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통신사들이 원양어선을 타고 가기전 이 불쌍한것 하며내손을 잡고서 울며 하는 말 너무 환경이 어려워도 배는 꼭 타지 말라고 심심 당부를 했습니다. 공부를 해서 꼭 과학자가 되거라고 이야기를 했던 일 약속을 하라고 학비가 어려우면 형들이 보내겠다고 합니다. 공부를 할때 그동안 많은 추억을 남겨 놓았습니다.60년도 국가 경제가 어려을때 일이지요, 형들은 시골에서 올라와서 남대문 시장에서 낮에는 지게를 지고서 짐을 나르며 열심히 일을 해 가면서 꿀꿀이 죽을 먹으며 살았던 선배들, 밤에는 염천교 다리옆 지하 건물에는 국내 유일한 한국 전파 학원 통신과 학원에서 무선 통신사 공부를 했습니다 6개월 기간 3급 무선 통신사 국가고시 공부이지요 6개월 만에 합격은 어려운 것이지요.형들과 인연은 중 2년때 과학 전람회 6회 참관후 광화문에는 국제 전신 전화국이 있어 호기심에 시간이 나면 그곳을 열심히 가서 구경을 헀습니다.나도 통신사가 되겠다고 하여 간곳이 한국전파 학원 학비가 없어서 빈 노트를 들고가 강의실 밖에서 수신연습을 했습니다.모두들 왠 꼬마가 밖에서 공부를 하는 모습,학원 선생님께서 모른체 하시면서 열심하라고 격려를 하셨습니다.몇달후 서당께 3년후이라는 이야기는 사실이 된것입니다.
공부를 잘못하는 수강생들에게 선생님들께서는 밖에서 공부하는 꼬마를 보라고 저 꼬마는 시험장 가면 합격을 할것이라고 했습니다.
늘 수신을 하는 노트틀 보면서 늘 웃으시는 선생님 열심히하라고 하십니다. 선배 들은 통신사 합격하여 떠나는 형들은 학원 교재를 주고들 갔습니다. 늧은 밤시간 종종 잠이 들으면 깨우고 이제 집에 가고 내일 오라고했던 형들 생계가 급해서 3급으로 다 참치 잡이 배를 타고들 갔습니다. 2급은 2년후 국내에 오면 시험을 보겠다고 했습니다.화물선 근무는 좋은 환경이라 모두들 선호했습니다. 시험은 어려워서 합격이 쉽지가 읺았지요 과목도 많았고해서 다들 3급을 보던 시절이었습니다.
늘 웃으시는 기술과 선생님은 무선 기술사 공부를 하라고 하셨습니다통신장을 하셨던 선생님은 2급으로 통신장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하십니다. 형들이 불합격 되면 남산에 올라가 팔각정에서 많이들 울었던 일 다 흙 수저들에 생활에 현실 한시가 급해서 파도가 거샌곳으로 간 형들 ,시간이 지나가고 다 합격으로 참치 배 통신장으로 갔습니다.3구 오실레이터를 만들어 수신공부를 열심히 하였던 일,
생사를 알 수가 없습니다.고된 승선 생활이 쓰여진 편지를 받고서 많이 울었습니다. 작은 선박 낡은 통신기.몸에는 밧줄을 묶고서 조업을 하는 일 비참한 승선 생활, 그들이 외화벌이는 그 당시 국가 경제를 살렸습니다.서독으로 갔던 광부, 간호사 보다 외화를 더 벌었습니다.남태평 사모아섬에는 한국인들이 사는 것도 선원들이 살고 계십니다.그 당시 2급 무선 통신사 합격은 1년에1-2명 소수로 절대 부족으로 출항을 못하는 선박이 많아서 부산항에 가면 당장 계약 하자고 선불금 주겠다고 그 당시 서울에 집을 살수가 있는 금액이었습니다. 돈의 유혹을 뿌리치고 그후 형들에 약속을 지키기위해 공부를 하여 70년도 서울 홍릉 과학단지 연구소 입소하여 과학자 길로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모두에게는 평범한 직장인신분으로 ...국가 안보를 위해서 일을 했습니다.지금도 과학인으로서 연구는 계속되고 있고, .투명인간으로서 .이름없는 별로서 지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