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문경훈 70쪽 아래서 둘째줄부터입니다.
중용자(中庸子)가 위연히 탄식하여 가로되, 이 위(喟)란 말은 ‘한숨쉬다’라는 뜻입니다.
위연(喟然), 한 숨 쉬면서, 그렇게 탄식하여 가로되 ‘중용자’라는 말은 자기 자신을 중용자라 했습니다. ‘내가’ 이런 뜻입니다. 내가 한 숨 쉬며 탄식하여 가로되,
「내가 일찍이 지혜가 미치지 못하고, 지혜가 변변치 않다는 겁니다. 재주가 민첩하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겨, 배우는 것을 그만두는 사람은 보았으나, 우리 주위에 보면 조금 머리가 둔하거나 불교대학에 왔더라도 공부를 잘 못 따라오는 수가 있어요. 그러면 ‘아이고, 거기 가니까 실력이 딸려서 안 되겠더라.’ 또는 ‘강의가 너무 어렵더라.’ 또는 ‘내 주위에는 너무 똑똑한 사람이 많아.’ 이래서 스스로 지레 포기하는 사람 있어요. 자기 자신을 부끄럽게 여겨 배우는 것을 그만두는 사람은 봤다는 말입니다.
치문경훈 71쪽입니다.
음식이 다른 사람의 것 같이 많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겨 음식을 먹지 않는 사람은 보지 못하였다.」 음식은 어떻습니까. 음식은 되는대로 빨리 먹는다는 말입니다. 좀 적더라도 빨리 먹고 또 다른 사람 것도 뺏어 먹으려고 그러잖아요. 근데 이 공부는 아주 느릿느릿하고 공부에 대해서는 애타는 마음이 없어요. 먹는 것은 애타는 마음이 있지요. 그래서 보면 음식은 탐하는 사람은 많되, 배우는 것은 별로 시답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 많더라고 얘기를 하고 있어요. 별로 어렵지 않은 이야기를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음식을 갖다놓고 음식을 먹지 아니하면 죽게 되는 것이니, 그랬네요. 어찌 반드시 많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여 먹지 않으며, 음식을 안 먹으면 죽는 거니까 먹는 거지요.
그런데 학문을 안 하면 금수(禽獸), 토목(土木)과 같이 되거니, 짐승과 흙덩이나 나무와 같이 되거니 어찌 반드시 재주와 지혜가 남과 같이 못하다고 부끄러워하리오.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다. 빨리 빨리 배워야 된다는 얘깁니다. 자기가 수준이 좀 딸린다거나 배워도 잘 안 된다 하더라도 그거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또 전혀 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나는 학벌이 높으니까. 나는 판사 마누라니까.’ 안 그러면 ‘나는 대통령 마누라니까.’ 그래서 또 안 나오는 사람도 있다고요. 불교인들은 동장만 되더라도 법회 안나오거든요. 동장이 뭐예요? 반장만 되더라도 안 나옵니다. ‘아이고, 반장이 왜 가느냐?’고, 부끄럽다는 겁니다. 자존심 상한다는 거지요.
불교인들은 그 정도 수준이고, 기독교인들은 대통령이라도 관계없고, 장관이라도 관계없지요. 성당도 가고 교회도 가고 다 안 다닙니까? 그 사람들 다들 머리 숙이고 기도 하고 안 합니까? 불교인들은 참 자기반에 반장만 되더라도 안 나온다니까요. 잘 나오던 법회도 동장 되고는 안 나옵니다. 아주 대단하지요.
배우지 아니하면 또한 마땅히 음식이 다른 사람과 같지 않다고 부끄러워하여 곧 음식을 폐하여야 할 것이다. 이로서 보건대 어찌 크게 그릇된 것이 아니랴. 나는 또한 지극히 어리석은 자라. 스스로 겸손히 하는 얘기네요.
매양 헤아려 지혜와 재주가 다른 사람에게 미치지 못한지 오래였건만 음식을 가히 걷어치우지 못할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감히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아니하였다.
이 참 재미있게 비유를 들어놨습니다. 자기는 어리석다는 것을 압니다. 근데 내가 음식을 걷어치우지 않으면서 내가 배우는 것을 어떻게 걷어치우겠느냐는 얘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