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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문화

[스크랩] 온돌과 아랫목. 굴뚝 / 집을 읽다.

작성자인당|작성시간16.01.12|조회수158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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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온돌은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화기(火氣)가 방밑을 지나 방바닥 전체를 덥게 하는 난방장치이다. ⓒ이미지투데이

 

집을 읽다.

 

온돌과 아랫목

 

‘온돌’은‘ 따뜻함이 바닥에서 돌출하여 배어 나온다’라는 뜻이다.
흔히 온돌을‘ 따뜻한 돌’로 종종 설명하는데 이는 우리 전통 온돌을 오해한 것이다. ‘따뜻한 돌’의 의미라면 아마도‘온석(溫石)’이나‘난석(暖石)’으로 썼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돌(突)’ 혹은‘온돌(溫突)’,‘난돌(煖突)’이라 쓰는 것은 우리의 전통 온돌이 돌을 다루는 기술보다는
불을 다루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불을 이기는 것은 ‘돌’ 이 아니라 ‘흙’ 이기에 온돌을 만드는 장인을 ‘토수’ 혹은 ‘구들편수’,‘니장(泥匠)’이라고 불렀다.

즉 전통구들은 흙을 이용하여 불을 다루고 가두는 한국 고유의 전통난방기술로 따뜻한 기운이 위로 올라가는 자연스런 난방법이고 발을 따뜻하게 머리는 차게 유지하는 두한족열(頭寒足熱) 건강 건축이다.

 

글. 김준봉 (북경공업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사)국제온돌학회 회장)

 

 

온돌의 유래와 용어정의

 

현재 발견된 가장 오래된 고래(방의 구들장 밑으로 나있는, 불길과 연기가 통하여 나가는 길)가 있는 온돌은 3000년 전 알래스카 알류샨Aleutian 열도의 아막낙섬에 있는 구들이며, 한반도 북부의 북옥저 유적은 고래와 구들장이 있는 가장 오래된 유적으로 B.C300년 경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두만강 하구의 서포항 집터의 고래 없이 돌과 진흙으로 된 구들유적은 신석기시대인 B.C3000년 경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 가장 오래된, 바닥을 따뜻하게 데우는 초기온돌이다.

 

온돌은 방에 연기가 나지 않는 세계최초의 난방법으로 ‘누운 불’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선 불’을 사용하는 서양의 벽난로와는 다르다. 불은 윗부분이 가장 뜨거우므로, 불 옆을 사용하는 것은 불 윗부분의 열기를 굴뚝을 통해 내보내고 열기의 일부만을 이용하는 비효율적인 방법이다. 우리는 구들을 놓아 불과 연기를 눕혀 바닥으로 기어 다니게 하고 그 위에 사람이 불을 깔고 앉아 불을 베고 잠을자는, 불을 호령하는 민족이다.

 

지금까지의 온돌에 관한 정의를 보면, ‘방바닥에 불을 때서 구들장을 뜨겁게 난방을 하는 장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는 온돌과 구들이 많이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도 온돌방에서 산다고 얘기하고, 숙박시설에 묵을 때도 ‘온돌방을 드릴까요? 침대방을 드릴까요?’ 하고 구분하여 부른다. 이처럼 온돌은 현재 생활에서 쓰는 단어와 사전적인 용어가 서로 다른 의미로 표현되고 있다.

‘구들’이라는 순우리말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구들이 처음 만들어진 시기를 추측해본다면 신석기시대 두만강 하구 서포항 집터 초기 구들 유적의 생성연도인 5000년 전보다 더 오래 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조선시대에 비로소 ‘ 구들’이 ‘온돌溫突’이란 한자어로 표기되기 시작하였다.

