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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느티나무 그 저녁은, 외 3편 / 유재영 외

작성자안해나|작성시간26.06.18|조회수81 목록 댓글 0

느티나무 그 저녁은,

 

유재영

 

 

물 받은 놋대야에 맨살로 온 가랑잎

 

왠지 자꾸 허전한 헛간 같은 어스름

 

만나고 뒤돌아가는 반백의 시간이여

 

느티나무 저녁은 아무래도 그렇다

 

섶다리 건너와서 동부꽃 피는 마을

 

잘새 떼 자잘대듯이 소반 앞에 모인 가족

 

뒷개울 건너가는 허벅지 허연 물소리며

 

살구나무 큰 그림자 우두커니 지키고 선

 

구름 낀 달밤이던가 느티나무 그 저녁은,

 

 

 

풍경

제만자

등 굽은 길을 따라 누군가 가고 있다

푹 꺼진 구렁텅이 눈이라도 내릴 듯이

달빛이 바람 놓는 소리 걷힐 줄 모른다

기억 속 사람들은 나무처럼 살아 있어

어느 날 가깝다가 어느 날은 안개 끼고

오르고 내리던 날이 해와 함께 또 멀다

까치발 딛고 보면 저 산길 지름길엔

그리움도 곱게 물든 시간이 흘러간다

우수수 마른 잎 굴러 몸을 녹일 겨울로

 

 

 

출몰

 

홍외숙

 

 

철로 빚은 짐승들이 어둠을 찢어댄다

야밤의 포효에 불면을 앓는 도시

별빛도 경기驚氣를 한다

귓전의 벌떼 같은

 

날리는 옷자락에서 떨어지는 허물들

사자의 갈기와 반짝이는 용의 비늘

전생을 데리고 와서 빌딩 숲을 질주한다

 

사람 형상을 덮어쓴 불안의 후손들이

아스팔트에 발굽 대신 바퀴를 찍는다

오빠들,

고독의 광기

그 뒷자리 앉아 보는 밤

 

 

 

즐거운 징후

 

  홍성란

 

 

  해안가 거미집도 저런 집은 처음이라 지나가던 대충(大蟲)이 들여다보고 있으니, 잘생긴 저 호랑거미 공들인 공 있었네

 

  발길 붙들어 맨 건축술 하며 처세술 하며 사로잡힌 대충이야 보건 말건 자는 시늉, 우주의 누가 또 알까 바닷가 이 소식을

 

  알고도 속아주는 그 즐거움이 즐거워 범(虎)은 커녕 벌레도 날벌레로나 낚여서, 고요한 호랑거미 가까이 거듭 돌고 돌았네

 

-《가히》(2025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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