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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무위사 답사기

작성자봉동|작성시간05.04.14|조회수71 목록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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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bory(namu) | 작성시간 05.04.14 '공양주보살님의 뒷모습이 50년을 살아오는 동안 바라본 여인중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뒷모습으로 보이더라.' 역시 전 이부분을 추천합니다. ㅎㅎ 농담이구요, 무위사 답사기도 멋집니데이..^^*
  • 작성자봉동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5.04.14 뒤페이지에 소개된 가람중에서도 다녀온 절집 답사기가 많은데,그냥 넘어 가렵니다. 인연은 지금부터라고 믿겠습니다 ()
  • 작성자도반(구미1) | 작성시간 07.12.25 답사기를 읽으니 대단한 내공을 지닌분이군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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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가 질수록 정신은 맑아진다더니 천왕문에서 쪼그리고 앉아 바라보는 진입공간은, 사람의
정신을 한곳으로 집중시키게 하는, 어쩌면 아득히 멀어질 듯 가까워지는 그런 묘한 동선이다.
실상사,완주 송광사 등 백제지역의 평지가람의 공간배치와 흡사하지만,있는듯 없는 듯한 얕은
축대위로 저만치  무위사의 보배인 극락전이 자리잡고 있다.


내가 사진작가라면 아마 천왕문에서 그 자연스런 동선을 잡아내는데 몇일을 소요할 것같은 생각도
들었지만, 아직도 통일되지 않은 동서남북 사천왕상을 헤아리다,보살을 만나러 가던 공양간 옆
자판기에 게시된 문구에 나도 몰래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無爲란 인연에 의하여 생성되지 아니하는 영원불변의 초시간적인, 절대적인 진실이며,대승에서는
진여,유식에서는 공과 동일시하며,열반,법성,실상은 無爲의 다른 이름이다"


동행한 놈들의 배를 만족시키지 않고서는, 답사는 고사하고 욕을 배부르도록 먹을게 분명하여 사람
좋아보이는 보살님게 부탁드렸더니 몇명이냐고 하신다.찬스다!! 이기회를 놓쳐서는 도루묵이니
"3명입니다.극락전 참배하고 오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리고는 총총걸음으로 가다가 돌아서서 공
양주 보살님의 뒷모습을 보았더니,  50년을 살아오는 동안 바라본 여인중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뒷모습으로 보이더라.


무위사 극락전은 간결하면서도 질박한 자태이며,무위사 이전의 葛屋寺,茅屋寺의 사찰 이름에서도
수수한, 수줍은 듯한 시골 아낙네의 체취가 가득하며, 수덕사 대웅전과 거조암 영산전처럼 고려,
조선초의 주심포 맞배의 건물로, 건물의 가구나 부재의 용도나 기능을 차치하고라도 측면에서 바라
보는 맛은, 전체가 완연히 노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얇은 잠옷 사이로 보이는 여자의 나신 같다면 
경망스러운가? 


아무튼 극락전에서 바라보아도 무위사의 가람배치는 넓은 공간에 비해 적은 당우들로,텅빈 허전한
느낌이 들어야할텐데, 오히려 가득찬 느낌으로 다가오니 분명 극락전으로 인해그럴진데 연유를
표현할 수 없으니 울카페의 최성호 소장님과 동행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답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극락전의 아미타 삼존불과,후불탱화에서 고려의 특징과
대비되는 협시불의 위치, 거신광에서 보이는 조선 16세기 이후의 특징을 익히 들었겠지만 불교
미술에 문외한인 내게도 분명 조선후기 후불탱과는 다른 감흥을 느끼며 후불단의 백의관음을 보고
있는 와중에 법당이 떠나갈듯 요란한 목소리가 들린다."사진 찍지마라는 글씨 안 보여요!!!"


상감과, 유현은 찍소리 못하고 승가대학 연대장 생도 출신 같은 스님에게 혼줄이 나길래 흐물흐물
웃음지으며 법당 앞으로 나왔더니 "법당에서는 모자를 벗는 것이 예의 아닌가요?"라며 나에게
마지막 피니쉬 브로를 가한다.


완전히 주눅이 들어있는 우리에게 키큰 처사님이 "공양들 하세요"라신다.
에혀!! 이렇게 꾸지람 들으면 밥도 넘어가지 않을텐데 세놈의 화상은 개걸스럽게 해치운다.
체면불구하고 한 그릇 더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건 짐승과 다름없기에...


무위사의 가람배치가 허전한 느낌이 들지 않은 이유중의 하나가 분명 우측에 치우쳐 있는 탑과 
탑비의 영향도 있겠지만, 탑이 주불전과 일직선상에서 벗어나 놓이는 경우는 풍수의 비보, 
본래 주불전의 화재,원인은 불분명하지만 화엄사찰의 특징으로 크게 대별되는데, 무위사 탑은 
까닭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선각국사(선각이 형미스님인 줄 유현의 귀띰으로 알았다) 부도비와 
시대적 편년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한다는데, 부도비와 탑의 위치가 묘하다.

그렇치 않은가? 고려 건국전에 형미스님이 궁예에게 죽임을 당해서 부도,부도비를 건립했더라면 
고려 건국 후에는 형미스님이 일등 개국 공신인데, 대우는 못 할 망정 바로곁에 3층탑을 세울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도 중심축에서 한참 벗어난 자리에...


어슬렁거리며 올라가 산신각과 미륵이 모셔진 전각을 보노라면 웃음이 절로 넘친다.
무위사 넓은 공간을 비워두고 한구석에 옹색하게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좌향이 극락전 측면을 
등지고 앉아 딴청을 부리며 제멋대로 놀고(?) 있지 않은가?
"극락전 형님은 형님 맘대루 하셔!!! "
"난 동네의 할머니 보살과 놀라요!!!"


탱화보존각이 공사로 인해 아미타래영도 등의 벽화는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그 또한 맺지 못할
인연이라고  여기고 떠날려해도 발길이 쉽게 옮겨지지 않는 것은, 무위사는 머무르기 좋은 가람이
아니라, 떠나기 싫은 절집이기 때문일까?

2005.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