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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시학]]땅끝순례문학관 4 외 3편 / 박희정 외

작성자안해나|작성시간26.06.14|조회수75 목록 댓글 0

땅끝순례문학관 4

박희정

독백이 늘어났다, 낯선 곳이 정들기까지

아침부터 밤늦도록 소리를 재워놓고

감각은 모서리마다 물음표를 달았다

책들은 여름 내내 새 옷을 갈아입고

빈 땅은 젖었다 마르기를 자주 했다

온밤을 쓸고 닦던 생각, 비처럼 쏟아졌다

초록이 무성해지자 약속이나 한 듯이

스쳐간 생각들이 다투어 자라나고

한동안 놓쳐버린 실마리

꿈틀대며 내게 왔다

 

 

고요를 닮은

- 도솔암

박희정

침묵이 귀를 닫고 동안거에 들었을까

암자에 자라는 돌, 하늘과 맞닿아서

그대로 눈감아도 좋을 품속의 안식처 같은,

새소리 바람소리 동자童子로 지키고서

사방에 흩어진 생각 주렴처럼 펼친 곳

처마 밑 하늘이 물려 고요가 한 뼘 자란,

 

 

꽃의 완성

이경임

조화들, 덮개 없는 트럭에 실려간다

창백한 낯빛으로 흔들흔들 멀미한다

한평생 흔들리거나 떠밀리며 살았는데,

숨 멎어야 받아보는 한 다발 꽃무더기

그 오는 길조차도 요철을 견뎌야 한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 문턱 넘어야 한다

한 계절 붉디붉은 꽃으로도 피고 싶어

간곡한 저녁 빛에 민낯을 물들여봐도

굴곡진 어느 생애는 덜컹이며 지고 있다

 

표류하는 저녁

이경임

퉁퉁 불은 어둠이 식탁에 놓여 있다

한덩이 식은 마음 밀물에 적셔두면

저 창밖 항로를 끄는 달빛 잔해 내린다

속이 텅 빈 그림자 식탁 앞에 우두커니

더딘 수저질에 먼 길 가는 새의 울음

아무도 보내지 못하는 통증이 고여 있다

찬물에 말아놓은 저녁빛 혼자 남아

꿈속까지 밀려드는 기척을 울먹인다

현관에 벗어둔 슬픔 오래도록 한 켤레

 

 

-《정형시학》(2025 .겨울호), 5인의 에스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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