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먼 곳이 다가온다
우아지
소리 내 가을, 가을 부르며 걸어간다
산문에 들어서면 탑을 쌓는 돌무더기
기도도 오르다 숨차
햇살 감아 내린 듯
맞잡은 두 손 사이 올라서면 전망 좋은
평생 모은 잔걸음이 어디론가 날아간다
길이란 문장에 잡힌
푸른 하늘 툭툭 튕기며
있었다, 긴 의자에 주인처럼 앉은 그늘
모퉁이 휘돌아 대추나무 곁을 지나
적막에 귀 열어놓은
모서리가 둥글어진다
애월涯月
이교상
세상 오래 겉돌다 아득해진 생이지만
우연히 제주에서 달의 고향을 보았다
고요가 일렁거리는 밝고 푸른 밤중에
바라는 것 없어도 휘영청 솟구쳐올라
그림자만 남은 생 어루만진 시편같이
역마살 외로운 생각 윤슬에 잇대놓은
그동안 너무 자주 감감하게 저물었던
내 몸의 해안선을 하얗게 떠올려놓고
유년 그 굴렁쇠처럼 안단테로 흐르는
어떤 처방
이분헌
대대로 터를 지킨 선산의 고목 하나
제 가진 천성처럼 내공 깊은 옹이로
조상묘 굽어살피던
심지 굳은 나무였다
태풍 한때 스쳐 간 검붉은 후유증
눈 질끈 감아봐도 관절통은 깊어져
저 홀로 생으로 앓다
묏등에 쓰러졌다
흙더미 속 뒤엉키고 모로 꺾인 곁가지
다독여 도려내고 걷어낸 처방에
날숨을 길게 뿜는다
푸른 눈물 그렁한 채
칼, 칼
- 잎의 말
김태경
스쳤을 뿐이라도
칼날같이 예리하게
당신 손등에 구멍 뚫고
목 끼운 채 칼을 쓰고
비녀장 지른 뒤에야
속죄도 형틀인 것을
-《정형시학》(2025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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