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명재 이인로의 파한집 中에서)
초당추칠월(草堂秋七月) 초당 가을 칠월에 동우야삼경(桐雨夜三更) 오동잎 듣는 비 밤은 삼경인데 금침객무몽(衾枕客無夢) 베개에 비긴 나그네 꿈 못 이루고 격창충유성(隔窓蟲有聲) 창밖엔 들리거나 벌레 소리 천사번란적(淺莎翻亂滴) 얕은 잔디는 어지러이 젖어 번득이고 한엽주여청(寒葉酒餘淸) 싸늘한 잎 비 맞고 말쑥하네 자아유유취(自我有幽趣) 나에게도 그윽한 자취가 있어 지군금야정(知君今夜情) 그대의 오늘 밤 심경 알겠네 -學士 인빈 作- 이인로의 破閑集에서 - º 이 시 한 수로 학사 인빈은 문명(文名)이 해동제일이라는 평과 함께 “명성(名聲) 밑에 허사(虛士)가 없다”는 말을 듣게되었다. 이글은 인빈이 공암현(양천의 옛 이름)에서 행주까지 배를 타고 가다 지은 시로 알려지고 있다. ............................................................................................................................
(보한집에서의 學士公의 諱字) ▣역문[보안집] 서문 文(문)이란 것은 道(도)를 밟아 들어가는 門(문)으로써 不經(불경)한 말에 간여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글을 지음에 있어 기운을 고무하고 말을 자유롭게 구사하고자 하며. 때로 듣는 사람을 감동시키고자 하여 혹 험하고 괴이한 것에 간여하기도 한다. 하물며 시를 짓는 것은 比(비) 興(흥)과 諷喩 (풍유) 에 바탕 하므로 반드시 奇詭(기궤)한 것에 寓託(우탁)한 뒤에야 기운이 힘차 보이며. 뜻이 심원하고 말이 드러나게 되어 보는 이의 마음을 감동 시킬 만 하고 은밀한 뜻을 發揚(발양)하여 마침내 바른 데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만약 남의 것을 그대로 몰래 훔쳐 오고 사실적인 것에 치우 치며 剽窃刻畵(표절각화).과장되고 요란스러워 절제되지 않은 것 誇耀靑紅(과요청홍)은 선비들이 진실로 범하지 않는 것이다. 비록 詩家(시가)에게는 琢鍊四格(탁련사격)이 있으나 취하는 것은 琢句(탁구)와 鍊意(연의)일 따름인데 지금의 後進(후진)들은 聲律(성율)과 章句(장구)를 숭상하며 글자를 다듬는 경우에는 반드시 새롭게 하고자 하는 까닭으로 그 말이 生硬(생경)하고 對偶(대우)를 단련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같은 말로써 하고자 하므로 그 뜻이 졸렬하게 되니 雄傑(웅걸)하고 老成(노성)한 기풍은 이로 말미암아 잃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人文(인문)으로써 敎化(교화)가 이루어 졌으니 어질고 준걸한 사람들이 간간히 나타나서 風化(풍화)를 찬양하였다 光宗(광종) 顯德(현덕) 五年(5년)에 비로소 과거 春위(춘위)를 열어 어질고 훌륭한 인재를 뽑았으니 비길 데 없이 높은 威容(위용)을 갖춘 선비들이 모여들었다 玄鶴來儀(현학래의). 이때 王融(왕융). 趙翼(조익). 徐熙(서희). 金策(김책). 등이 큰 재주를 가졌던 인물들이다 景宗(경종)에서 顯宗(현종)에 이르기까지 두어 대 사이에 李夢遊(이몽유). 柳邦憲(유방헌)이 文(문)으로 두드러졌고 鄭倍傑(정배걸) 高凝(고응)은 詞賦(사부)로 진출하였으며 文憲公(문헌공) 崔冲(최충)은 命世(명세)의 자로 유학을 일으켰으니 이에 우리의 道(도)가 크게 행해졌다 文宗(문종)때에 이르러서는 聲名(성명)과 文物(문물)이 粲然(찬연)히 크게 갖추어 졌으니 당시의 冢宰(총재)였던 崔惟善(최유선)은 왕을 보좌하는 재주로 저술이 精妙(정묘)하였으며 平章事(평장사) 李靖恭(이정공) 崔奭(최석)과 參政(참정)이던 文正公(문정공) 李靈幹(이영간) 鄭惟産(정유산). 