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려내는 힘 / 김복희

작성자안해나|작성시간26.06.08|조회수68 목록 댓글 0

오려내는 힘

 

김복희 
 

 밟고 있는 땅이
 필요했어
 붓꽃에 뿌리가 있다는 증거가
 삶에서 떠내려가지 않는 이유가 
 
​  붓꽃
 물가를 따라
 물로 흘러내리는 흙을 붙잡는  
 
​  우거진 풀 사이 벌레처럼 날아드는
 기억에 남지 않는 손
 그게 물가를 걷는 네 등을 살짝 밀어주지 
 
​  너 모르게
 네 용기를
 돕는 푹신하고
 그늘 없는 땅 
 
​  창포원에서
 아무것도 밟아 죽이지 않는
 붓꽃을 봤어
 그건 너도 나도 아니었고  
 
​  그늘을 흔들고
 이마를 들추는
 바람, 창포를 하나하나 다 건드리고 가는
 바람 
 
​  너와 나를 습지원 풍경으로부터
 오려내지
 너와 나를 기슭에
 머물게 하지
 땅 위에 서게 하지

 

- 시집《보조 영혼》(2025.문학과지성사)

 

 

 

 

 

 

 

 

 

ㅡ김복희ㅡ
1986년 전남 진도 출생. 2015년《한국일보》신춘문예 등단. 시집『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희망은 사랑을 한다』,『보조 영혼』. 산문집『노래하는 복』,『시를 쓰고 싶으시다구』. 2024 제69회 현대문학상 수상작으로 시집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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