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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무봉사(1) - 부도 및 일주문

작성자普月(보월)|작성시간18.07.30|조회수670 목록 댓글 4

밀양 무봉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원래 773년(혜공왕 9) 법조 대사가 현재의 영남루 자리에 있었던 영남사의 부속암자로 세운 것인데,


1359년(공민왕 8) 화재로 영남사가 소실되자 이 암자를 무봉사로 승격시켰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5년에 혜징이 새로 짓고,


1899년에 경봉이 중건했으며 1942년에 중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삼성각·종루·요사채 등


이 있다. 대웅전에는 석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출처 : 다음백과



무봉사(舞鳳寺)는 영남루(嶺南樓)의 전신인 영남사(嶺南寺)의 부속 암자로 추측된다.


무봉사의 무봉은 봉황이 춤을 추었다는 의미인데,  혜공왕 9년 (773년) 당시 이곳 영남사에 주석하고 있던 법조선


사(法照禪師)가 절의  마당을 거닐고 있을 때 큰 봉황새가 춤을 추며 날아 와 앉았다고 한다.


이에 스님은 그 자리에 암자를 짓고 그 이름을 무봉암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무봉사는 밀양강쪽의 경치좋은 벼랑 같은 곳에 지어진 절이다.

다시 계단을 오르면 일주문과 무량문이 있고 그 뒤에 석조여래좌상을 안치한 무봉사가 있다.




어간 상부에는 無鳳寺라고 적힌 편액이 있으며 좌측 입구에 무봉사 일주문 준공비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이다.


773년(혜공왕 9)법조(法照)가 현재의 영남루 자리에 있었던 영남사(嶺南寺)를 순례하다가 큰 봉황새가 이곳으로 날아와 앉으므로, 상서로운 성지라 생각하고 창건하였다.


혹은 고려의 고승 범률국사가 이 절에서 하안거를 하면서 봉황이 춤추는 형국이기 때문에 절 이름을 무봉사로 하였다고도 한다.

그래서 지금의 삼문동 지역에서 봉황이 알을 낳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밤나무를 심어 가려 주었으며, 무봉사에서 아침과 저녁으로 종소리를 울려 봉황을 날게 하였다고 한다.


1359년(공민왕 8)영남사가 화재로 소실되자 무봉암이라 하였던 이 절을 무봉사로 승격시켰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5년혜징(慧澄)이 중건하고, 1628년(인조 6)경의(敬儀)가 중창하였다. 1899년(광무 3)경봉(慶蓬)이 중건하고, 1942년에 중수, 증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 삼성각·종루·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 안에는 보물 제493호로 지정된 무봉사석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무봉사는 예부터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발걸음이 그치지 않았으며 봉황이 춤추는 형국이라 하여 무봉사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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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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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도행(147-3큰절소식방지기) | 작성시간 18.07.31 감사합니다 ~~~참 좋은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 관세음보살()()()
  • 작성자法 田(146) | 작성시간 18.07.31 덕분입니다()()()
  • 작성자무상신(128-3) | 작성시간 18.07.31 관세음보살()()()
  • 작성자121( 관음성)알레르망시지점 | 작성시간 18.08.21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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