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용천사

작성자日花|작성시간10.01.19|조회수102 목록 댓글 19

용천사의 유래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600년(백제 무왕 1) 행은(幸恩)이 창건하였다. 절 이름은 대웅전 층계 아래에 있는 용천(龍泉)이라는 샘에서 유래한다. 이 샘은 황해로 통하며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645년(의자왕 5) 각진(覺眞)이 중수하고, 1275년(고려 충렬왕 1) 국사 각적(覺積)이 중수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세조와 명종 때 중수하여 큰 절로 성장하였다. '용천사대웅전현판단청기'에 따르면 전성기에는 3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한다.

1597년(조선 선조 30)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1600년(선조 33) 중창하였고, 1632년(인조 10)에는 법당을 새로 지었다. 1638년(인조 16)과 1705년(숙종 31)에 중건하고, 1938년에 중수했으나 1950년 6·25전쟁 때 모두 불에 타 없어졌다. 1964년에 금당이 옛 보광전(普光殿) 자리에 대웅전을 새로 세우고, 요사채도 지어 절의 면모를 바꾸었다. 1996년에 대웅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범종각·웅진당·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는 용천사석등과 해시계 등이 전한다. 이 중 1981년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84호로 지정된 석등은 높이 2.38m로 1685년(숙종 11)에 제작된 것이다. 짜임새가 투박하지만 옥개석 네 귀에 거북이 세련되게 조각되어 있다. 해시계는 석등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6·25전쟁 때 잃어버렸다가 1980년 경내 흙더미 속에서 발굴된 것이다. 본래는 높이 14cm, 가로 세로 각 39cm의 정사각형이었으나 지금은 절반이 떨어져나간 상태이다. 하지만 낮시간에 해당되는 묘시(卯時)부터 유시(酉時)까지는 남아 있어 사용하는 데는 이상이 없다고 한다. 그밖에 대웅전에는 18세기 때 조성된 후불탱화가 있었으나 2000년 5월에 도난당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600년(백제 무왕 1) 행은(幸恩)이 창건하였다. 절 이름은 대웅전 층계 아래에 있는 용천(龍泉)이라는 샘에서 유래한다. 이 샘은 황해로 통하며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645년(의자왕 5) 각진(覺眞)이 중수하고, 1275년(고려 충렬왕 1) 국사 각적(覺積)이 중수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세조와 명종 때 중수하여 큰 절로 성장하였다. '용천사대웅전현판단청기'에 따르면 전성기에는 3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한다.

1597년(조선 선조 30)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1600년(선조 33) 중창하였고, 1632년(인조 10)에는 법당을 새로 지었다. 1638년(인조 16)과 1705년(숙종 31)에 중건하고, 1938년에 중수했으나 1950년 6·25전쟁 때 모두 불에 타 없어졌다. 1964년에 금당이 옛 보광전(普光殿) 자리에 대웅전을 새로 세우고, 요사채도 지어 절의 면모를 바꾸었다. 1996년에 대웅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범종각·웅진당·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는 용천사석등과 해시계 등이 전한다. 이 중 1981년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84호로 지정된 석등은 높이 2.38m로 1685년(숙종 11)에 제작된 것이다. 짜임새가 투박하지만 옥개석 네 귀에 거북이 세련되게 조각되어 있다. 해시계는 석등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6·25전쟁 때 잃어버렸다가 1980년 경내 흙더미 속에서 발굴된 것이다. 본래는 높이 14cm, 가로 세로 각 39cm의 정사각형이었으나 지금은 절반이 떨어져나간 상태이다. 하지만 낮시간에 해당되는 묘시(卯時)부터 유시(酉時)까지는 남아 있어 사용하는 데는 이상이 없다고 한다. 그밖에 대웅전에는 18세기 때 조성된 후불탱화가 있었으나 2000년 5월에 도난당하였다.   (자료.한국의 산천 사이드 에서)

 

 

 

 

 

 

 

 

                                     ↓)대웅전 

 

                                                                  ↓)  석등(石燈)
                                                용천사 석등은 해보면 광암리 용천사 경내에 있다.

                                      석등의 재질은 쑥돌이며 현재 지방 유형문화재 제84호로 지정되어 있다.

                                      높이 2.37m의 이 석등은 1685년 6월에 만든 것으로 크기나 짜임새에 있어

                            투박하면서도 정감이 있어 조선조 석등으로서는 대표급이다. 한국전쟁때 불에 타서 거의

                      모든 유물이 사라졌는데 다행히 이 석등은 기둥 받침석의 상단에 붙어 있는 두귀의 거북만 깨졌을뿐

                                 제 모습을 갖추고 있다. 거북조각은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그 모양이 세련되어

               석등 상부의 지붕돌은 목조건물의 팔작지붕(옆에서 볼때 '八'자모양) 형식을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 특이한 양식이다.

                       석등 밑 8각 간석에 새겨진 글에는 숙종 11년(1685)에 만들어 졌으며 당시 시주한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있다.

 

 

                                                 ↓)    석탑(石塔)  
                        이 석탑은 현재 대웅전의 좌측에 있으나 원래의 위치인지는 알 수 없다.

                       기단부가 원형대로 결구되어 있지않아 세부적인 결구기법을 알 수 없다.

                       현 상태를 보면 맨 밑에 자연석을 짜맞추어 기단부로 삼고 그 위에 1매의 갑석이 얹혀져 있다.

                       탑신부로 올라와서는 탑신과 옥개석이 각 1석씩인 3층 석탑인데 상륜부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성연대는 옆에 있는 석등 연대와 같은 조선조 후기로 추정된다.

 

 

                                  ↓)     범 종각

 

 

              

                                                 ↓) 龍泉

                    함평군 해보면에 위치한 용천사를 찾았다.

                    용천사, 9월부터 10월까지 빨간 꽃무릇이 용천사를 뒤덮어 장관을 이루어 꽃무릅축제로 유명한 곳이.

                    불갑산의 자락인 용천사는 백양사의 말사로 600년(백제 무왕 1) 행은()이 창건하였다.

                    절 이름은 대웅전 층계 아래에 있는 용천()이라는 샘에서 유래했는데 

                    이 샘물이 황해로 통하며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대덕행(칠17-6) | 작성시간 10.01.28 관세음보살()()().....♡
  • 작성자정각안(주리135) | 작성시간 10.01.26 관세음보살()()()
  • 답댓글 작성자대덕행(칠17-6) | 작성시간 10.01.28 관세음보살()()().....♡
  • 작성자대덕행(칠17-6) | 작성시간 10.01.28 관세음보살()()().....♡
  • 답댓글 작성자대덕행(칠17-6) | 작성시간 10.01.28 관세음보살()()().....♡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