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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농사짓고 길쌈하며. 경직도(耕織圖)[풍속화 Genre Painting]

작성자인당|작성시간16.03.29|조회수2,265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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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화 Genre Painting]


농사짓고 길쌈하며

Farming and weaving


글。정병모。경주대학교 문화재학부 교수


<기생방> 19세기 말 사진


19세기 말 기생집 풍경을 찍은 빛바랜 사진한 장이다.

난을 치는 기생과 그것을 거들어주는 기생들의 뒤에는 농부들이 밭 갈고 길쌈하는 경직도耕織圖병풍이 둘러 처져있다. 적어도 8첩에서 10첩에 이르는 병풍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이 장면이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경직도의 원래 용도를 안다면 뜻밖의 장소에 뜻밖의 그림이라는 점을 의아하게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경직도는 원래 기생집이 아니라 임금의 침전에 설치되어야 할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기생방을 치장하는 병풍으로 등장하였다.


경직도는 중국 남송 때 항주부 시어잠時於潛(지금의 臨安市)의 현령인 누숙(樓璹, 1090~1162)이 당시 황제인 고종에게 바친 그림이다. 바친 사람의 이름을 따서 “누숙경직도樓璹耕織圖” 라 부른다.
청대인 1696년 강희제는 누숙경직도를 보완하고 체재를 일부 고쳐 판화로 찍은 경직도를 간행하게 하는데, 이것을 “패문재경직도佩文齋耕織圖”라 일컫는다. 패문재경직도는 간행된 이듬해인 1697년에 조선에 전래된다. 유례가 드물게 빨리 중국 문물이 조선에 전파된 예이다.

숙종의 지시에 의해 판화로 제작된 패문재경직도를 당시 궁중화원인 진재해(秦再奚, 1691~1769)가 그림으로 제작하였다. 그 가운데 <잠직도 蠶織圖>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한다. 이는 길쌈하는 세 장면을 산수의 배경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밝은 채색과 섬세한 필치가 17세기에 유행한 화풍의 일면을 전해준다.그림 1



그림 1) 진재해, <잠직도>, 1697년, 비단에 채색, 137.0x52.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경직도는 원래 임금의 침전에 설치하여 늘 드나들면서 보고 생업에 종사하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헤아려 정치에 힘쓰라는 감계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것은『서경 書經』무일편無逸編의 주공周公과 성왕成王의 고사에서 비롯된다. 주나라 때 성왕이 왕위에 올랐지만 워낙 나이가 어려서 삼촌인 주공이 성왕을 대신하여 섭정을 하였다. 이 때 주공이 조카인 성왕에게 농사와 길쌈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는데, 그 내용은 무일편에 자세하다.

통치자는 나태하지 말고 늘 백성들의 어려움을 생각하라는 무일정신을 이어받아 궁중에서 빈풍7월도와 경직도가 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말부터 백성들의 기본적인 생업인 농사짓고 길쌈하는 모습을 담은 무일도, 빈풍7월도, 경직도가 전래되면서 중요한 궁중회화로 자리잡게 된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와서는 궁중회화인 경직도가 궁중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유행하게 된다.

광교의 그림 파는 가게에 병풍으로 꾸밀 경직도를 팔게 되고, 앞의 사진처럼 기생방에도 버젓이 경직도 병풍이 설치되기에 이른다. 이미 18세기의 시인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의 시에서 그러한 동향을 감지할 수 있다.


“나란히 줄을 지어 김매기 하노라니,
종아리와 어깨가 타는 듯 괴롭기 한이 없다.
임금님의 병풍에는 빈풍화가 있다던데.
농사꾼의 먹고 살 걱정을 응당 알아주겠지.”


이 시는 패문재경직도의 운을 따서 지은 <차경직도사십육수 次耕織圖四十六首> 중 <이운 二耘>이다.

궁중용인 패문재경직도가 어느새 서얼 출신 조수삼의 시 속에 등장하기에 이른다. 이는 경직도의 수요가 이미 궁궐을 벗어났음을 시사하여 준다.


18세기에는 수요가 민간에 확산됨과 더불어 중국풍의 경직도는 한국화되면서 우리의 생활상이 화폭 속에 담
겨지게 된다. 그것은 이 시기 진경산수화와 풍속화 등 한국풍이 유행한 풍조와 궤를 같이 하는 현상이다.


김홍도의 풍속화에 경직도를 소재로 한 작품이 간간이 눈에 띄는데, 그의 작품 속에서 한국적인 풍모의 경직 장면을 엿볼 수 있다. <경직도 8곡병>한양대학교 박물관 소장은 김홍도의 낙관이 있으나 김홍도의 영향을 받
은 후배 화가의 작품이다. 이 그림은 언뜻 김홍도의 작품으로 간주될 만큼 그의 화풍을 빼어 닮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김홍도라기보다는 그의 영향을 받은 유운홍(劉運弘, 1797~1859)의 화풍에 가깝다. 이 병풍은 비록 김홍도의 작품은 아니지만 그가 활동한 당시에 유행한 경직도의 면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깊이가 느껴지는 산수의 공간 속에 경직의 장면이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다. 그림 2



그림 2) 전 김홍도, <경직도 8곡병> 비단에 엷은 채색, 각 47.0x105.0cm 한양대학교 박물관 소장



경직도는 월별로 농사짓고 길쌈하는 농촌의 풍경을 그린 농가월령도農家月令圖의 형식을 낳는다.