 

 

02. 운현궁 노안당의 아궁이. 방의 크기나 집의 구조 등에 따라서 여러 개의 아궁이가 붙어서 하나의 구들로 연결되기도 한다. ⓒ위키백과

 

03. 강릉 오죽헌(보물 제 165호) 온돌방. 오죽헌은 2칸의 대청과 1칸의 온돌방으로 구성돼 있는데, 1칸의 이 방에서 율곡 이이가 태어났다고 전한다. ⓒ두피디아

 

 

구조와 원리

 

온돌은 불을 잘 들어가게 하는 기술과 그 들어온 불기운을 잘 보존하는 기술이 핵심이다.

구들개자리는 열을 빨아들이고 식은연기는 다시 내보내며 굴뚝개자리가 외부의 찬 기운이 방바닥으로 역류하여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또한 굴뚝을 최대한 낮춰 식은 연기를 배출한다. 구례 운조루의 굴뚝 중에는 위로 세워진 굴뚝이 없다. 기단부분에 식은 연기를 내보내는 작은 구멍이 있을 뿐이다.

 

불은 인류가 추운 지방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가는 데 있어 결정적인 도구였다. 불의 이용과 함께 음식과 요리가 발달했으며 추운 지방에서 겨울을 나게 되었다. 그러나 불은 항상 연기와 함께 오기에 연기의 퇴치가 항상 숙제로 남았다. 연기를 내보내면 연기와 함께 열기도 사라지므로 불이 꺼지면 다시 추워졌다. 우리의 온돌은 불이 꺼진 후에도 열기를 간직한 인류 최초의 축열난방설비였다.

또한 구들의 굴뚝은 개자리가 있어 최고의 집진설비가 된다. 그래서 굴뚝에서 나온 연기는 불완전 연소로 생겨난 검은 그을음이 아니라 하얀색의 수분(목초액)이 대부분이다. 불은 땅속의 개미와 쥐들을 쫓았고, 연기가 땅바닥으로 빠져나오니 너무 뜨겁지 않으면서 마당의 나무와 흙집을 소독하고 모기 등 각종 벌레들을 퇴치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보았다.

툇마루나 정자에 않아 구들에서 불을 때서 굴뚝으로 나온하얀 연기가 마당에 깔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신선이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이 된다. 온돌의 연료는 좋은 나무가 아니었다. 쌀겨나 콩대, 옥수수대 등 식량부산물이나 나뭇잎이나 짚, 마른 소똥 등으로 연료를 대신하였다. 불을 처음 땔 때는 마른 솔가지가 화력도 좋고 불붙이기 수월했고 한쪽에 세워둔 짚단에서 서너 개를 뽑아 두세 번 꺾어 첫 불을때면 금방 불이 살아났다.

 

 

04. 김천 방초정(경상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46호)의 온돌방. 누각 한가운데 온돌방을 두고 사방으로 여닫이문을 달고 마루를 놓았다. ⓒ두피디아

 

05. 서양의 벽난로는 실내 산소를 빼앗아 건강에 해로우나, 온돌방은 오히려 신선한 산소를 공급해 방안을 쾌적하게 한다. ⓒ두피디아

 

 

한옥을 한옥답게 하는 온돌

 

온돌은 단순한 난방설비가 아니라 집의 중심이고 핵심이다. 우리 한옥은 여름용 마루와 겨울용 온돌이 함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자연 친화적이며 지속가능한 저탄소 주거이다. 그리고 한옥의 지붕은 기와나 초가, 너와 등 다양하지만 그 뼈대는 항상 나무와 흙이다. 돌로 짓지 않는 이유는 돌은 비록 타지도 썩지도 않으며 튼튼하지만 사람에게는 그리 좋지 않기 때문이다. 돌은 죽은 재료로 집 밖이나 무덤 등에 주로 사용되었다.

 

나무나 흙은 사람에게 좋지만 벌레에게도 좋기에 그냥 두면 쥐나온갖 벌레들이 집안을 점령하게 된다. 빈집으로 두면 금방 거미줄이 치고 오래지 않아 무너지게 되는데 이는 사람이 살지 않으면 불을 때지 않게 되고, 이때문에 기둥을 개미들이 훼손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옥 붐이 일면서 나무를 주 구조로 지은 집들이 많은데, 서양의 목조주택처럼 방부처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벌레 퇴치방법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구들을 만들어 불을 때면 일거에 해결될 문제다.

