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中道)
양극단(兩極端)에 치우치지 않는 중정(中正)의 도라는 뜻으로 중도는 불교의 근본 입장을 말하고 있어 대승과 소승에 걸쳐 중요시되고 있으며 종파마다 뜻하는 바에 깊고 얕음이 있지만 중도(中道)를 교리의 핵심으로 나타내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중도의 의의를 중도의(中道義), 중도의 진리를 중도리(中道理), 중도의 교설을 중도교(中道敎), 중도를 종지로 삼는 종단을 중도종(中道宗 : 법상종(法相宗)이 유식중도(唯識中道)를 설하므로 중도종(中道宗)이라 자칭함), 중도에 대한 관법을 중도관(中道觀 : 中道第一義蹄見)이라 하며 중도는 우주만유의 진실상을 나타내므로 중도실상(中道實相)이라고 한다.
중아함(中阿含) 권56에서는 팔정도(八正道)의 실천이 쾌락주의와 고행주의에 치우친 생활 태도를 버리고 중도(中道)에 의해 지혜를 완성하고 열반(涅槃)을 증득(證得)하는 길이므로 중도라 하며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 권 49, 성실론(成實論) 권11 등에서는 중도는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을 떠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잡아함(雜阿含) 권12에서는 12연기의 진리를 옳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견(常見 : 중생의 생명의 주체인 我는 영원히 존속한다는 생각)과 단견(斷見 : 사후엔 완전히 減無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생각) 혹은 유견(有見 : 자연적인 입장, 세간의 상식)과 무견(無見 : 허무주의) 등과 치우친 견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십이연기를 옳게 관하는 것이 중도(中道)의 정견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하며 초전법륜(初轉法輪)에서 설해진 것으로 팔정도의 실천은 실천(實踐)상의 중도이고 십이연기(十二緣起)의 체득(體得)은 사상(思想)상의 중도라고 한다.
중관파(中觀派)에서는 모든 집착이나 분별을 초월한 무소득(無所得)의 상태를 중도라고 하는데 이것의 이론적 근거가 팔부중도설(八不中道說)이다. 그리고 유식파(唯識派)에서는 유(有), 공(空), 중(中)의 삼시교판(三時敎判)을 수립하여 유식중도(唯識中道)를 주장하며 천태종(天台宗)에서는 모든 존재를 일면으로만 생각하는 공(空), 가(假)를 초월한 절대적 본체를 중도라고 한다.
한편 우리 나라에서는 고구려의 승랑대사는 중론(中論)의 팔부중도설을 응용, 발전시켜 ‘이제합명중도’를 주장했고 신라의 원효대사는 일체법에 무애자재한 이론으로 ‘일관중도(一貫中道)’를 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