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인도의 살인마… 100명을 죽여서 해탈하리라
#풍경1
2500년 전입니다.
인도에
“아힘사”라고 불리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착하고
얼굴도 잘생기고
아주
건실한 젊은이였습니다.
‘아힘사’는
산스크리트어로
‘남을 해치지 않는다’는
뜻이거든요.
종교적 용어로는
‘불살생(不殺生)’이란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힘사는
진리를 찾기 위해
인도의 한 수행 그룹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힘사의 스승이
옆 마을로
출장을 갔습니다.
그사이에
스승의 부인이
아힘사를 불러서
유혹했습니다.
“저는
스승님을
아버지로 생각하고,
스승님의 아내를
어머니로 생각합니다.”
아힘사는
그렇게
그 유혹을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스승의 부인은
분한 마음과 함께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풍경2
스승이
출장에서 돌아와
집으로 왔습니다.
그러자
스승의 부인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당신이 없는 사이에
아힘사가
나를 겁탈하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스승은
엄청난 배신감과 함께
분노가 치솟았습니다.
정말
자식처럼 대했던
아힘사가 그럴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니까요.
스승은
아힘사를 불러서
수행 그룹을 떠나라고
말했습니다.
자식같이 여겼던
아힘사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습니다.
그런데
아힘사는
스승의 제안을
완강하게
거절했습니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른 게
없으니까요.
아힘사가
떠나는 걸 거절하자
스승은
의심을 떠나
오히려
확신이 들었습니다.
자기 부인이 한 말이
정말로 맞구나,
싶었습니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은 스승은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나를 배신하다니
내가 너를
파멸의 길로 인도하겠다.”
#풍경3
스승은
아힘사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에게만
해탈하는 비법을
알려주겠다.”
그 말을 들은
아힘사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100명의 사람을 죽여서
엄지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어라.
그럼
해탈을 얻게 될 것이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아힘사는 달랐습니다.
그는
스승을
절대적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을 따랐습니다.
아힘사는
사람을 죽여서
엄지손가락을 잘라
목걸이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걸
자신의 목에 걸고서
희생자를 계속
만들어냈습니다.
사람들은
더는 그를
“아힘사”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이렇게 불렀습니다.
“앙굴리 말라!”
무슨 뜻이냐고요?
앙굴리 말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손가락 목걸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아힘사’를
이제
‘살인마’라고
부르는 셈입니다.
앙굴리 말라는
그렇게
손가락의 개수를
하나씩, 둘씩
늘려갔습니다.
그가
목에 두른
목걸이의 길이도
치렁치렁,
길어졌습니다.
#풍경4
앙굴리 말라는
드디어
99개의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하나만 더 채우면
100개가 되는
셈입니다.
그럼
스승이 말한
해탈의 문을
열게 되겠지.
그렇게 고대하며
마지막 희생자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일대에
살인마의 소문이
쫙 퍼지면서
앙굴리 말라가 사는
지역의 근처에는
사람들이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앙굴리 말라는
마지막 희생자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홀로 길을 가는
나그네였습니다.
앙굴리 말라는
“옳거니!” 하면서
칼을 들고
그 사람을 쫓아갔습니다.
그 사람은
천천히 걷고 있고,
앙굴리 말라는
있는 힘껏 달려서
쫓아갔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했습니다.
아무리 달리고,
또 달려도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앙굴리 말라는
나그네를 향해
뒤에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멈추어라!”
#풍경5
나그네는
뒤를 돌아봤습니다.
그랬더니
긴 머리에
수염이 덥수룩한
젊은이가
한 손에 칼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그의 목에는
사람의 손가락으로 만든
목걸이가
걸려 있었습니다.
나그네는
앙굴리 말라를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멈춘 지
이미 오래됐다.
멈추지 않고 있는 이는
바로 너다.”
그렇게 말한
나그네는 누구일까요.
그렇습니다.
그가 바로
석가모니 붓다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앙굴리 말라의
반응이 어땠을까요.
칼을 들고 달려가
나그네를 해쳤을까요.
아닙니다.
앙굴리 말라는
그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당신은 빨리 가면서도
오히려
늘 멈추어 있다고 말하고,
나는 이제 지쳐서 멈추었는데
오히려
멈추지 못하고 있다고
당신은 말합니다.
그동안
아무리 손을 씻어도
늘 핏빛이었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깎고 출가해
붓다의 제자가 됐습니다.
훗날
앙굴리 말라는
피나는 수행 끝에
아라한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탁발을 나갔다가
자신이 죽인
희생자의 가족들이 던진
돌팔매에 맞아서
죽었습니다.
불교에서는
이 역시
인과(因果)의 한 풍경으로
바라봅니다.
지금도
인도 북부의
불교 유적지에 가면
앙굴리 말라의 탑이
있습니다.
그 탑 앞에는
길이
하나 있습니다.
앙굴리 말라가
칼을 들고서
붓다를 쫓아갔다는
그 길입니다.
저는
그 길에 서서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물음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나는 멈춘 지
이미 오래됐다.
멈추지 않고 있는 이는
바로 너다!”
앙굴리 말라는
이 말을 듣고서
왜 무릎을 꿇었을까.
#풍경6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비단,
앙굴리 말라뿐일까.
멈추고 싶은데,
멈추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
그게 정말
앙굴리 말라뿐일까.
어쩌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각자의 방향으로
각자의 속도로
온 힘을 다해
달려가지만,
무언가 삶이 헛헛한
낭패감.
주위 사람에게
입힌 상처로
점점 더 길어지는
내 목에 걸린
목걸이.
이제는
멈추고 싶은데,
어떡해야
멈출 수 있는지
그 방법도 모르는 삶.
어쩌면 우리도
멈추지 못하고 살아가는,
각자가
앙굴리 말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우리 앞에
이미 멈춘 사람이
있습니다.
멈추는 법을
일러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다름 아닌
붓다입니다.
붓다의 한 마디
“나는 멈춘 지
이미 오래됐다.
멈추지 않고 있는 이는
바로 너다.”
반야심경에도,
금강경에도,
팔리어로 된
초기 불교경전에도
멈추는 법이
기록돼 있습니다.
주어진
철로의 궤도로만
달리는
폭주 기관차의 삶을
멈추고,
자기 내면으로
오솔길을 내는 방법이
붓다의 깨달음에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출처:중앙일보]백성호: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