 

아랫목과 윗목

 

온돌은 아랫목과 윗목의 온도차로 인한 대류현상을 발생시켜 방의 쾌적도를 높인다. 침대가 없으므로 방을 여러 가지 기능으로 이용하는 문화가 정착됐고 이러한 좌식생활은 여유 있는 생활을 유지하면서 끈기 있는 문화를 탄생시키게 된다. 또한 따뜻한 아랫목이 윗사람의 자리가 됨으로써 생활 속에서 위아래를 아는 예의바른 문화를 창출했다. 또 아랫목은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집안의 화목을 다지는 필수공간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한옥은 온돌로 실내외를 구분하고 방안에서는 아랫목과 윗목을 다시 구분하여 청결함과 건강함 그리고 편안함을 만들었다.

 

추운 겨울에는 온 가족이 아랫목에 모여앉아 군밤과 군고구마를 먹으며 가족애를 키웠다. 체온이 떨어지면 면역능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체온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 난방의 주목적이다.

예부터 일본은 온천으로, 핀란드는 사우나로, 우리는 온돌로 겨울을 났다. 겨울잠을 자는 곰은 먹이가 부족한 겨울철에는 최소한의 에너지만 소비하는 방법으로 겨울을 난다. 우리의 한옥에도 추운 겨울에 아랫목에 모여 적은 공간을 난방하며 겨울을 나는 지혜가 있다. 현재 우리의 주거환경은 윗목 아랫목 구분이 없고 방바닥과 실내공간의 온도가 거의 비슷하게 유지되는 입식생활문화로 바뀌어 있다.

아랫목에 발을 묻고 오손도순 지내던 가족문화의 흔적은 사라지게 된 실정이다. 항상 이불을 깔아놓는 침대문화는 진드기 등 해충의 서식처를 제공하여 각종 질병을 유발하고, 아래보다 위가 더 따뜻하고 건조한 실내공기는 감기에 걸리기 쉬운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온돌방의 효능

 

온돌방은 신체를 최대한 바닥에 밀착시켜 열을 얻는 접촉난방으로, 방안에 벽난로 같은 난방시설을 두지 않기 때문에 산소가 충분하여 방안이 쾌적하다. 또한 앉았을 때 둔부, 허벅다리 등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는 하체부위가 직접적인 전도열을 받아 혈액순환이 촉진되며 누워있을 때는 배면(등)이 구들에 밀착되어 직접적인 전도열로 따뜻해진다. 바닥에 까는 요보다 덮는 이불이 크기 때문에 온돌에서 방열된 열이 이불 속에 가두어지며, 이불 속은 마치 열주머니와 같게 되어 온몸이 따뜻해진다. 또한 모세혈관이 팽창되므로 혈액순환이 원활해져 땀까지 배출시키므로 매일 자면서 목욕하는 효과가 있게 된다. 또한 저장된 열이 방안에 넓게 퍼지도록하며, 온돌바닥이 땅의 습기를 적당히 흡수하면서 열을 방출하므로 방실내온도와 습도가 적당히 유지된다.

한 번 불을 때면 석 달 열흘간이나 온기를 지속했다는 경남 하동의 칠불사 아자방구들은 신라시대 담공선사가 놓은 구들로 전해지는데 우리 전통구들의 꽃이라 할 수 있다.

 

나무를 때는 불편함이 수반되는 온돌은 편리함보다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난방법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구들에서 태어나서 구들에서 자라고 구들에서 죽는다. 죽은 후에 제사상도 구들에서 받게되기에 실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구들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이 온돌은 의식주생활에 깊숙이 뿌리내린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우리 어머니들은 아궁이에 불을 때며 산후조리를 넉넉히 대신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모태는 온돌이고 구들이다.

