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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Humanities_인문학 산책

작성자인당|작성시간16.01.14|조회수172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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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ities_인문학 산책

 

고전에서 인생을 묻다_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바다, 인내와 존중, 그리고 희망을 품다

 

바다. 무한대의 생명력과 끝 모를 죽음의 심연으로서 언제나 동경과 공포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존재,
때로는 어머니처럼 때로는 폭군처럼 수억 년 동안 지구 표면을 품어온 도도한 푸른빛의 근원수(根源水)를 가리키는 바다, 두 음절의 단어는 얼마나 간단한가!

그러나 한 편의 소설로 이 간단한 단어가 얼마나 위대한 상징일 수 있는지를 일깨워준 작가가 있었다.
자신의 문학과 인생의 마지막 패를 ‘바다’에 내던진 한 행동주의 작가가 있었다. 그 이름, 어니스트 헤밍웨이요, 그 작품은 <노인과 바다>다.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일탈을 꿈꾸는 이들의 피서지로서가 아닌, 삶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바다의 참모습을 만나본다.

 

엽총과 첼로의 파란만장한 삶


운동과 사냥을 좋아하던 의사 아버지와 예술적 소양과 신앙심이 깊던 음악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헤밍웨이(1899~1961)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는 엽총을, 어머니에게서는 첼로를 선물받았다. 엽총과 첼로, 두 가지 선물이 대변하는 모든 행동에 미칠 듯 몰두하며 헤밍웨이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제1차 세계대전, 그리스·터키 전쟁,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대전 등 세계 어느 곳에서건 총성이 들리기만 하면 헤밍웨이는 그곳으로 가서 싸웠고,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으며, 끝내 살아 돌아와 첼로 선율처럼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바라보며 그 체험을 고스란히 작품화했다.


고등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인 그에게 바다는 복잡하고 잔인한, 그럼에도 한 줄의 진실을 인간에게 허락하는 넉넉한 세상 전체였다.


<노인과 바다>로 195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지만, 그 후 헤밍웨이의 마지막 7년은 비참했다. 정신 쇠약, 우울증, 고혈압 등을 앓으며 창작 활동도 거의 하지 못했다.

마침내 1961년 7월 2일, 그는 엽총을 입에 물었다. 총성이 울렸고, 세계 문학사의 한 거장이 생을 마쳤다.

죽음은, 행동주의 작가 헤밍웨이가 자신의 생애를 통틀어 처음으로 작품화할 수 없었던 체험이 되었다.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 거야


헤밍웨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캔자스시티 스타>에서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건조하고 간결한 ‘하드보일드’ 문체의 기틀을 확립했다. 명료한 단문 위주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그의 문체는 감정 처리나 묘사를 풍요롭게 장식해주지 않는다. 그저 객관적 사실만 무덤덤하게 제시하는 이런 문체는 독자의 상상력을 신뢰하는 작가 헤밍웨이의 특권이다. <노인과 바다> 역시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문체로 쓴 작품이다. 문체만 간결한 게 아니라 줄거리도 간결하다.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은 84일이나 고기를 못 잡았다. 다음 날 다시 먼 바다로 나가서 이틀 밤낮을 꼬박 드잡이한 끝에 드디어 길이가 5.5m 가까이 되고 무게가 700kg가량 되는 엄청나게 큰 청새치를 잡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배 옆에 청새치를 매달고 돌아오던 중 상어들의 연이은 공격을 받는다. 노인은 처절하게 이를 물리치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노인은 독백한다.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야.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거야.”

 

결국 청새치는 뼈와 대가리만 남고, 노인은 또다시 빈손과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 깊은 잠에 빠져든다. 소년 마놀린이 노인을 보살피고 노인은 사자 꿈을 꾼다.

 

싱거울 정도로 간단한 줄거리다.

노인이 청새치를 낚기 위한 사투, 그리고 그 청새치를 뜯어먹는 상어들과의 또 다른 의미의 사투 외에 이렇다 할 사건이나 갈등이 전혀 없다. 작품 초반과 마지막에 잠깐 나오는 따뜻한 심성의 소년 마놀린을 제외하면 노인 한 명만 등장하는 단순한 작품인 셈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노벨 문학상에 값하고도 남는 심오한 상징의 세계가 존재하고, 우리는 그 세계의 존재에 압도된다.

읽기는 쉬워도 이해하기는 어려운, 그리고 분명히 이해되지는 않지만 감동의 울림은 오래가는 <노인과 바다>의 마력은 도대체 무엇인가?


우선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직접 체험을 바탕으로한 자서전적 작품이다. 그는 쿠바의 아바나와 미국의 플로리다 주 키웨스트에서 지내며 바다낚시를 즐겼는데, 그가 잡은 청새치만도 800마리 정도 된다고 한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바다 생물들과의 사투 과정에서 보이는 고기잡이에 대한 전문적 지식은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그럼으로써 독자는 노인과 완전히 혼연일체가 되어 광활한 멕시코 만류에 떠다니는 고독한 어부가 된다.

