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선석사 |
![]() 앞의 왼쪽에 세조의 가봉비와 오른쪽에 그의 태실이 있고, 오른쪽 뒤편 나 홀로 떨어져 있는 단종의 태실이 보인다. 중간 중간에 윗부분이 없는 태실을 볼 수 있는데 세조의 왕위 등극에 반대했던 형제 왕자들의 태실로 세조 즉위 후 그 죄를 물어 훼손 시켰다. 훗날 왕위를 찬탈한 세조의 가봉비문 또한 백성들에 의해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 단출한 일주문과 잘 정돈된 도량이 정감을 더해 준다.
![]() 대웅전 뒤편의 부처님이 왕자태실을 바라 보고 있다.
![]() 산사의 오래된 느티나무가 그늘을 제공해 준다.
![]() 운치 있는 짧은 오르막을 오르면 세종대왕자태실이 있다.
부처님 가피 입은 5백년 왕가의 ‘탯줄묘’
지난 6월 조선왕릉 40기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보존의 비결로 선왕을 추모하고 능을 수호하는 능침사로 칭해졌던 원찰의 힘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일반인에게는 덜 알려졌지만 경북 성주에는 세종대왕자태실과 선석사가 있다. 태실이란 탯줄을 묻는 곳을 말하며 형태는 부도와 흡사하다. 이곳은 전국에서 완전하게 군집을 이룬 유일한 형태 왕자태실로 세종대왕의 세자인 문종을 제외한 17명의 왕자와 원손인 단종의 태가 모셔져 있다.
왕실에서는 탯줄의 처리가 다음 왕손의 생산과 관계가 있다고 믿었으며 더불어 왕실의 번영과 권위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관습에 따르면 세자는 격을 달리하여 따로 태봉을 만들며, 왕자가 왕위에 오르면 태실은 태봉으로 격상되어 다른 곳으로 이전된다.
단종은 즉위기간이 짧아 태실을 이전하기 전에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해 여기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이며, 천륜을 거스르면서까지 어린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어찌 보면 이율배반일 수 있으나, 태봉을 조성하면 백성들이 토목공사에 동원 되어야 하고 인근 지역은 경작과 벌목을 금하여 백성들에게 피해를 준다하여 예조의 태실이전 건의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는다.
왕손이기에 겪게 되는 왕위계승을 둘러싼 조카와 삼촌간의 죽임과 인간적 고뇌가 한 공간에 조성된 태실을 보면서 영화 속 장면같이 머릿속을 흐른다.
세종대왕자태실에서 내려오면 불과 200m 거리에 원찰인 선석사가 있다. 선석사는 선석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신라 효소왕 1년에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는데 처음에는 지금의 자리보다 서쪽에 건립됐으며 신광사라 하였다.
고려 공민왕 10년 나옹대사가 주지로 부임한 뒤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이때 절을 옮기려 터를 닦는데 큰 바위가 나왔다고 하여 선석사라 칭했다. 조선 세종대왕때 왕자태실의 원찰이 되었다.
현존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하여 종각, 명부전, 칠성각등이 있으며 영산회괘불탱은 보물로, 대웅전은 경북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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