 

오늘날의 아파트온돌

 

현재 널리 사용되고 있는 보일러 난방이나 전기의 발열을 직접 이용한 온돌, 온수를 열매로 하는 간접난방 온돌의 경우는 사전적 정의의 ‘온돌’에 포함시키기 어렵다. 결국 현재 온돌이나 구들의 사전적 정의는 어디까지나 ‘과거의 구들과 온돌’에만 적용되고 ‘현재의 온돌’에는 적용하기 힘든 모순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전기를 이용하든, 물을 이용하든 엄연히 온돌에 산다고 말하고 아파트의 바닥난방도 한국의 전통난방법이 발전한 온돌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우리의 온돌은 바닥접촉과 탈화를 근간으로 하고 있어 서양의 공기를 데워 난방을 하는 패널히팅Panelheating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결론적으로 직접가열을 하든 물 등으로 간접가열을 하든, 또한 어떤 연료를 쓰든 상관없이 바닥을 따뜻하게 한다면 모두 온돌로 정의되어야 마땅하다. 이는 선사시대이래 지금까지 이어져온 한민족의 온돌의 전통과 역사의 계승을 위해서, 그리고 근세에 발달한 연탄구들과 연탄아궁이 보일러를 사용한 온돌 등 과거와 현대의 중간적 온돌까지 우리 온돌문화의 전통에 포함시키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글. 김준봉 (북경공업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사)국제온돌학회 회장)

 

 

 

01. 경복궁 아미산 굴뚝(보물 제811호). 왕비의 생활공간인 교태전 온돌방 밑을 통과하여 연기가 나가는 굴뚝으로, 건축의 몸채와 떨어진 곳에 독립된 건축물로 설치한 독립형굴뚝(獨立形煙突)이다. ⓒ문화재청

 

 

굴뚝의 역사와 그 다양성

 

굴뚝은 집 안(내부공간)에서 불을 지필 때 발생한 연기를 집 밖(외부공간)으로 내보내는 시설물이다.
그러나 불을 사용하기 시작한 구석기시대(기원전 60만년 경~기원전 1만년 경)의 ‘자연동굴집’이나, ‘바위그늘집’, ‘ 한데집’들의 집터를 살펴본 바로는, 굴뚝은 만들지 않았다고 판단된다. 아마도 신석기시대(기원전 6천 년 경~기원전 1천 년 경)부터 굴뚝을 만들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 시대의 원형움집터竪穴住居址를 살펴보면, 움집 중앙에는 화덕이 있었고, 화덕에서 발생한 연기들은 원추형 지붕의 ‘닭머리남’1)으로 생긴 구멍으로 빠져 나간다. 즉 화덕은 아궁이이자 부뚜막이 되고, 깔때기 모양의 움집 지붕은 굴뚝이 되며, 닭머리남의 구멍은 연기배출구멍(排煙口)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이런 생각이 성읍국가시대(기원전 4세기 경~서기 4세기 경)로 이어졌다고 추측된다.
또한 닭머리남의 구멍은 조선시대 ‘까치구멍’ 의 시원(始原)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글. 주남철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성읍국가시대부터 시작된 줄구들과 굴뚝

 

우리나라 온돌난방의 시원양식인 ‘줄구들’2)은 성읍국가시대부터 만들기 시작하였다. 줄구들 난방법은 방안에 한줄, 또는 두세 줄로, ‘두둑’을 쌓아 ‘구들고래’를 만들고 ‘구들장’을 덮고, 방안 구들고래 시작점에 불 때는 ‘아궁이(噴火口)’를 만들었다. 그리고 구들고래가 끝나는 지점 밖에, 구들고래를 통과한 연기를 내보내는 ‘굴뚝(煙突)’을 만들었다.

 

‘세죽리집터’는 움집안에서는 ‘아궁이’, ‘구들고래’ 자리들이, 집밖에서는 ‘굴뚝’자리가 확인되었다. 줄구들을 계승 발달시킨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동대자집터’, ‘부소산성안의 집터’ 등에서 방안의 아궁이와 구들고래, 방밖의 굴뚝 자리들이 발굴되었고, 다음 남북국시대에서는 ‘황룡사지 동편 시가지 집터’, 발해의 ‘궁성안 침전터’ 등에서 방안의 아궁이와 구들고래, 방 밖의 굴뚝자리가 발굴되었다.

