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번영로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보니, 아, 나아가보니 -
졸음 잔뜩 실은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보니, 아, 나아가보니 -
아련 - 꽃이 나는, 지난 날의 회상(回想)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안에 자지러지노나!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보니, 아, 나아가보니-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銀)실 같은 봄비만이
노래도 없이 근심같이 내리노니!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ㅡ번영로ㅡ
본명 변영복. 본관 밀양, 호 수주. 1922년《신생활》등단. 시인이며 동아일보 기자. 1923년 시집 『조선의 마음』, 『변영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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