 

한편 <노인과 바다>는 작품 구상에서 집필까지 무려 15년이 걸렸다.

열린책들에서 출판된 <노인과 바다>의 번역자 이종인 씨의 작품 해설에 의하면, 첫 문장을 쓰고 8주 만에 집필을 탈고 했지만, 발표하기까지 200번이나 다시 읽으면서 일자 일구에 신경 써서 문장을 가다듬은 역작이라고 한다. 당연히 바다가 그저 바다가 아니고 어부가 그저 어부가 아니며, 청새치나 상어가 그저 물고기가 아니고 소년 마놀린이 그저 이웃집 어린이가 아닌 것이다.

 

“헤밍웨이의 작품에는 폭력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현실 세계에서 선한 분투를 이어가는 모든 개인을 향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존경과 더불어, 위험과 모험에 이끌리고 마는 인간 존재들이 등장한다”는 노벨 문학상 시상 연설은 결코 과찬이 아니다.


조각배에 몸을 싣고 먼 바다까지 나아간 불굴의 인간 산티아고는 천신만고 끝에 낚은 청새치를 상어에게 모두 뜯기고, 마침내 빈손으로 항구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조각배에 담아온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산티아고의 위대한 독백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 거야(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였다.

생각해보라.

이 독백 말고, 인간은 도대체 무엇을 더 싣고 인생의 항로를 마치고 귀환할 수 있단 말인가?


산티아고 노인은 낡은 돛대를 어깨에 메고 자신의 오두막에 돌아와 잠이 든다.

오두막에 들른 소년 마놀린이 핏빛으로 깊이 파인 노인의 두 손을 보며 눈물을 훔친다. 잠에서 깬 노인에게 음식과 커피를 가져다주며 마놀린이 말한다.

 

“빨리 회복하세요. 할아버지에게 배울 것이 너무 많고, 또 할아버지는 제게 모든 것을 가르쳐줄 수 있어요.”

 

노인은 다시 엎드려 자고, 마놀린이 그 옆에 앉아 보살피고 있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꾼다.

생각해보라.

우리 인생에서 말년에 이만한 소년 하나를 얻을 수 있다면, 우리는 사자 꿈을 꿀 만하지 않은가?


헤밍웨이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산티아고 노인의 독백과 사자 꿈은 영험하기 짝이 없다.
1961년 헤밍웨이는 엽총을 물고 총성과 함께 죽어 파괴됐지만(destroyed), 그 후 50년이 지나 그의 작품의 저작권 보호 기간이 끝나기 무섭게 우리나라 서점에는 그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노인과 바다> 역시 올해만 5종이 출판되었다. 헤밍웨이는 자신의 명작들과 함께 결코 패배하지(defeated) 않았다. 세계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불굴의 작가가 치열한 체험 속에서 건진 한 줄 한 줄의 진실은 영원히 패배하지 않는 그런 것이다.

 

 

바다는 단순한 피서지가 아니다


7월. 바다에는 수많은 인파가 북적거리며 해변의 일탈을 만끽한다. 아찔한 수영복을 걸친 남녀들은 취한 듯 모래사장을 날뛰고, 파도에 몸을 맡긴다. 소위 피서(避暑)라는 희한한 광경이다. 바다는 자신의 존재 방식을 조금도 보여주지 않건만 카메라 셔터들이 제멋대로 찰칵거리고, 바다는 숨을 죽이고 침묵한다.


휴가가 그저 생계를 위한 노동과의 일시적 단절만은 아니다. 애써 얻은 소중한 시간을 기왕 바다와 함께 보내고자 한다면, 우리는 바다에게 보여달라고 해야 한다. 그 근엄한 존재 방식을. 그리고 들어야 한다. 바다의 들숨과 날숨이 이어지는 웅장한 오디세이를. 그리하여 마침내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 독백을 담고 산티아고 노인처럼 돌아와 사자 꿈을 꾸어야 한다.

 

"바다는 크고 깊고 유장해 동서고금의 야광주 같은 이야기가 많으며, 박람강기(博覽强記)의 절대적 지식량이 요구되는 지구 유일무이의 미지의 공간이다. (…)

돌이켜보면, 우리의 바다와 ‘갯것(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에서 나는 물건)’들은 총체적으로 소외되었으며, 일반의 바다에 관한 지식은 그야말로 일반적·상투적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국민속연구소장 주강현 씨는 <관해기> 서문에 이렇게 적고 있으니, 올여름 바다에 가거든 조금쯤은 참고해두기 바란다.


엄청난 사람들이 바다를 다녀오고 있지만, 정작 바다를 모르기 때문에 고작 파도나 구경하고 조개나 구워 먹다 돌아온다. 바다를 우습게 여겨온 결과다.

 


글 정제원

일러스트 홍소희 참고도서 <노인과 바다>(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종인 옮김, 열린책들 펴냄), <노인과 바다>(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문학동네 펴냄), <관해기(1, 2, 3)>(주강현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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