 

 

고구려의 부엌간에는 독립된 부뚜막과 굴뚝이 있었다

 

고구려의 건축은 ‘부엌간’, ‘오양간’, ‘마구간’등이 하나의 독립된 채(棟)로 지어져, 기능에 의한 채(棟)의 공간분화가 이루어진다. 고구려 안악제3호무덤 벽화는 이러한 채(棟)의 공간분화를 입증하여 주고 있다.

이 벽화의 ‘부엌간’ 그림은 맞배집 안에 부뚜막과 부뚜막 아궁이에 불지피는 시녀, 시루에 음식을 담는 시녀, 상 차리는 시녀, 그리고 아궁이 앞의 두 마리 개들이 그려져 있고 부엌간 측면 벽에는 출입문과 부뚜막 굴뚝이 그려져 있다. 이 부엌간 그림이 한국건축사 최초의 굴뚝그림이다. 한편 고구려의 ‘철제부뚜막’이나 ‘도제부뚜막’은 부뚜막과 한 몸으로 이루어진 굴뚝을 보여준다.

 

줄구들은 온돌로 발달하고, 여러 모습의 굴뚝을 세우게 되었다

 

줄구들 난방법은 삼국시대를 거쳐 12세기경의 고려시대에 이르면, 이미 방안 바닥 전체에 ‘바닥구들’3)을 놓아 난방을 하는 ‘온돌溫突’로 발달하게 되었고, 자연히 굴뚝도 여러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고 판단된다.

고려시대 말(12세기 경)의 회암사절터(檜巖寺址)는 조선 성종3년 정희대비(貞憙大妃, 세조의 왕후)가 중창重創한 절터이다.4)이 절터의 아궁이, 구들고래, 굴뚝자리들과 더불어 조선시대의 다양한 굴뚝들을 살펴 볼 수 있게 되었다.

 

 

02. 안동 의성김씨 종택(보물 제450호)의 안방 툇마루 밑 간이형 굴뚝은 땔감이 연탄으로 바뀌면서 독립형의 높은 굴뚝으로 개조되었다. ⓒ문화재청

 

 

여러 가지 땔감은 여러 가지 굴뚝을 만든다

 

농촌집이나 산간집의 땔감은 연기가 많이 나는 짚, 마른 풀, 수수깡, 나뭇가지 등이고, 중상류주택, 관아, 향교, 서원, 궁궐의 주된 땔감은 장작이다. 그간 궁궐에서는 ‘숯’만을 땔감으로 하였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이는 잘못된 주장이라고 이미 말한바 있다. 경복궁 교태전터(交泰殿址) 발굴 때, 발굴된 굴뚝이 서있는 아미산 화계 첫째 단까지 이르는 연도(煙道)와 창경궁 통명전(通明殿)바닥 보수때의 구들고래에서도 ‘검댕’ 들이 짙게 끼여 있었다. 또한 창덕궁 후원 기오헌(寄傲軒)온돌방 보수 때에도 ‘분화석(焚火石)’5)과 구들고래, 방 밖 굴뚝자리까지 이어진 연도(煙道)가 온통 검댕으로 그을려 있었다. 이는 바로 숯보다는 장작이 주된 땔감이었음을 입증하여 주는 것이다.

더욱이 궁궐 굴뚝의 지붕 위에는 집 모양 토기인 ‘연가(煙家)’를 여러개 얹어, 이 연가의 창구멍으로 연기를 내뿜게 하고 있는것이나, 『 경국대전(經國大典)』, 「 공전(工典)」에 “각사(各司)에 땔감을 마련하는 ‘시장(柴場’)을 두도록 한다” 한 것 모두는, 숯만을 땔감으로 한것이 아니라, 장작을 주된 땔감으로 하였다는 것을 말하여 주는 것이다.