學士(학사) 金行瓊(김행경) 盧旦(노단)등이 서로 견줄 만 하였으니 이는 마치 周(주)나라의 文王(문왕)이 어진 선비들을 만나 나라를 便安(편안)하게 다스린 것과 같았다. 그 뒤로는 朴寅亮(박인량). 崔思齊(최사제).思諒(사량). 李오(이오). 金良鑑(김양감). 魏繼廷(위계정). 林元通(임원통). 黃塋(황영). 鄭文(정문). 金綠(김록). 金商祐(김상우). 金富軾(김부식). 權適(권적). 高唐愈(고당유). 金富轍(김부철). 富佾(부일). 洪瓘(홍관). 印份(인빈). 崔允儀(최윤의). 劉羲(유희). 鄭知常(정지상). 蔡寶文(채보문). 朴浩(박호). 朴椿齡(박춘령). 林宗庇(임종비). 芮樂同(예락동). 崔誠(최성). 金精(김정). 文淑公(문숙공) 父子(부자). 吳先生(오선생) 兄弟(형제). 李學士(이학사) 仁老(인노). 兪文公(유문공) 旦(승단). 金貞肅公(김정숙공) 仁鏡(인경).文順公(문순공) 李奎報(이규보). 承制(승제) 李公老(이공노). 金翰林(김한림) 克己(극기). 金諫議(김간의) 君綏(군수). 李史館(이사관) 允甫(윤보).陳補闕(진보궐)澕(화). 劉冲基(유충기). 李百順(이백순) 兩司成(양사성). 咸淳(함순). 林椿(임춘). 尹于一(윤우일). 孫得之(손득지). 安淳之(안순지).등의 찬란한 인물들이 간간이 나타나 별과 달이 서로 빛을 내는 것과 같았으니 漢文(한문)과 唐詩(당시)가 이에서 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고금의 여러 名賢(명현)들 가운데 文集(문집)을 엮어 놓은 사람은 오직 수십 명에 그쳤으니 나머지 名章(명장)과 秀句(수구)는 모두 인멸되어 들을 수가 없다. 學士(학사) 李仁老(이인노)가 대략 글을 모아 엮어서 破閑(파한)이라고 이름 하였는데. 晋陽公(진양공)이 그 冊(책)이 널리 글을 모아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하여 나에게 그것에 이어서 補充(보충)하라고 명했다 이에 숨겨지고 잊혀졌던 글을 약간 모으고 近體詩(근체시) 몇 수를 얻었으며 혹 스님이나 아녀자들의 한두 가지 일이라도 웃음꺼리가 될 수 있는 것은 그 詩(시)가 비록 좋지 못해도 함께 실었는데 모두를 一部(일부)로 하여 세권으로 나누었다 아직까지 인쇄에 올릴 겨를이 없었더니 지금에 와서 侍中上柱國(시중상주국) 崔公(최공)께서 선친의 뜻을 追述(추술)하여 그 원본을 찾기에 삼가 엮어서 올린다. 때는 甲寅年(갑인년) 四月(사월) 守太尉(수태위) 崔滋(최자)가 서문을 쓰다
(권문해의 대동운부군옥中 학사공의 사적) 대동운부군옥 권6 하평성(下平聲), 양자운(陽字韻),망(芒)자에 혜망(慧芒)이 보인다. 명진해동 (名振海東):행주(幸州)의 남쪽호수에 깎아지른 절벽이 참외껍질처럼 생겼는데, 곧 옛날 학사(學士) 인빈(印份)의 초당(草堂)이 있던 터이다. 인빈(印份)이 일찍이 초당시(草堂詩)를 지었는데, 이러하다.가을 7월의 초당(草堂)에, 오동잎에 비 내리는 밤 삼경이라. 베개에 기댄 나그네 꿈 이루지 못하는데, 창 저쪽으로는 벌레 소리 들리는구나. 짧은 잔디에는 빗방울 어지러이 떨어지고, 차가운 나뭇잎에서는 남은 맑음을 뿌리누나. 나에게 깊은 정취(情趣)가 있기에, 그대 오늘 정회(情懷)를 알 수 있다네 草堂秋七月, 桐雨夜三更, 衾枕客無夢, 隔窓蟲有聲, 淺莎翻亂滴, 寒葉酒餘淸, 自我有幽趣, 知君今夜情. "학사(學士)의 이름이 해동(海東)에 크게 떨친 것은, 실로 이 시로 말미암은 것이다.(李仁老, [破閑集] 卷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