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말만 같아서
정수자
멜랑콜리 파리에서 등짝을 좀 맞았는데
어느 날 좋은 날 늙수그레 노숙에게 크로와상 건네려니 커피도 좀… 그랬대서, 별난 노숙 후문을 갸웃이 듣자 하니 저녁때면 어김없이 제 가로등 찾아들어 두 시간씩 기대앉아 책을 읽다 간다고, 별스런 삼매경에 바람도 기웃하니 기침인지 문장인지 읊조리곤 하더라고, 그 말끝에 왜 자꾸만 우리네 지하철과 폰에 박힌 거리거리 묵묵한 머리들과 내 방구석 책탑들이 새삼 재삼 덮치던지 게다가 또 별똥인지 할㿣인지가 마구 들치던지
애석해* 눈이 시린데
생은 더욱 시리데
* 젊은 시절 미처 못 읽은 책들을 되짚던 어느 망백 시인의 탄식.
내란
정용국
사는 게 다 그렇다
여북하면 그랬겠나
결기는 잠깐이고
참기는 어려우니
지랄*을 해보는 거지
사는 게 참 어렵다
넘치면 안됩니다
모자라도 탈이구요
한 번을 지지 않고
양보는 하늘의 일
솟구친 힘만 믿다가
제풀에 무너지는
* '용쓰다'의 뜻으로.
폭염
정지윤
1.
수국꽃 하도 예뻐 한 가지 꺾어 왔다
두 마디 잘라내서 화분에 꽂아놓고
무더위 힘겨운 날들
견디고 또 견딘다
2.
밭에서 단호박이 그대로 익어버리고
도로의 아스팔트 흐물흐물 녹아내려도
시장 옆 좌판 할머니
우산 쓰고 앉아 있다
3.
역대급 고수온에 양식장 비상이다
떼죽음 당하기 전 물고기 풀어주며
자유다 살아 남아라
지옥 같은 여름날
북극곰의 눈물
- 모래조각가 김길만
정현숙
다대포 모래밭에 쏟아지는 붉은 노을
세상의 모든 고요 평화를 거느리고
한 바다 장엄하게도 홀연히 입멸(入滅)한다
그 위에 빙하 떠난 북극곰과 철새, 펭귄
따뜻한 파도 타고 정박한 숱한 그들
지구가 너무 뜨거워 난민처럼 된 걸까
어쩌리, 산성비가 잠든 이 해안에서
순금 빛 조각들의 눈물이 완성되고
인간이 벗어둔 신발 신고 어슬어슬 멀미한다
소음을 깔고 누운 침묵의 언어 앞에
우리가 할 일들 앞으로 해야 할 일
우우우 지구를 위해 유서로 쓴 우화 한 점
* 2025. 4. 22. '지구의 날'을 맞아 김길만 모래조각가가 다대포해수욕장 모래사장에 북극의 빙하가 모두 녹으면 북극곰과 펭귄이 부산 다대포 해안까지 밀려올 수 있다는 점을 표현한 모래조각 작품으로, 기후 변화로 인한 위기감을 담아냈다.
-《오늘의 시조》(2025 .하반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