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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시조]]저물녘 꽃이 피어 외 3편 / 정혜숙 외

작성자안해나|작성시간26.06.10|조회수81 목록 댓글 0

저물녘 꽃이 피어

 

정혜숙

 

 

희미한 허밍처럼, 먼 곳의 너처럼

저물녘에 번지는 그리웠던 꽃의 기억

새소리 문득 사라지고 사위가 고요하다

 

날개 상한 나비는 안식에 들었을까

위로처럼 다녀가는 다정한 바람 몇 올

하늘엔 시늉하는 눈썹달

한 줄 푸른 유언 같은…

 

고개를 갸웃한 채 꽃의 말 따라간다

꽃들의 읊조림은 나지막하고 맑아서

천천히 들키지 않게

잠행하는 밤이다

 

 

 

참새가 보리수를 떠나지 못한 것은

 

정황수

 

 

피죽바람 저 솔봉이

보리누름 오기 전에

구름길로 들고나던 꿈은 그예 흩어지고

얼떨결 움킨 달콤도

엉거주춤 떨궈버려

 

볼록거린 오목가슴

생게망게 맥을 놓아

자발없이 옮겨 앉은 가지마다 주름지고

빈 하늘 품은 바람도

부질없이 흘러버려

 

 

 

구아노

정희경


새들이 뱉어놓은
말들이 굳어 있다

시퍼란 바다에서
물고 온 섬의 체온

하얗게 멍이 든 파도
내려놓는 중이다

 

 

 

책꽂이를 옮기다

 

조경선

 

 

사람 사이 사람을 꽂고

사람 위에 사람을 놓아

 

비집고 들어간 곳 자리다툼 하는데

키 작은 무명 하나가 그렇게 견딘 계절

 

옮길 때마다 바뀐 자리

돋보이는 이름값들

 

그 틈새에 끼어서 살아남은 시집 한 권

내 손에 잡히지 않아 꿈으로만 꽂혀있다

 

두꺼운 사람이

맨 밑으로 가는 일과

 

흔해서 버려지는 위인을 떠올리며

나 먼저 비워야 한다 오래된 전설처럼

 

 

-《오늘의 시조》(2025 .하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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