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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룡사 [觀龍寺] /경남 창녕

작성자해바라기(心印道)|작성시간06.03.06|조회수113 목록 댓글 1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관룡산 남서쪽 화왕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의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신라 8대사찰의 하나로, 394년(내물왕 39)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583년(진평왕 5) 증법()이 중창하고 삼국통일 후 원효가 중국 승려 1,000명에게 《화엄경》을 설법하여 대도량(埸)을 이루었다.

748년(경덕왕 7) 추담()이 중건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 1401년(태종 1) 대웅전을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당우()가 소실되어, 1617년(광해군 9)에 영운()이 재건하고, 1749년(영조 25)에 보수하였다.

이 사찰에는 대웅전(보물 212호)과 약사전(殿, 보물 146호)을 비롯하여 석조 여래좌상(, 보물 519호)과 약사전 3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11호), 용선대() 석조 석가여래좌상(보물 295호) 등이 있다.

 

 

관룡사 대웅전 /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관룡사. 보물 제212호. 조선시대. 비로자나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12호로 지정되었다. 관룡사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의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로, 신라 8대사찰의 하나이며 394년(내물왕 39)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1617년(조선 광해군 9)에 세운 건물로 정면 3칸, 옆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이다. 다포()집 계통으로 내부에는 중앙 뒷줄에 큰 기둥 2개를 세우고, 그 위에 걸친 대들보에는 좌우로 옆면의 기둥에 걸쳐 충량()보를 2개씩 설치하였다.

천장은 우물천장인데, 중앙부분을 주위보다 한층 높게 한 것이 특징이며, 바닥에는 마루를 깔고 큰 기둥에 의지하여 불단()을 두었고 그 위에 닫집을 달았다. 기둥 위로 처마 밑을 받친 공포(栱)는 흔히 볼 수 있는 다포집 계통의 구조이나 그 세부에는 오래된 수법을 엿볼 수 있다.

출목()은 내외 모두 2출목이며, 그 상단에 있는 살미첨차의 끝은 삼각형을 이루었다. 쇠서의 곡선은 짧고 견실하며 내부에는 대들보를 받은 공포의 최선단 부분만이 양봉()의 형태로 변하였는데, 이러한 세부 양식들은 거의 조선 중기 이전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1965년 8월에 해체하여 보수공사를 하였고, 마룻도리에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여 1401년(태종 1)에 창건, 1617년(광해군 9) 중수, 1749년(영조 25) 중수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룡사 석조여래좌상 / 경남 창녕군 창녕읍. 고려시대. 보물 제519호. 높이 1.1m의 불상.

 

1970년 6월 24일 보물 제519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1.1m이다. 이 불상은 관룡사용선대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295)을 본떠 만들었다. 관룡사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의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로, 신라 8대사찰의 하나이며, 394년(내물왕 39)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16개의 연꽃이 조각된 높이 90cm의 대좌() 위에 있으며, 다리는 결가부좌(), 손은 약사정인()이며, 약항아리는 없어졌다. 머리에는 육계가 있으며, 귀는 어깨까지 내려와 있다. 삼도()는 가슴에 표현되어 있으며, 옷주름은 도식적이다. 코는 얼굴에 비해 짧은 편이며, 입은 작게 표현되어 있다.

얼굴과 결가부좌한 하체부의 표현이 다소 소홀하나 고려시대의 불상으로는 가작이다. 좌대()는 상대석과 하대석의 조각솜씨가 다르다. 하대석은 신라시대의 것이고, 상대석은 솜씨가 거칠어 그 후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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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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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法空 | 작성시간 06.03.18 저도 몇번 다녀 왔습니다. 좋은 자료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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