 과거 급제 등을 상징해 생동감 넘치는 디자인 못지않게 간직한 이의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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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98 septembe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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