 

굴뚝을 설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간이형굴뚝(簡易形煙突)은 방밖 처마 밑이나, 툇마루 밑, 또는 마당 한곳에 설치하는 굴뚝이다. 주택이나 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의성김씨 대종가집의 안방 툇마루 밑 간이형 굴뚝은 땔감이 연탄으로 바뀌면서 독립형의 높은 굴뚝으로 개조되었다. 원래 아침저녁 끼니를 잇기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여, 안방 툇마루 밑 기단위에 굴뚝을 만들어, 아침 저녁 부엌 부뚜막 밥 짓는 연기가 찬 공기와 만나 안마당에 낮게 퍼지게 한 것이라는 말이 전하여 오나, 경주 최부자집(慶州崔植氏家) 가훈(家訓)을 생각하면 궁색한 이야기라 생각한다.

한편 내소사(來蘇寺) 승방 마당가에 설치하였던 간이형 굴뚝은 아예 철거되었고, 오어사(吾魚寺)굴뚝은 남아있다. 이들 굴뚝들의 연기들도 마당을 낮게 덮어 구름바다(雲海)를 이루면서, 한편 마당을 소독하는 기능도 있었다고 한다.

 

독립형굴뚝(獨立形煙突)은 주택과 궁궐, 서원, 향교 등, 건축의 몸채와 떨어진 곳에 독립된 건축물로 설치한 굴뚝이다. 중인주택인 다동백씨가(茶洞白氏家)나 무교동신씨가(武橋洞辛氏家)는 물론, 연경당의 굴뚝은 모두 검정벽돌을 쌓아 만든 독립형굴뚝들이었다. 경주 최식씨가(속칭 최부자집) 안마당에서는 벽돌담을 낮게 쌓은 장고(醬庫)와 함께 높게 서 있고, 해남 녹우당 안마당에서는 화단과 함께 서 있다. 경복궁 교태전 아미산이나, 창덕궁 낙선재에서는 화계(花階)위에 세웠다. 기와지붕을 덮고, 연가(煙家) 여러 개를 얹어 놓아 연가 창구멍으로 연기를 배출한다. 굴뚝의 면에는 문채판(紋彩板)을 두어 장식하기도 한다.

 

복합형굴뚝(複合形煙突)은 담장과 굴뚝이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굴뚝이다. 연경당 안채의 굴뚝은 뒷마당 반빗간채와의 사잇담에 세웠고, 경복궁 대비전인 자경전 굴뚝은 뒷마당 담장과 담장 사이에 세웠다.

특수형굴뚝(特殊形煙突)은 벽면이나 기단면에 연기구멍(排煙口)을 설치한 굴뚝이다. 벽면 설치의 예는 연경당 중문간 행랑채 방화벽과 강령전 행랑채벽의 예들이 있고, 또 정자나 누의 고설식온돌(高設式溫突)굴뚝은 누마루 밑 벽면에 설치한다. 기단면 설치 굴뚝은 주합루와 성균관 명륜당의 굴뚝들이다. 특히 주합루 굴뚝은 북쪽 기단의 동, 서 두 곳에 각각 아궁이에 이르는 함실아궁이(函室焚口) 입구와 나란히 배연구(排煙口)를 두어, 구들고래를 돌아 연도(煙道)를 통하여 나오는 연기를 배출한다. 아산 건재고택의 사랑채 기단 면에 도배연구가 있어, 구들고래를 돌아 나온 연기들이 아침 저녁의 찬공기와 만나 마당을 온통 구름바다로 덮는다. 한편 까치구멍집의 합각면 ‘까치구멍’도 특수형굴뚝의 하나로, 지붕이 파란 하늘에 연기를 피어오르게 하듯 한다.

