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려내는 힘
김복희
밟고 있는 땅이
필요했어
붓꽃에 뿌리가 있다는 증거가
삶에서 떠내려가지 않는 이유가
붓꽃
물가를 따라
물로 흘러내리는 흙을 붙잡는
우거진 풀 사이 벌레처럼 날아드는
기억에 남지 않는 손
그게 물가를 걷는 네 등을 살짝 밀어주지
너 모르게
네 용기를
돕는 푹신하고
그늘 없는 땅
창포원에서
아무것도 밟아 죽이지 않는
붓꽃을 봤어
그건 너도 나도 아니었고
그늘을 흔들고
이마를 들추는
바람, 창포를 하나하나 다 건드리고 가는
바람
너와 나를 습지원 풍경으로부터
오려내지
너와 나를 기슭에
머물게 하지
땅 위에 서게 하지
- 시집《보조 영혼》(2025.문학과지성사)
ㅡ김복희ㅡ
1986년 전남 진도 출생. 2015년《한국일보》신춘문예 등단. 시집『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희망은 사랑을 한다』,『보조 영혼』. 산문집『노래하는 복』,『시를 쓰고 싶으시다구』. 2024 제69회 현대문학상 수상작으로 시집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선정.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