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기일식
이달균
집요한 생각에 칼로 금을 긋고
위성의 경계에서 주먹을 쥐어본다
언젠가 단 한 번만이라도 태양을 삼키리라
굽이치던 두 강물 잠시 멈춰 설 때
단전에서 발아하는 욕망의 공격성
뭇 새들 날아오르고 진통이 시작된다
뿌리에서 물관으로 차오르는 달항아리
빛의 시간은 멎고 누가 신화를 쓴다
캄캄한 마구간에서 한 아이 태어난다
곡예사
이달균
구름에 발을 묻고 오래 서 있었어
내려갈 사다리는 어디에도 없었지
신에게 길을 묻다가 설핏 잠이 들었다
작은 새 한 마리가 성벽을 허무는 꿈
외줄을 끊었다 무너진 나의 우주
그 순간 안락의자처럼 허공이 편안해졌어
이제 움켜쥔 것을 놓을 때가 되었다
막막한 하늘에 걸린 사선斜線의 동아줄
마침내 줄을 끊어내고 내게로 돌아가자
잠에서 깨어나 머리칼을 잘랐어
부푼 생각들이 조금씩 가라앉을 때
길잃은 별들이 찾아와 빈방을 채워주었지
호박을 노래함
이달균
호박 하나를 위해 노을이 내려온다
온전히 제빛을 이전하는 황혼은
어두운 서산 그늘을 탓하지 않는다
초저녁 눈썹달은 그윽이 실눈을 떠
노지의 흙냄새를 몸피에 받들어
안으로 단맛 가두는 몸짓을 지켜본다
넝쿨 휘어질 때 운율 살아나듯
"푸를 청靑!" 하다가 "누를 황黃!" 하니
동편제 한 자락 속에 성큼 입동이 온다
-《정형시학》(2025 .겨울호)
ㅡ이달균ㅡ
함안 출생. 1987년 시집 『남해행』과 무크 《지평》으로 문단 활동 시작. 시집『달아공원에 달아는 없고』외 9권. 중앙시조대상, 이호우 . 이영도 시조문학상 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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