 

우리의 굴뚝은 여러 가지로 쌓아 다양한 몸새를 이루고 있다6)

 

① 흙+막돌 쌓기 : 지방 농가의 일반적인 굴뚝이다. 크고 작은 막돌들을 흙 반죽으로 쌓아 올려 만든 굴뚝으로 처마 밑에 설치한다. 굴뚝 연기구멍위에는 점토로 빚 어 구은 항아리 모양의 연가(煙家)를 얹어 센 바람에도 연기를 잘 뿜어 낼 수 있게 한다.

 

② 막돌과 기와조각 쌓기 : 막돌과 기와조각들을 회진흙반죽이나 회반죽으로 쌓아 올리고 지붕을 덮은 굴뚝이다, 배연구는 굴뚝지붕 중앙에 설치하고 암키와로 덮은 것과 굴뚝 면에 설치한 것 이있다. 해인사, 운문사의 굴뚝은 암키와로 배출구를 덮은 것이고, 마곡사의 것은 굴뚝 벽면에 배연구를 뚫은 것이다.

 

③ 검정벽돌+기와조각 쌓기 : 검정벽돌, 기와조각들을 회진흙반죽이나 회반죽으로 쌓아 올리고, 기와지붕을 덮고, 연가(煙家)를 얹어 연기를 배출한다. 중인주택이나 제택(第宅, 양반집과 궁집), 궁궐의 독립형굴뚝이나 복합형굴뚝은 이렇게 쌓는다. 기와지붕과 연가를 얹고, 굴뚝 면에는 만자무늬(卍字紋), 아자무늬(亞字紋) 등과, 길상문자무늬(吉祥紋), 화초무늬(花草紋) 등으로 치장한다.

 

④ 빨강벽돌 쌓기 : 궁궐의 굴뚝 쌓기이다. 조선시대에는 빨강벽돌이나, 주칠(朱漆)한 가구들은 궁중에서만 사용가능하였다. 지붕을 덮고 지붕 가운데에 연가(煙家)들을 얹어 연기를 배출한다. 경복궁 교태전 뒤뜰 아미산 화계(花階)위에 선 굴뚝은 육모 평면의 화강석기단위에 빨강벽돌을 층층이 쌓아 굴뚝 몸통을 이루고, 몸통 각 면문채판에는 화초무늬와 동물무늬로 장식하고, 문채판 아래 위로는 더 작은 빨강벽돌들을 끼워 넣어 마무리 하였다. 지붕을 덮고 여러개의 연가를 놓아 연가 창구로 연기를 배출한다.

또 자경전 뒤뜰 굴뚝은 담장과 담장 사이에, 장대석 지대석(地臺石)위에 빨강벽돌을 쌓아올리고, 지붕과 연가煙家로 마감하였다. 굴뚝 벽면에는 장방형으로 테두리를 두르고, 테두리 안에 십장생무늬를 수놓아 장식하였다.

 

⑤ 검정벽돌+빨강벽돌 쌓기 : 검정벽돌과 빨강벽돌로 띠를 이루어 쌓은 굴뚝이다. 창덕궁 대조전 뒤뜰 화계(花階) 앞의 굴뚝이 바로 이런 굴뚝이다. 굴뚝 면의 아래 위 두 곳에 문채판을 두어 장식하였고 지붕과 연가를 설치하였다. 이들 자경전과 대조전 굴뚝은 창호와 난간 살대짜임, 각종 석물들, 또한 주합루와 기오헌의 분화석(焚火石)등과 함께, 모두가 공예품의 하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03.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굴뚝(보물 제810호). 자경전 뒤뜰 굴뚝은 담장과 담장 사이에, 장대석 지대석 위에 빨강벽돌을 쌓아올리고, 지붕과 연가(煙家)로 마감하였다. 굴뚝 벽면에는 장방형으로 테두리를 두르고, 테두리 안에 십장생무늬를 수놓아 장식하였다. ⓒ문화재청

 