이한철 작품으로 전하는 <세시풍속도>(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가 대표적인 예이다. 매달 벌어진 농촌의 풍속을 화폭에 담았다. 원래는 1월부터 12월까지 모두 12폭으로 보이나 지금은 10폭이 전한다.

피마준에 호초점을 찍고 쌍구법으로 나무를 표현한 점으로 보면, 19세기에 유행한 문인화풍으로 표현한 것을 알 수 있다. 배경의 산수는 옅게 채색하였지만, 인물은 짙은 채색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내었다.


두레풍장굿의 장면을 담은 5월의 풍속 장면이 우리의 흥미를 끈다. 화면 위 제시에는“독서의 여가에 어린 아
이들이 투전을 하고, 부녀자들은 누에섶을 말고 뽕을 따며 옷을 짜누나.(讀書之暇, 稚子投錢, 蠶婦捲箔, 採桑起綿)”라고 적혀 있다. 이 그림 중 두레풍장굿의 장면은 다른 경직도에서 볼 수 없는 것이다.

꽹과리, 장구, 태평소, 소고를 갖고 농악을 치고 있다. 5월이라면 한참 김맬 때이므로, 김매기 두레패로 추정된다.그림 3



그림 3) 전 이한철, <세시풍속도> 19세기, 비단에 채색, 각 116.0×31.5cm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



19세기에 제작된 경직도는 대개 두 가지 양식을 보인다. 하나는 수묵담채로 그린 것이고, 다른 하나는 채색화
풍으로 그린 것이다. 민화다운 맛은 역시 후자가 제격이다.

19세기 후반 평양에서 활동한 우진호(禹鎭浩, 1832~?)는 채색화풍의 경직도로 유명했다. 그의 이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그의 작품은 평양 및 유럽의 박물관 및 개인의 컬렉션을 통해서 알려졌다. 그는 채색화풍으로 화려한 경직도를 그려 이전의 수묵담채의 경직도와 다른 면모를 보였다.

독일 게르트루드 클라센 소장<경직도>는 채색화풍으로 그려진 우진호 풍속화의 대표작이다.
높은 시점에 서양의 투시도법을 연상케 하는 깊은 공간에 경직의 장면을 배치한 것은 화성에서 벌어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장면을 그린 <원행을묘정리의궤도>를 연상케 한다. 또한 산수는 청록산수이고 인물뿐만 아니라 집, 나무 등도 적극적으로 채색을 베풀었다. 서민 풍속이지만 화려하면서 스펙터클하게 표현하니 궁중의 풍속화 못지않은 위용이 느껴진다. 작가는 서민 풍속이 더 이상 옹색하고 초라한 모습이 아님을 세상에 웅변적으로 알려주고 있다.그림 4



그림 4) 우진호, <경직도병> 비단에 채색, 146x60cm, 독일 게르트루드 클라센 소장 출처:「 한국의 미」19 풍속화, 중앙일보사

그림 5). <전가낙사> 종이에 채색, 75.0x36.5cm, 서울 개인소장  출처:「 한국의 미」8 민화, 중앙일보사



<전가낙사>(개인소장)는 일꾼들이 마당질하는 모습을 감독하는 마름은 윤곽을 뚜렷하게 그린 돗자리의 구획으로 불공평한 신분관계를 풍자하고 있다. 배경은 옅은 채색으로 깔고 인물은 짙은 채색을 베풀어 산수 배경 속에서 풍속 장면이 부각될 뿐만 아니라 맑은 채색의 효과까지 내고 있다.

조선 초기인 15~16세기에 유행했던 곽희파郭熙派화풍이 뒤늦게 나타나 구불거리는 산세와 나무에서 생기가 꿈틀거리는 반면, 사람들의 동작은 절제되어 있다. 이로 인해 오히려 조용하면서 정감이 넘치는 시골풍경이 펼쳐지게 된다. 그림 속에 풍기는 밝은 채색과 따뜻한 정감에서 서민들이 갖고 있는 긍정의 힘이 느껴진다.


농사짓고 길쌈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인 경직도는 언뜻 서민들 전용의 그림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
은 임금을 교화하기 위해 제작된 궁중회화이다. 이 그림이 서민회화로 자리 잡은 때는 19세기에 이르러서이다. 임금의 침전에 설치한 병풍에서 기생방을 장식하는 병풍으로 확산된 경직도, 이것은 궁중회화가 민간회화로 보편화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국악누리

The National Center for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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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운홍(Yu Un hong, 劉運弘) 풍속도 - 길쌈.호 시산(詩山, Sisan) 국립중앙박물관


경직도. 작자미상. 경기도


경직도. 작자미상. 경기도



전 김홍도(傳 金弘道) 농사와 누에치기 ? 국립중앙박물관


경직도 [ 耕織圖 ] 조선. 작자미상. 비단에 채색. 국립중앙박물관 .농사 짓는 장면과 타작하는 모습을 묘사한 경직도의 부분.



경직도(耕織圖) 노비들이 탈곡하고 지붕을 잇는 것을 노비 주인이 손자를 데리고 구경하는 모습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모내기



논갈이와 모내기(경직도의 일부).





이한철 耕織?



우진호, <경직도병>  부분


명대(明代) 화가 옥천산인(玉泉山人) 대진(戴進)의 <경직도(耕織圖)>



농악(세시풍속도) 이한철. 19세기 후반 동아대박물관. 비단에 채색, 115.5×31.5㎝





김득신의 풍속팔곡병 (風俗八曲屛)

Gertrud krassen

the Genre Paintings of Joseon Dynasty

Joseon Paintings


Joseon Far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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