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의 변
최태식
창고 안 걸이대에 양팔로 매달려서
죄인의 형상으로 묵묵히 견디다가
잠깐씩 불려나가며 도맡아 온 악역들
잘려나간 인연이 등 돌려 멀어질 때
어긋나야 사는 몸 언제나 풀어질지
밤마다 가위눌린 채 꿈을 깨는 한 사내
내가 나를 못 잘라 속정이 무너지면
벼리고 싶던 시간 까맣게 잊혀질까
스스로 입 닫아걸고 지난날을 접는다
소나무 재선충
표문순
김규칠 할아버지네
텃밭 가 소나무는
우리집 마당에서도
한 풍경 하는데요
왜가리 저놈을 빨리
내쫓아야 할까 봐요
매화 곁에서
하순희
설한을 이겨내고 와 닿은 향기엽서
문득 피어나는 은은한 바람소리
괜찮아 잘 이겨냈어 푸르게 오는 환희
천둥소리
한미자
풍랑에 서방잃은 젊디젊은 초년과부
소낙비 내리꽂는 껌껌한 초저녁에
두 다리 길게 뻗고 앉아 대성통곡 하고 있다
-《오늘의 시조》(2025 .하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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