04. 고구려 안악 제3호 무덤 벽화에 나타난 부엌. 고구려의 건축은‘ 부엌간’, ‘ 오양간’, ‘ 마구간’ 등이 하나의 독
립된 채(棟)로 지어져, 기능에 의한 채(棟)의 공간분화가 이루어진다. 고구려 안악제3호무덤 벽화는 이러한 채(棟)의 공간분화를 입증하여주고 있 다. ⓒ문화콘텐츠닷컴

 

 

굴뚝은 뜰(庭園)을 구성하는 대석(臺石), 정료대(庭燎臺), 담장들과 함께 수직적 구성요소의 하나로, 우리의 뜰이 여러가지 표정을 짓게한다

 

우리 집터 둘레는 담장과 행랑채로 둘러막고, 그 안에 안채, 사랑채, 별당, 정자, 사당, 곳간채 등을 연이어 짓거나, 서로 떨어진 별채로 지어서, 여러개의 크고 작은 마당들을 이룬다. 이들 마당들, 특히 뒷마당과 이어진 동산에는 화계를 쌓고, 화계 앞이나 화계 위에, 물확(水確), 석연지(石蓮池), 석함(石函)등 여러가지 석물(石物)들을 늘어놓고, 화초와 나무를 심고, 굴뚝과 담장을 세워 시각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풍요롭게 한다. 더욱이 몸채의 창호나 난간의 살대짜임 무늬가 담장과 굴뚝의 무늬로 반복되고, ‘수(壽)’, ‘복(福)’과 같은 길상문자무늬나 화초무늬, 나아가 십장생무늬를 담장과 굴뚝에 수 놓음으로서, 공간마다 서로 다른 공간정서를 이루면서도 전체적으로 통일되게 한다. 즉 같은 주제가 장소를 달리하여 나타남으로서 변화를 이루고, 같은 주제의 반복으로 통일성을 이루게 한다. 곧 ‘통일성에서의 변화’를 손쉽게 이루는 것이다.

 

또한 뜰(庭園)의 수평적 요소들이나 수직적 요소들은 하나의 공간속에서 연속적으로 흐르는 시간의 흐름으로, 밝은 면과 그늘진 면의 대비, 크고 작은 그림자들의 변화를 이루어 더더욱 풍요로운 표정을 짓게 한다.

 

한편 천은사 승방 굴뚝이나, 내소사 승방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나, 아산 건재고택 사랑채 기단면의 배연구로 아침 저녁 배출되는 연기가 이루는 구름바다는 바라보는 이를 피안(彼岸)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것이다.

 

 

1) 김홍식, [암사동움집 復元考],≪문화재≫, 제18호, 문화재관리국, 1985. 43쪽. 강원도산골방언.

2)‘줄구들’은 ‘ㄱ자형구들’[주남철, [온돌과 부뚜막의 고찰] ≪文化財≫ 20호, 1987.] 또는 ‘쪽구들’[송기호 ≪한국고대의 온돌≫, 서울대출판부, 2006. p2]로 이름 지은 것을, 주남철. ≪새로 쓴 한국의 주택건축≫(가제, 고대 출판부 출간 준비 중)에서 새로 지은 이름(용어)이다.

3) (주2)에서와 같이, 새로 지은 이름[용어]이다. ‘바닥구들’은 방바닥 전체에 ‘구들고래’와 ‘구들장’을 놓은 구들로, 바로 ‘온돌’을 말한다.

4) 주남철, ≪한국건축사≫ 고려대학교출판부, 2010 개정판2쇄 358-359쪽

5) 기오헌과 주합루의 아궁이에는 두꺼운 방형의 돌판 상면을 움푹하게 파낸, 불 지피는 받침돌을 놓아 불기와 연기를 구들고래로 보낸다. 이 판돌을 ‘분화석’(焚火石)이라 이름 짓는다.(주남철)

6) 주남철, ≪한국건축의장≫ 일지사, 2014. 제3판11쇄. 180-188쪽. 주남철, ≪한국의 정원≫ 고려대학교출판부, 초판4쇄, 2015. 103-105쪽.

글. 주남철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 문화재청. 문화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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