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요, 사람요!
한분옥
손 귀한 집으로 시집온 지 삼십 년에
이제사 말문 여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그 사람 앞산에 가면, 뒷산 보고 사람요!
이름 하나 품지 못한 제 속을 저도 몰라
솥단지에 물 붓다가 울컥 쏟아진 울음
어머니 왜 날 보내셨소, 사람요, 사람요!
질경이도 씨를 맺고 뱁새도 새끼 치는데
꽃이든가 풀이든가 헛이름 헛꽃으로
해 질 녘 들 끝에 서서 그림자만 오래 길다
아령이니까
한승남
말을 하지 못해서 한 덩어리 뒤처진 종
쇠붙이 질량보다 더 묵직한 상상으로
당신의 숨소리 맞춰 단단히 울어댄다
리듬을 맞춰가도 가끔은 균형이 떨려
온 힘 다해 잡으면 당신 힘줄 돋아나
가벼운 말을 던져도 손은 놓지 않는다
종지가 숙명처럼 탑에서 떠날 수 없어
접었다 펼 때마다 그 마음 근육 되어
중력을 거스를수록 우리 사이 단단하다
적과摘果의 대화
한희정
1
'초록은 동색'이라 얼굴 한번 못 붉혔어
평균치 밑돈다 해도 내 속도는 최선이야
눈과 손 모아질 때면
멍울처럼 아팠어
2
열 식구 한 이불 덮던, 몸싸움은 추억일 뿐
저 출생 저밀도에 익숙해진 세대잖아
눈치전戰 술래에 잡혀
별똥별 떨어진다
어떤 다비
황영숙
잠시 와 쉬는 중이라 스스로 다독이며
붙잡힌 장어 몇 마리 짚단 위에 누웠다
하루가 저만치 가고 불씨 살아난 항구
휘어진 등을 따라 달라붙은 지푸라기
서슴없이 타오르다 이내 사그라지고
서둘러, 익은 것들을 검은 손이 거둬 갔다
최면에 빠졌는지 두려움을 잊은 순간
되돌아가고 싶은 그 갯가 때찔레가
반 남은 잔불 속에서 환히 웃고 있었다
-《오늘의 시조》(2025 .하반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